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말분 회장(사진)은 1945년 해방둥이로 태어나 어린 시절을 성내동에서 보내고 청소년 시절부터 시집을 가기 전까지 평화동에서 살다가 25세가 되던 해 결혼, 옥산에서 살림을 하다가 큰 아들을 낳고 황금동으로 이사를 했다. 황금동에서 아들 삼형제를 키우면서 열심히 살았다는 손 회장이 처음 봉사에 손을 댄 것은 막내아들이 세 살 때 새마을 통 회장을 맡으면서 부터다.
그렇게 시작한 봉사활동을 십여년이 넘도록 계속하고 있다. 긴 시간 봉사활동을 해오면서 힘들다는 생각보다는 오히려 행복하다는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됐다는 손회장. 하지만 동 회장을 맡으면서 성남으로 교육을 갔던 7박 8일간은 참 힘들었다고 했다. 남자만 넷을 남겨두고 집을 비우는 것이 쉽지 않은 결정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쉽지 않은 결정을 내리고 행동으로 옮길 수 있었던 것은 남편 덕분이었습니다. 교육을 마치고 돌아오니 막내아들은 감기가 들어 보채고 있고 남편은 감기 몸살로 앓아 누워 있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도 제가 교육에 전념할 수 있도록 아무 말도 하지 않은 남편에게 고맙고 미안했습니다”
손 회장은 남편의 격려와 배려 속에서 더욱 열심히 봉사활동에 임했다. 그러다 이사를 하게 되면서 새마을 봉사를 그만두고 자유총연맹이란 단체에서 일을 시작하게 됐다. 손 회장은 이념단체이면서 지역을 위해 봉사하는 단체인 자유총연맹에서 일하면서 법무부 범죄 예방위원 직도 맡게 됐고 크고 작은 봉사활동을 많이 하게 됐다.
다방면으로 봉사활동을 하다 보니 행자부장관상, 법무부장관상, 시민상 등 여러 가지 표창을 받게 됐다.
“자격도 없는 저에게 상을 주신 것이 좀 더 잘하라고 주신 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또 책임감이 한층 더 무겁게 느껴지고 한편으론 내가 봉사활동을 시작한 것이 참 잘한 일 이란 자부심도 생겼습니다. 이렇듯 봉사란 제 삶의 일부이자 길잡이입니다. 앞으로도 건강이 허락하는 날까지 계속 지금처럼 봉사활동을 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