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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칼럼- 마지막 페이지

김천신문 기자 입력 2018.02.04 15:17 수정 2018.02.04 03:17

배영희(수필가·효동어린이집 원장)

ⓒ 김천신문
얼마 전 감동적인 장례식을 보았다. 고인이 된 할머니는 딸 넷과 아들 넷을 낳았는데 며느리랑 아들까지 합치니 열여섯 명이나 되었다. 그 자녀들이 서너 명씩 낳아 총 마흔셋이 상복을 입고 있었고 그들의 지인들이 모였으니 장례식은 축제의 장 같았다.

그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까만 상복을 입고 하얀 머리핀을 꽂은 여자 여덟 명과 그 뒤로 듬직한 아들, 사위 여덟 명이 둘러서서 관속에 누운 어머니를 바라보며 마지막으로 애도가를 부르는 장면이었다.
무어라 말을 해야 할까. 한 편의 감동적인 영화를 보는 것 같았고 가슴 속을 파고드는 아름다운 합창을 듣는 것 같아 전율이 느껴졌다.

할머니는 오십 초반에 혼자되어 넉넉지 않은 살림을 꾸려가며 자식 여덟을 공부시키고 출가시키셨다. 자그마한 체구로 손에 물마를 날 없이 평생 얼마나 힘이 드셨을까.
합창이 끝나자 곱게 생긴 큰 딸이 앞으로 나와 떨리는 손으로 어머니 영전에 편지를 낭송한다.

“어머니! 어머니는 한 번도 우리 팔남매에게 큰 소리를 내지 않으셨으며 오직 기도만 하셨지요.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자식들을 위해 무릎이 닳도록 꿇어 앉아 밤을 새며 기도로 우리를 키워 주셨습니다.”

그러면서 팔남매가 가장 존경하는 분은 ‘어머니’라고 고백한다. 장례식은 교회장으로 열렸는데 동영상을 보여 주었다. 돌아가시기 일주일 전 병원에 입원하셨고 외국 나간 자녀들이 다 모일 때까지 기다렸다가 눈을 감는 모습이었다.

마지막 날, 코에 호스를 꽂고 침대에 누워 손주들과 해맑게 동요를 부르는 모습을 보았는데 그 장면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아! 나도 저렇게 마지막 페이지를 덮어야 할 텐데’ 장례식장을 나오는 나의 가슴이 한참동안 뭉클하였다.

관속에 누운 할머니가 환하게 웃으며 손 흔드는 모습이 보였다. ‘그동안 잘 살았다. 얘들아 안녕, 다음에 또 만나자’고 손을 흔들며 떠나시는 것 같았다.
한 달 전 죽은 친구 남편과는 정말 달랐다. 그날 친구는 남편과 저녁도 잘 먹었고 TV도 잘 보고 잤다는 거다. 그런데 아침에 눈을 떠 보니 옆에 자던 남편이 죽어 있더란다. 세상에 어찌 이런 일도 있단 말인가. 그것도 자식 결혼식이 며칠 남지 않았는데……. 목숨이란 예측할 수 없는 일인 것 같다.

딴 사람은 죽어도 나는 안 죽을 것 같고 천년만년 살 것 같은 착각을 하고 사는 것 같다. 어쩜 내일 죽을 수도 있는데 말이다. 질기고 질긴 게 목숨 같기도 하지만 밤새 죽을 수도 있는 게 우리의 생명이기도 하다. 그러니 우리는 오늘에 모든 걸 걸고 살아야 한다. 이다음에, 또 이다음에로 미루면 후회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살아 있다는 것에 감사하기! 내게 오늘은 첫날이고 어쩜 마지막 날일지도 모르는데 무어 그리 고민할 필요가 있겠는가. 꽁꽁 싸매고 답답하게 생각지 말고 가볍고 시원하게 살자. 진정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언가를 들여다보고 그런 나를 사랑하며 살자. 흔히들 아파보면 몸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안다고 하지 않는가.

참고 앞만 보며 살아온 우리 자신에게 가끔씩 선물도 하자. 결국 각자 태어나고 각자 죽는 건데 가장 위로해야 할 사람은 남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지 않겠는가.
새해가 시작된 지 벌써 한 달이 지났다. 매일 1월 1일이라는 마음으로 살아야겠다. 언제라도 마지막 페이지가 될 수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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