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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종합

삶의 향기- 세배

김천신문 기자 입력 2018.02.20 11:06 수정 2018.02.20 11:06

함종순(시인·개령면 동부리)

ⓒ 김천신문
 우리 면의 면장이 마을회관마다 세배를 다닌다는 연락이 왔다. 우리 마을에도 온다기에 머리 감고 화장하고 기다리다 설 쇠고 할머니들 뵈러 가는데 그냥 갈 수 있나 싶어 찾다 스티로폼 박스에 넣어 놓은 감이 생각났다. 열어보니 얼었다 녹았다 맛있는 홍시가 되어 있었다.

점심 먹기 바쁘게 마을회관에 나가보니 할머니들은 옷을 말끔하게 차려입고 방 청소를 하고 있었다. 두 패로 나눠 치던 10원짜리 민화투도 접어놓고 면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 마을에는 오후 2시 30분경에 왔다. 면사무소의 마을 담당직원과 계장이 먼저 와서 이장과 마당에서 기다리는데 면장과 시의원, 파출소장이 탄 자동차가 좁은 골목길로 조심조심 들어왔다.

방으로 안내하자 일일이 할머니들 손을 잡아 주고 세배를 드렸다. 한참 후 다른 동네로 가자 나이 적은 할머니들이 나이 많은 할머니에게 세배를 드리기에 나도 전체 할머니들에게 세배를 드렸다. 진심으로 할머니들 건강을 기원하며…….

옛날에는 주로 남자들이 세배를 다니고 할아버지들이 세배를 받았는데 이제 할아버지들은 별로 없고 마을마다 할머니들만 많이 계신다.
차례 지내고 집안 어른들께 세배를 드리고 나면 오빠들은 동네어른들을 찾아다니며 세배를 다니던 옛일이 생각난다. 하루에 다 못 돌아 몇 날 며칠을 다니고 무릎까지 빠지는 눈을 밟으며 걸어서 세배를 다녔다.

여자들은 정월 초하루에 남의 집에 가면 재수 없다고 못 다니게 했다. 설 지나고 친구 엄마 아버지에게 세배를 드렸다. 어떤 집에 가면 제사 지낸 과자를 주기도 하고 또 어떤 집은 화롯불에 구운 떡가래를 조청에 찍어먹으라고 내어 주었다. 옥수수 튀밥을 내주는 집도 있고 대부분 세뱃돈을 10원씩 주었다.

세뱃돈 받는 재미로 친구들과 어울려 받은 과자를 실에 꿰어 목에 걸고 한집이라도 더 다니려고 뛰면 과자가 목에서 달랑달랑, 주머니에서는 짤랑짤랑 동전소리가 났다. 이집 저집 우르르 몰려다니다 동네 아저씨들을 만나 인사를 하면 “오냐 장래 시어머니감들”이라고 놀려 부끄러움에 줄행랑을 쳤다.

세월이 흘러 시어머니가 된 나는 설날 남편과 함께 아들 며느리 손녀의 세배를 받았다.
이제 집집이 세배 다니는 풍습이 사라졌지만 친정인 충청도 양반고을에는 아직도 세배 다니는 풍습이 살아있을지도 모른다. 십리나 되는 고향 방아다리 작은집에 세배하러 가면 눈바람이 살을 에는 듯이 추웠다. 작은집에 도착하면 술을 좋아 하는 작은아버지는 아랫목에 앉아 계셨고 작은어머니는 화롯불을 내어주며 석쇠에 인절미를 구워 주셨다.

이제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추억이 되었고 지금은 삶이 풍요로워졌는데도 옛날만큼 즐겁지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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