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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마을이야기

감호동.모암동편

관리자 기자 입력 2008.11.27 00:00 수정 0000.00.00 00:00

김천마을이야기(177)


감호동·모암동편


 


▷감호동(甘湖洞)


 용호동 사거리에서 지좌동으로 연결되는 김천교 방면 도로 북쪽으로 감천변에 자리한 감호동은 조선시대까지 용두동과 함께 하신기로 불렸었는데 1914년 욱정(旭町), 1946년 감호동, 1993년 용두동과 합해 용호동, 1998년 모암동과 합해 용암동으로 동명이 변천되어 왔다.
감호동이라는 지명은 감천과 직지천이 만나는 지점인 관계로 김천의료원과 옛 김외과 일대에 늪과 호수가 있어 감천(甘川)의 감(甘)자와 호수(湖水)의 호(湖)자를 따서 감호(甘湖)라 했다고 전해진다.
현재의 감호동일대는 1920년대 일본인들이 제방을 쌓으면서 새로 형성된 마을로 그 전에는 용두동과 함께 감천변으로 장터의 중심을 이루었다.
현재의 감호시장이 낙동강을 거슬러 올라온 남해안의 해산물을 염장 처리해 경북내륙과 충청도일대로 공급하던 옛 김천장의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감호시장 입구


 


 ▷모암동(帽岩洞)


 성내동과 감호동사이에 모암산을 중심으로 주택가를 형성하고 있는 모암동은 1900년대초까지 마을이 없이 습지를 형성한 쓸모없는 땅이었으나 1909년 일본인들이 상권을 넓히기 위해 김천시장과 평화동의 김천역을 연결하는 도로를 개설하게 되면서 모암동일대가 본격적으로 발전하게 된다. 













 ▲모암산에서 바라본 모암동 일대


 


 당시 도로는 용두동 김천시장에서 현 김천우체국을 지나 삼각로타리, 옛 김천상공회의소를 지나 김천역으로 연결되는 구간으로 도로주변의 저습지와 논을 매립해 상가와 주택이 들어서면서 김천시가지의 영역이 비약적으로 확장되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모암동이라는 지명은 모암산 남쪽 끝에 옛 관리들이 쓰던 사모를 닮은 바위가 있음으로 해서 얻게 된 지명인데 이 바위는 맞은편 양천동의 할미바위 전설과 함께 김천의 대표적인 전설을 품고 있다.











▲모암산 남쪽 원래 사모바위가 있었던 바위절벽


 사모바위 전설은 조선 초기 김천이 영남제일문향이라 불리며 많은 인재를 배출하던 당시의 영화(榮華)에서 비롯되었는데 향지 금릉승람에 의하면 김천출신 고관대작들이 수시로 고향을 방문하면서 고달픈 김천역의 역리들이 이를 벗어날 욕심으로 사모바위를 깨뜨려 버렸다는 것.


 이후 양천 하로마을을 비롯해 김천 각처에서 무수히 배출되던 인재가 끊어지게 되었고 하로마을에서 옛 영화를 찾고자 사모바위를 가져다 마을입구에 두었다는 것이다. 













▲양천동 하로마을앞으로 옮겨진 사모바위


 


                                               <글/김천문화원 사무국장 송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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