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천마을이야기(180)
황금동, 남산동 편
□황금동(黃金洞)
조선시대까지 김산군 김산면으로 속해 좌동, 우동, 약수동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1914년 3개마을을 합해 황금정(黃金町)이라고 하다가 해방후인 1946년 황금동으로 고치고 1960년 1,2동으로 나누었다가 1983년 다시 합치고 1998년 황금동과 양천동을 합하여 양금동으로 한 이래 오늘에 이르고 있다.
▷좌동(左洞),우동(右洞)
지금의 황금동성당 일대에 있던 마을로 옛날 성당앞으로 지나던 개울을 중심으로 좌측에 있던 마을을 좌동(左洞)이라 하고 우측 개운사 방향의 있던 마을을 우동(右洞)이라 했다.
전하기를 이 마을 인근의 개울에는 고성산으로부터 이어진 수풀이 무성하여 밤이면 호랑이가 자주 출몰했다고 하는데 청년들이 담력을 겨루는 시합을 할 때 밤에 이곳에 모여 개운사까지 다녀오기도 했다고 한다.
▷약수동(藥水洞)
예전 황금동과 양천동의 경계를 이루는 지점에 있던 마을로 마을뒤 골짜기에서 쉼없이 맑은 물이 흘려내려 위장병과 피부병에 효험이 있다고 알려지면서 전국에서 밤낮으로 사람들이 몰려들어 약물내기, 약수동으로 불렸다.
약수동 일대에 일제시대까지 유기공장이 밀집해 약물내기 약수와 함께 김천방짜유기가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타게 됐다.
▲약물내기로 더 잘 알려진 약수동 일대
▷자래동,방천둑
약수동과 좌동, 우동사이의 고성산자락은 예부터 풍수지리설로 자라의 형상을 한 명당으로 알려져 자라봉이라 하고 그 골짜기를 자래밭골 또는 자라동이라 했는데 음이 변해 자래봉이라 한다.
지금도 자래봉길이란 이름으로 곳곳에 이정표가 서있다.
또 1917년 일본들의 주도하에 감천둑을 축조한 후 제방을 따라 마을이 형성되면서 방천둑이라 이름했다.
□남산동(南山洞)
남쪽으로 고성산을 등지고 황금동, 평화동과 이웃하고 있는 남산동은 조선시대까지 김산군 김천면으로 속한 중동, 하동으로 나뉘어있다가 1914년 일본인들에 의해 남산정(南山町)으로 고쳐졌고 1946년 하동, 중동, 상신기동, 성내동, 우동의 일부를 합해 남산동으로 개편했다.
남산동은 고려시대에 설치된 김천역이 있던 중심마을로 역을 중심으로 주변에 마을이 형성된 전형적인 역촌(驛村)으로 발전했다.
김천(金泉)이라는 지명은 남산공원 뒤 고성산자락에 있던 샘인 금지천(金之泉)에서 비롯된 것으로 금지천은 금을 캐던 터에서 솟아난 물이 맛이 좋아 공동우물로 쓰이고 있었는데 고려시대 인근에 역이 설치되면서 역명을 금지천에서 연유해 금천(金泉) 또는 김천이라 한 것이 오늘날 이 고장 지명의 유래가 되었다.
▲김천의 지명유래가 된 금지천
금지천은 물맛이 좋아 이 물로 술을 빚은 것이 궁중에 진상되었다는 과하주인지라 달리 과하천, 과주샘이라고도 불렸다.
김천초등학교로부터 남산성결교회 일대에 있었다고 하는 김천역은 경상도의 22개 속역을 관할하는 역 관리관인 찰방(察訪)이 상주하는 큰 규모의 역으로 지금도 김천초등학교 교정과 남산공원에는 찰방의 선정비가 일부 남아있다.
▲김천초등학교에 남아있는 찰방선정비
<글/김천문화원 사무국장 송기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