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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마을이야기

양천동편

관리자 기자 입력 2008.12.04 00:00 수정 0000.00.00 00:00

김천마을이야기(178)
양천동편


 


 1998년 황금동과 통합된 양천동은 조선시대에까지 양곡(상리), 중리, 노천(갈대), 장승배기, 안정개 등 크게 6개 마을로 이루어져 금산군 고가대면으로 속했는데 1914년 고가대면이 감천면으로 개칭될 때 양곡(陽谷)의 양(陽)자와 노천(蘆川)의 천(川)자를 따서 양천동(陽川洞)이라 했고 1983년 행정구역 개편 때 금릉군 감천면에서 김천시 양천동으로 옮겼다.


 양천동을 통칭해서 하로마을로 불리기도 하는데 이는 벽진이씨, 화순최씨, 성산이씨 등 삼성(三姓)이 집성을 이루어 살면서 조선초 3판서 6좌랑을 배출한 김천의 대표적인 양반촌으로 자손들이 대대로 고관에 올라 늙은 부모가 수시로 하례를  받았다는 뜻으로 축하할 하(賀)자에 늙을로(老)자를 써서 하로(賀老)라 했다고 전해진다.











▲병자년 수해 이후 폐동된 노천마을 주민들이 이주해 형성한 새마을


 양천1동으로 속하는 도로변의 새마을은 1930년대 후반 새로 형성된 마을로 원래 조마면 방면의 감천변에 노천리(蘆川里)라는 이름으로 마을이 있었으나 1936년 병자년 수해 때 마을이 유실되어 지금의 자리로 옮기고 새마을이라 이름했다. 













▲노천마을이 있었던 조마방면의 마을 터


 양천1동으로 속하는 또 다른 마을인 안정계는 새마을로부터 국도를 가로질러 맞은편에 위치한 마을로 성산이씨 광평군의 후예로 성산이씨 김천 입향조인 현령 영선(寧善)의 아들로 양천동 상리에서 자라나 1433년 최윤덕장군의 휘하장수로 큰 공을 세운 병조판서 정무공(靖武公) 이호성(李好誠)장군의 무덤이 있음으로 해서 얻은 지명이다.


 다시말해 안정계(安靖溪)는 정무공(靖武公)을 안장(安葬)한 시내(溪)옆에 있는 마을이란 뜻이 되는 것이다.











▲이호성장군 묘소에서 바라본 안정계마을


 당시 대문호인 서거정(徐居正)은 다음과 같은 시에서 이호성 장군을 칭송했다.


고을 살이 함에는 제일로 추앙받고
적을 막는 묘책은 신과 같았네
문무의 재능을 함께 갖추었고
공정하고 청렴한 덕은 이웃에 미치었네
나라걱정 없애고 남으로 가서
기쁘게 봉양하니 북당이 새롭네
그대와 같은 충효 어디 흔하랴
그 영광 이미 뭇 사람 위에 솟았네


 


양천2동은 양금폭포로부터 옛 양천동사무소일대까지로 통상 신기, 새터로 불리며 국도에서 하로마을로 들어가는 입구를 따로 개울내기라고 부르기도 한다.


 황금동과 경계를 이루는 지점의 양금폭포아래에는 할미바위로 불리는 구부정한 바위가 있는데 사모바위와 함께 김천을 대표하는 할미비위, 사모바위전설에서 신부로 나오는 바위다.


 이 바위와 모암산의 사모바위가 마주보며 혼인을 하는 형국을 통해 그 사이의 초례상에 해당하는 김천시장이 잔치집에 하객이 붐비듯 크게 번성하게 되었다는 전설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양금폭포아래 자리한 할미바위


<글/김천문화원 사무국장 송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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