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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기고

문화칼럼 - 졸업의 노래

김천신문 기자 입력 2024.02.17 14:13 수정 2024.02.26 14:13

민경탁(시인, 칼럼니스트)

조선의/ 동무들아/이천만민아
두 발 벗고/두 팔 걷고/나아오너라
우리 것/우리 힘/우리 재주로
우리가/만들어서/우리가 쓰자  
                                                                                              
ⓒ 김천신문
한국 동요의 아버지라 일컬어지는 윤석중 아동문학가가 열다섯 살 때 쓴 <조선물산장려가>의 2절이다. 두 말 할 나위없는 국산품 장려운동가다. 이 가사를 어느 회사 상품 선전곡에 사용하기도 했는데 이는 작사의 진의를 요용한 것이다. 당시 양정고보 2학년이었던 윤석중은 조선물산장려회 주최 이 글짓기대회에 당선되면서 천재적 어린이 예술가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한 사람이면 윤석중의 동요를 부르거나 들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날아라 새들아 푸른 하늘을/달려라 냇물아 푸른 벌판을’<어린이날 노래> , ‘엄마 앞에서 짝자꿍/아빠 앞에서 짝짜꿍/엄마 한숨은 잠자고/아빠 주름살 펴져라‘<짝짜꿍>, ’새 신을 신고/뛰어보자 팔짝/ 머리가 하늘까지 닿겠네‘<새신>, ’무엇이 무엇이 똑 같은가/젓가락 두 짝이 똑 같아요‘<똑 같아요>, ’나란히 나란히 나란히/밥상 위에 젓가락이/나란히 나란히 나란히‘<나란히 나란히>, ’애들아 나오너라 달 따러 가자/장대 들고 망태 메고 뒷동산으로‘<달 따러 가자>, ’이슬비 내리는 이른 아침에/우산 셋이 나란히 걸어갑니다‘<우산>, ’기차길 옆 오막살이/아기 아기 잘도 잔다/ 칙폭 칙칙 폭폭/칙칙 폭폭 칙칙 폭폭‘<기차길 옆>, ’퐁당퐁당 돌을 던지자/누나 몰래 돌은 던지자/냇물아 퍼져라/널리 널리 퍼져라‘<퐁당퐁당> 등등 수많다. 그는 동요 작사에서 찬탄을 받는 천재다.
 
주로 초등학교 졸업식에서 부르는 <졸업식 노래>도 윤석중이 작사했다. 8·15 해방이 된 이듬해 외솔 최현배 한글학자가 문교부 편수국장이던 때에 윤석중 아동문학가에게 노랫말을 부탁했다. “졸업식 때 쓸 노래가 마땅하지 않소. 그래서 외국곡을 이것저것 가져다 쓰는 형편이니 석동이 하나 지어줘야 하겠소” 하면서. 석동(石童)은 석중(石重)을 신문사에서 잘못 쓴 표기. 이를 보고 춘원 이광수가 오히려 칭찬을 하는 바람에 윤석중의 호가 되어버렸다. 석중이란 돌처럼 무거워 날아가지 말라는 뜻이 담긴 이름인데.
그때까지 우리나라 학교 졸업식에서 부르는 노래는 스코틀랜드의 민요 올드랭 사인(Auld Lang Syne)을 강소천(백석 시인의 제자)이 번역해 <석별의 정>이란 제목으로 부르는 곡이기때문이었다. 외솔은 우리 말로 된 졸업식 노래를 만들고 싶었던 것이다.
 
외솔의 부탁을 받은 석동은 머릿속에 번득이는 시상(詩想)을 단숨에 적어냈다. ’빛 나는 졸업장을 타신 언니께/꽃다발을 한 아름 선사합니다 … ‘. 그는 노랫말을 들고 급히 정순철 작곡가를 찾아갔다. 가사를 받아든 정순철 작곡가 또한 악상(樂想)이 번개같이 떠올랐다. 성미가 급한 작사가와 작곡가는 설렁탕집에서 만나 ’빛나는 졸업장을 타신 언니께 …” 소리쳐 불렀다. 옆에 있던 손님들이 “그 조용히 합시다” 꾸지람을 해댔다. 이 노래는 3절 가사가 더욱 압권이다.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며/우리나라 짊어지고 나갈 우리들/강물이 바다에서 다시 만나듯/우리들도 이 다음에 다시 만나세“. 1946년 6월 6일 문교부에서 <졸업식 노래>로 공표됐다.

각급학교 졸업 철이다. 세태가 많이 변하고 졸업식 양태도 각양각색으로 달라졌다. 그러함에도 졸업식장에서 <올드랭 사인>에 우리말 노랫말을 얹어 부르는 학교가 많다. 윤석중의 <졸업식 노래> 가사가 시대에 맞지 않아서인가(’물려 받은 책으로 공부를 하며‘). 선율이 동요풍이어서인가.
 
이젠 각급학교에 걸맞게 졸업의 노래를 선정하고 부른다. 졸업식 노래 추천 목록을 보면 30여 종에 이른다. <내일이 아름답도록>(홍다은), <이젠 안녕>(015B), <졸업하는 날>(아이유), <안녕>(조이) 등등. 하지만 외국어로 표기된 곡을 졸업식 노래로 추천하는데 이건 뭣 하지 않은가. 시대에 걸맞는 순 한국산 졸업식 노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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