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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천신문 |
고향생각이란 때가 되면 꾸역꾸역 되살아나는 뭉클, 간절 심정 아닐까. 이달 달력에 빨간색으로 연휴 닷새가 표시되어 있으니 추석명절이다.
‘내가 살던 고향’의 옛 추석은 정말 감동, 감격이었다. 여름철 내내 가뭄, 홍수에 시달려 죽다가 살아남아 맞는 연중 최고의 큰 잔치였기 때문이다. 오곡백과 풍성하니 먼 곳, 가까운 곳 친인척 다 모여 집안이 가득해도 모처럼 별 근심, 걱정이 없었다.
내 고향 김천은 꺾이지 않고 굽히지 않으려는 개성과 외고집이 특징이다. 타고난 지세와 환경풍토가 그랬다. 추풍령 고개 아래 황악산 정기가 뻗어 내린 아담한 도농복합형 도시에 낙동강 상류 감천이 시가를 감싸고도니 포근한 삶의 터전이다. 더구나 자연풍광이 푸짐하여 먹고 살만큼 물산이 나오지만 인구가 늘지 않아 욕심 없이 살 수 있는 자족의 풍토이다.
손꼽아 헤아려보니 고향 떠난 출향 59년, 그 사이 세월이 어지간히 빨리도 흘렀다. 지금쯤 낯익은 옛 풍물인들 남아 있겠는가. 아는 이들 다 가고 정든 것은 다 잊히고 사라지고 지워졌을 테니 서로가 얼굴도 알아보지 못하는 남남격 아닐까. 다만 태어나 자랄 적에 눈, 귀에 입력되어 있는 태생적 내 고향 데이터는 아직도 선명, 투명하다.
모두가 이웃사촌 민심, 톡 쏘는 고향 사투리 맛, 산천초목에서 풍겨 나오는 향기와 냄새까지 종신형 내 고향 DNA 아니겠는가.
다시 ‘내가 자란 고향’은 시내에서 서북향으로 10여km 지점의 외진 산촌이다. 나지막한 ‘하고개’ 넘고 성황당 지나 꼬불꼬불 마을길로 접어들면 올망졸망 50~60여 호가 한 집안 식구처럼 살았다. 모두가 초가지붕, 토담집에 감나무, 살구나무 등을 심고 살았지만 지금은 옛 풍경 하나 남아 있지 않으니 참 아쉽다. 심지어 쌀, 보리농사마저 각종 특용작목으로 바꿔 팔자를 고쳤다니 마을회관 찾아가 인사를 해도 아는 이가 한 분도 없는 ‘낯선 내 고향 마을’이 되고 말았다.
나는 이곳에서 8·15 직후 허겁지겁 도망가는 일본군, 6·25 때 인민군 따발총 다 보고 북진하는 국군의 기상 보고 감격의 만세를 불렀다. 그 뒤 4·19와 5·16 지나 육군소위가 되어 GOP 소대장 2년 복무 후 기자가 되어 40여년 외길인생으로 오늘에 이른다.
그동안 내 고향 생각이야 한이 없지만 고향발전 위한 헌신, 봉사 한번 못했다. 솔직한 고백으로 빈손으로 정년을 맞았다. 여태까지 전직, 출마 등 정치권 권유가 있었지만 끝까지 사양하며 고집했다. 지금은 촛불세력 난동 꼴 보며 무한분통 신세다. 마치 ‘홍위병’ 폭력식으로 나의 조국 대한민국의 정통성, 정체성마저 유린하려 드니 불안과 불길감 끝이 없다. 단지 매주 토요일 오후 광화문 일대 태극기 집회 참관하며 ‘대한민국 영원히’를 외치는 것이 희망이자 낙이다.
한편으로 국민들의 정치적 민심이 야속하고 안타깝다. 지난 6·13 지방선거 결과 촛불세력의 싹쓸이가 소름끼칠 만큼 충격이다. 아예 보수세력 궤멸시켜 20년 장기집권 하겠다고 호언장담하니 촛불 쿠데타란 말인가. 무엇보다 김일성 3대 세습 독재와 흥정, 거래한 듯 국방, 외교, 안보 무장을 해제하니 반역 아닐까 싶다.
이럴 때 내 고향 김천과 TK의 정치적 외톨이 신세가 처량하고 불쌍한 지경이다. 그렇지만 사실이 그래서는 안 된다고 확신한다. TK가 살아남아 구국, 호국 깃발을 굳세게 휘날리면 대한민국은 끝내 죽을 수 없기 때문이다. 민족중흥, 조국근대화 중심세력이 바로 TK 아니고 누구인가. 추석맞이 고향생각 하며 타고난 성질대로 김천과 TK 민심 및 오기와 자존심을 굳게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