김천마을이야기(175)
지좌동편
조선시대까지 개령현 농소면으로 속했던 호동과 무실마을은 1914년 두 마을을 합해 덕곡동이 되었고 1983년 지좌동으로 속한이래 오늘에 이르고 있다.
마을의 동쪽으로는 농소면 신곡, 서쪽으로 마잠, 남쪽으로 감천면 금송리와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최근 무실삼거리 일대에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는 등 국도변을 중심으로 급속도로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호동(壺洞)
시내에서 감천교를 건너 갈대고개를 넘어서 지좌동사무소를 지나면 입구에서 볼 때는 전혀 마을이 있을 것 같지 않은 지점에 호동마을이 자리 잡고 있다.
▲마을입구에서 바라본 호동마을 전경
1600년대초 인근의 농소 신촌마을 관동지라는 저수지 인근에 살던 진주강씨, 동래정씨, 평택임씨 일가들이 도적떼가 극성을 부리고 수침이 잦은 감천변을 피해 현재의 마을위치로 이거해 살면서 오늘의 호동마을을 형성했다고 전해진다.
호동이라는 마을의 지명은 마을입구가 좁고 안쪽이 넓어 입구에서는 마을이 보이지 않는 항아리 또는 병과 같은 형태의 지세라하여 병실이라 부르고 한자로 병호(壺)자를 써서 호동(壺洞)이라했다고 하는데 뒤에 음이 변해 빙서리라 부르기도 한다.
▲지좌동 통장협의회장 김상규씨가 호동마을의 유래에 대해 설명해주고있다.
실제로 장고개로 불리는 고개마루 안쪽으로만 마을이 있을때는 밖에서는 마을이 있는지 모를 정도로 은폐가 되었던 마을로 유명하고 전란시에도 적병들이 그냥 스쳐 지나갔다는 일화가 전하기도 한다.
또 달리 덕곡동이라고도 했는데 신촌에서 도둑이 들지 않고 땅이 기름진 현재의 위치로 옮겨오면서 큰 부자가 많이 나와 하늘과 땅의 덕을 입었다고 하여 덕덕(德)자를 써서 덕곡(德谷)이라 했다고 마을통장 김상규(69세)씨가 전한다.
▷무실. 응곡(鷹谷)
무실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접어들면 성의중고등학교와 까치산 아래에 자리 잡은 무실마을을 만날 수 있다.
▲무실마을 전경
무실은 조선 광해군때 문병주라는 분이 낙향해 정착한 이래 대대로 남평문씨 충선공파 집성촌을 형성해오고 있다.
마을을 개척할 당시에 까치산 배나무골에 큰 배나무가 많다하여 우거질 무(茂)자에 열매실(實)자를 써서 무실(茂實)이라 했다고 마을 통장 문영배(55세)씨가 전한다.
또 응곡동(鷹谷洞)이라고도 했는데 이는 마을 뒷산인 까치산이 풍수지리로 볼 날아오르는 매의 형세를 한 명당이라 하여 매응(鷹)자를 써서 응곡(鷹谷)이라 했다고 남평문씨 마을종친회장 문병옥(80세)씨가 전해준다.
▲마을통장 문영배씨와 주민 문병옥씨가 응곡마을에 전해지는 풍수이야기를 전해주고있다.
<글/김천문화원 사무국장 송기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