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천마을이야기(183)
평화동편
현재 김천의 중심상권을 형성하고 있는 평화동은 조선시대까지 김산군 김천면으로 속한 갈마동과 서낭댕이 등 2개 마을이 전부였다.
1905년 경부선철도가 개통되면서 김천역이 들어서자 역앞에 일본인들이 철도이용객들을 상대로 한 음식점과 잡화점을 열면서 급속히 상가가 형성되었다.
1906년 일본상인들이 일본인회라는 모임을 조직하고 역전일대를 야마토마치(太和洞)라 부르다가 해방후인 1946년 평화동으로 고쳤고 1962년 1,2동으로 분동했다가 1983년 다시 통합했고 2008년 남산동과 합해 평화남산동으로 고치기에 이르렀다.
경부선철도가 개설되어 평화동에 김천역이 세워지기 전까지 남산동에서 부곡동 방향으로 가는 도로는 노실고개를 거쳐 서부초등앞으로 가는 옛 역로(驛路)와 평화시장길 등 두 길 밖에 없었는데 한국전쟁 후 시가지를 정비하면서 현재와 같이 철로를 따라 큰길이 나게 되었던 것이다.
▲ 시립도서관에서 바라본 평화동 전경
▷갈마동(褐馬洞)
조선시대말까지 남산동에 옛 김천역(驛)이 있을 때 고성산으로부터 흘러내린 산줄기가 현재의 중앙초등학교와 성남교, 교육청, 항도아파트, 김천여중에 이르기까지 야산으로 이어져 있었는데 이 능선의 안쪽에는 성내(城內)라 해서 자산마을과 마부들이 사는 뒷방마가 있었고 능선밖으로는 성외(城外)라 해서 갈마동이 있었다.
▲ 말의 거세를 주업으로 하는 사람들이 살았다는 옛 갈마동일대
갈마동은 현재의 시외버스터미널과 하나로마트 일대에 있었던 마을로 조선시대말까지 김천역에서 관리하는 숫말(馬)의 거세(去勢)를 생업으로 하는 사람들이 주로 산다하여 말 불알깔 갈자에 말마(馬)자를 써서 갈마동(褐馬洞)이라 했다고 전한다.(말 불알깔 갈자가 없어 부득이 털옷 갈자를 사용)
▷서낭댕이
김천역앞으로 국도가 새로 개설되기전까지 주 통로로 이용되었던 평화시장길에서 서부초등학교와 평화동사무소, 시립도서관이 갈리는 사거리일대가 옛날에는 높은 고갯길이었는데 이곳에 성황당과 함께 민가 몇 채가 자라잡고 있어 마을지명이 서당댕이라 했다.
오고가는 길손들이 이 고개를 지나며 돌을 던져 행운을 빌었다고 하는데 차츰 고개가 깎여 이제는 옛 모습을 찾을 길이 없다.
▷후생주택
옛 농고길에서 김천역 방향으로 철로를 따라 길게 형성된 마을을 후생주택이라 불렀는데 한국전쟁때 미군폭격으로 김천시가지의 8할이 초토화되자 전후 주택난해소를 위해 미국원조자금으로 전쟁중 임시 활주로로 썼던 철로변에 50여동의 주택을 짓고 후생주택이라 한 것이 현재까지 마을지명으로 굳어졌다.
▲ 후생주택 일대. 후생길이란 지명으로 옛흔적이 남아있다.
<글/김천문화원 사무국장 송기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