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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천신문 |
김영호 / 화양연화 대표 / 전 대구교육대학교대구부설초등학교 교장 지게를 진 아버지 뒤를 졸졸 따라간다. 산소 가장자리에 지게를 내려놓은 아버지는 쉴 틈도 없이 낫을 들고 풀을 베기 시작한다. 학교에 입학하기 전이고 낫질을 익히지 못한 영호는 산소 가장자리나 가까운 숲에 있는 망개나무의 열매나 개암나무 열매를 찾아서 입에 넣곤 했다. 한두 기의 벌초가 끝나면 다시 집으로 향한다. 무슨 이야기를 주고받았는지는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이 산소는 누구, 저 산소는 누구라는 말씀을 들은 것 같다. 그렇게 추석이 되기 전에 보름 이상을 오늘은 저 산소, 또 다른 오늘인 내일은 저 산소에 아버지의 벌초를 따라 다녔다. 무슨 연유인지 아버지 혼자 한 20여 기의 벌초는 지금은 오롯이 영호와 동생의 몫이 되었다.
그렇게 오늘이 가고 하루가 가면서 6학년이 되었다. 농사가 그리 많지 않았던 부모님은 동네에서 제일 부자인 권씨네의 논 몇 마지기를 소작했다. 가을의 어느 일요일은 소작한 농사의 탈곡을 하는 날이다. 권씨네 넓은 마당 중간에 발로 밟아서 돌리는 탈곡기가 놓이고 그 왼쪽에는 탈곡할 볏단을 쌓는다. 부모님은 왼발과 오른발을 번갈이 가면서 탈곡기를 돌린다. 어머니가 먼저 탈곡기에 볏단을 슬쩍 훑고 아버지에게 건네면 볏알 하나 남김 없이 튼 볏단을 뒤로 던진다. 그 짚단을 짚낟가리를 쌓을 곳으로 옮기고 어머니 옆에 볏단을 보충하는 게 영호의 몫이다. 탈곡을 마치고 짚낟가리를 쌓고 우리나라 지도의 개마고원 쯤에 위치한 집으로 올라오는 골목길에는 아버지의 웃음 같은 초승달이 길동무를 해주었다.
그렇게 오늘을 보내고 또 다른 하루를 보내면서 영호는 아포중학교, 김천고등학교, 대구교대를 졸업하고 초등학교 교사를 하다가 장학사가 되었다. 7시쯤 교육지원청에 도착하면 커피 포터 한가득 물을 끓이고 물밀대로 바닥을 닦았다. 수업발표대회에 참가하는 선생님들께 안내 및 격려 문자를 보냈다. 직원들이 출근하면 담소와 차를 나무다가 업무를 시작한다. 문서 기안, 전화 등등으로 하루가 금방이다. 퇴근 시간에는 수업발표대회에 나가는 선생님들을 방문했다. 최종 심사 하루나 이틀 전에 예고가 없이 가도 남아서 수업 준비를 하는 선생님들을 만날 수 있었다. 어느 학교에서는 아이들을 학교에 대려다 놓고 수업협의를 하는 선생님들과 저녁 식사를 하고 아이들에게는 만원 한 장씩을 쥐어준 날도 있었다. 어느 학교에서는 복도를 돌고 돌아 불이 켜진 한 교실을 찾아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영호나 선생님들이나 참 수업에 진심인 오늘이자 하루였다. 2010년 가을에 대구광역시서부교육지원청 장학사로 근무할 때 오늘이자 하루였다.
뒤에 두 학교의 교감과 교육지원청의 과장을 하다가 교장이 되었다. 대구교동초등학교애서 1년 6개월 근무하다가 대구교육대학교대구부설초등학교로 옮겼다. 학교에 출근하면 7시 전후이다. 교장실에 들렀다가 실내 운동화로 갈아 신고 1학년 교실부터 6학년 교실까지 둘러본다. 필요하면 불을 켜고 더운 여름에는 에어컨을 추운 겨울에는 히터를 작동시킨다. 제일 먼저 교실에 들어서는 선생님이나 아이가 불이 켜진 시원하거나 온기 가득한 교실이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7시 40분이면 교문으로 출동이다. 비가 오는 날은 맨발이다. 일과 중에는 수업이 있는 날은 수업을 하고, 그렇지 않으면 수업 참관을 하고 공사 현장을 돌아보았다. 그런 오늘이자 하루하루가 참 소중했다. 언제까지나 오늘 같았던 ‘대한민국에서 가장 좋은 수업을 하는 학교’라는 비전의 날들이 쌓이고 쌓여서 2023년 8월 31일에 정년퇴직을 했다.
2023년 9월 1일부터 하루의 시작은 화양연화 농장이다. 정직하게 복숭아와 포도 농사를 짓고 있다. 농사 멘토이기도 한 이장님과 이야기를 나누는 날이 아니면 하루 내내 혼자 음악을 들으면서 일을 한다. 몸은 조금 힘이 들지만 마음은 평안하다. 점심을 먹고 쉬는 시간에는 대구와 김천의 신문사에 보낼 글을 쓰기도 한다. 영호의 오늘과 하루를 돌이켜보는 소중한 시간이다. 주말에는 누나, 동생, 아내와 함께 김가네 맛꼬방 작업도 이어진다. 그러다 보면 오늘이 어제가 된다. 농사는 오늘, 지금 이 시각이 참 중요하다. 비가 제 때 내리지 않으면 가뭄이라 근심이다. 시도 때도 없이 비가 오면 장마라서 걱정이다. 농사는 하늘과 햇볕(빛)과 비, 바람 등의 자연과 농사꾼의 부지런한 발걸음의 조화가 필요하다.
아버지의 벌초와 하루를 보냈던 영호, 소작농의 아들로 탈곡을 거들면서 오늘을 보냈던 영호, 초등학교 교사가 되고 장학사가 되고 교장으로 오늘과 하루를 보냈던 영호는 농사꾼이 되었다. 그 하루와 오늘은 어제가 되었다. 그 어제도 어제는 오늘이었다. 오늘도 내일이 되면 어제가 된다. 내일도 내일이면 오늘이 된다. 앞으로 어떤 오늘과 하루가 기다리고 있을지 궁금하다. 영호의 오늘을 응원한다. 영호의 하루를 응원한다. 그래서 영호의 오늘과 하루는 화양연화(花樣年華), 오늘도 참 좋은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