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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 미륵산 마루에서 한산의 용(龍)을 그리다

전영수 기자 입력 2023.01.29 15:59 수정 2023.01.29 15:59

일월척인거(日月擲人去) 유지불획빙(有志不獲騁)
세월은 날 버리고 흘러가는데, 뜻은 있지만 이루지 못했네!!!



지난 28일, 사랑지기 산악회 통영 미륵산 산행을 따라 나섰다. 두어 차례 동행한 탓에 면면이 익숙한 이들도 있었지만, 어색하고 서툰 마음은 가새질 않았다. 아내가 새벽부터 장만해준 도시락과 준비물을 챙겨 넣은 배낭의 무게감도 여전했다.





그러나 국도3호선 거창 인근의 휴게소에서 따끈한 우거지 국밥식사를 하고 나니, 마음도 한결 편안해졌다. 줄창 3시간을 달려 도착한 겨울 통영은 파도와 바람이 잔잔했다.





미륵산 산행은 용화사광장이 일반적인 들머리다. 그러나 해변에 접해있는 미륵산은 내륙 산과 달리 해발고도가 고스란히 적용돼 녹녹한 편은 아니다. 산행에 나선 이들을 용화사 광장에 내려준 후, 버스는 통영케이블카 주차장에 도착했다.





중생대 백악기 말기에 분출된 화산으로 형성된 미륵산에는 그 접근성을 높이려고 케이블카가 설치돼 정상까지 10여분이면 족했다. 2008년에 개통된 한려수도 조망케이블카는 1,975m를 2선(bi-cable) 자동순환식 곤돌라 8인승 캐빈 47대가 운행되고 있었다.



미륵산 정상부는 암릉이라서, 상부케이블카정류소에서 정상부까지 340m에 테크계단이 설치돼 있다. 15분 정도 걸어 정상에 도착해서 결코 황량하지 않은 겨울바다의 모습을 가슴에 담았다. 한려수도의 아름다움을 온 몸으로 느끼며, 미륵산에서 통영과 사랑에 빠졌다.



통영은 거제시 지심도에서 여수시 오동도에 이르는 한려수도의 심장이다. 얼마나 아름다워서 바닷길을 국립공원으로 삼았을까 일말의 의구심마저 눈앞에 펼쳐진 한려해상의 환상적인 풍경과 ‘동양의 나폴리’라 불리는 통영의 해안선 뷰를 접하는 순간에 훅 사라졌다.



신선대 전망대에는 정지용 시비가 있었다. 8.15 해방 후, 청마 유치환의 안내로 미륵산에 올랐던 시인은, 신선대에서 북쪽 통영항, 동쪽 한산도와 거제도 일대 그리고 남쪽 소매물도가 그려내는 한려해상의 멋드러진 아름다운 풍광에 감동해 ‘통영’5 기행문에서 그 풍경을 찬하는 글을 적기도 했다.



마음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클 때, 사람들은 ‘벅차다’라고 말한다. 미륵산에서 느꼈던 그 감정이 어떠하던 간에 혼자 감당해야 했기에 흘러넘치고 말았다. 그것은 당포해전이 펼쳐졌던 곳과 한산도를 바라보며 문득 느꼈던 성웅(聖雄) 이순신 장군에 대한 상념(想念)이 그러했다.



1592년 음력7월 8일, 통영과 거제를 잇는 거제대교앞바다 ‘견내량’에서 학익진법으로 왜장 와키자카 야스하루(脇坂安治)의 함선 59척을 격침시키며, 남해 제해권장악과 도요토미 히데요시로 하여금 해전금지령을 내리게 했던 세계4대 해전 중의 하나인 “한산대첩이 그러하다.



또한 그보다 앞섰던 1592년(선조 25) 6월 2일 이순신(李舜臣) 함대를 주축으로 한 연합함대가 당포 앞바다에서 왜장 카메이 코레노리[龜井玆矩]가 이끄는 왜선 21척을 격침시킨 해전인 당포해전을 떠올리며 장군의 애민정신의 위대함에 옷깃을 여미게 됐다.



세월이 흘러감은 불가항력적 순리이다. 세월이 흐르는 것은 아쉽지만, 새로운 것으로 채울 수 있다면 참 좋은 일이다. 삶이 소용돌이치며 세월이 흐른 지금, 세상이 장군에 대한 마음마저 놓아 버릴까봐 두렵다. 무고한 백성들이 왜적의 칼에 죽어갈 때 장군이 느꼈을 그 절절함을 행여 잊고는 있는 것이 아닌지 마음이 무겁다.



물론 어차피 지난 것은 잊혀지고, 지워지고 멀어져간다. 그것이 인생이다. 그러나 현재의 우리로 성장케 한 앞선 이들의 눈물의 깊이만큼 그들을 사랑하고 기억하는 것이 우리의 일이 아닐까 싶다. 아는 것과 느끼고 실천한다는 것에는 괴리가 많지만, 역사를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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