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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종합

3.1절기획특집-독립운동가 후손을 찾아서

정효정기자 기자 입력 2009.02.26 00:00 수정 0000.00.00 00:00

구성면 월계리 임용진씨

 3.1절기획특집
독립운동가 후손을 찾아서
 구성면 월계리 임용진씨 


 


독립운동으로 고문과 징역살이까지 했지만 국가로 부터 공적을 인정받지 못해 안타까워 … 지난 2월 중순 보훈청 판결문을 통해 공적을 인정받아 ‘눈물’


 


 










▲ 임용진씨
임용진(45세. 김천택시 합명회사)씨는 한번도 조부를 뵌 적은 없다. 아버지 임상구(77세)씨에게 어린 시절부터 들어온 것이 전부다. 하지만 임씨와 가족들에게 있어 조부는 존경스러운 존재다. 지금도 임씨의 아버지는 늘 자랑스러워하며 조부의 기억을 떠올린다. 임씨의 아버지 임상구씨의 기억속에서는 여전히 생생한 조부의 나라사랑을 말이다.


 임씨가 알고 있는 조부는 일찍부터 생업전선에 뛰어들어 곰방대 만드는 기술을 배웠고 자신의 공장을 운영했다. 공장을 운영하며 재료를 구하러 드나들던 중국에서 독립운동과 연을 맺었다고 한다.


 “그 시대에 나라사랑이 힘든 것이란 것은 그 시대를 사신 분들이라면 누구나 알 것입니다. 저의 조부 역시 징역살이 하고 나온 후에도 수시로 형무소에 끌려가 고문도 당하셨답니다. 물론 다락에 숨어 은둔생활까지 많은 고초를 겪었지만 조부의 나라사랑은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늘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있던 임씨 가족에게 작년 말 좋은 소식이 전해졌다. 보훈청에서 조부의 일대기를 조사해 달라는 연락이 온 것이다. 가족들은 2월 중순 조부의 일대기 조사를 마치고 신청을 마쳤고 업적을 인정하는 판결문을 받았다.


 “판결문에는 조부의 성함인 임경갑 이름과 전북 정읍에서 흠치교라는 종교 조직을 통해 군자금을 모금해 독립운동을 전개하려 한 인물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판결문을 받아들고 가족들은 기뻤습니다. 국가로부터 조부의 공적이 인정받았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물론 아버님이 가장 기뻐하셨습니다.”


 임씨가 전한 자료에 따르면 조부인 임경갑씨는 경상북도 금릉군 어모면 응명동이 본적지로 고향인 김천에서 20여명의 직원들과 함께 곰방대를 만드는 공장을 운영하며 군자금을 댔고 이 일로 감옥생활을 했다고 한다.


 “3.1일절이 다가오니 조부를 비롯해 독립운동을 돕던 사람들이 3.1 운동을 위해 일주일 전부터 각처에서 모인 사람들을 위해 음식을 준비하고 남산옆의 만경장판이라는 곳에서 고사를 지내며 결속을 다졌다는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조부를 비롯한 나라를 위해 희생한 조상들을 떠올리며 경건한 마음으로 3.1절을 맞이할 생각입니다. 또한 저는 제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으로 조상들의 뜻을 이어갈 생각입니다.”


 


                                       정효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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