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살이는 누구나 나름대로 시름과 고충이 있게 마련입니다. 심지어 사는 것이 지긋지긋하다는 표현을 하는 사람도 적지 않습니다. 살다 보면 일상으로 겪는 일이지만 좋은 일 하나에 나쁜 일 몇 가지씩 줄줄이 연관돼 있게 마련이며, 공으로 이루어지는 일은 하나도 없기 때문입니다. 가끔 사주를 추명하다 보면 사주의 운세가 그다지 밝지 않은 사람에게는 흔히 기도 열심히 하시라는 표현을 쓰고는 합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의지와 신념을 갖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면 상이 바뀌고 마침내 뜻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저는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간혹 올바른 기도에 관하여 묻는 경우가 있으면 저는 스스럼없이 답합니다. 유명 교회나 유명 사찰의 제단에 바치는 재물의 일부분이라도 그 주변에 늘어서 있는 병들고 찌든 사람들에게 적선하고, 그들의 아픔을 어루만져 주는 것이 참기도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내 형편대로 마음 가는 대로 이웃을 돌보고 괴로움을 당하는 사람에게 따뜻한 손을 내미는 것이 성인의 참뜻이라고 말입니다.
우리는 간혹 사찰이나 교회에 바치는 헌금 액수만큼 복을 짓는다는 착각에 빠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물론 저도 죽어서 가는 저세상에 가보지는 않았지만, 무리해서라도 불단이나 제단에 많이 바쳐야 많은 은혜를 준다는 논리를 가진 그러한 신이라면, 그런 신은 신봉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며칠 전 석가탄신일을 맞았습니다. 우연히 큰 사찰 기둥에 써 놓은 연등의 가격표를 보았습니다. 평생등은 얼마이고, 일년등은 얼마이며, 참으로 종교가 타락을 해도 너무도 혹세무민하는 것 아닌가 그런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몇백만 원을 주고 평생등을 켜면 평생 복 받는다는 의미의 상업적인 냄새가 짙게 밴 표현을 부끄럼 없이 해야만 하는가 참 회의감이 듭니다.
부처님이 설파한 「빈자의 일등」에 대한 개념이나 무주상보시(無主相布施) 혹은 왼손이 하는 일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는 성인의 기본 가르침은 빛이 바래고 영혼을 팔고 사는 장사로 전락하는 모습들이 안타깝기만 합니다. 석가탄신일만 하여도 그렇습니다. 인간의 천하고 귀함의 분별 망상을 지우는 가르침은 어디에 갔는지, 이 나라 이 사회의 권력자나 벼슬의 순위대로 자리매김하는 종교 지도자들은 도대체 어디에 목적을 두고 대중에게 무슨 희망의 메시지를 줄 것이며, 무엇을 참회하고 느끼라는 것인지 만약 부처가 살아있다면 오늘날 당리당략을 위해 싸움질만 하는 정치인들에게 질타하며 사자후를 터뜨렸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헌신하고 봉사하는 사람들 생로병사에 허덕이는 사람들에게 우선 적으로 내리는 희망과 축복의 초파일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인지 초파일 하루만이라도 성인의 뜻을 바르게 설파해 주며 행동으로 보여주는 날이 되었으면 합니다. 세월이 갈수록 신도들이 줄어드는 이유를 되새겨 보시고 대립과 갈등이 난무하는 오늘날 이 사회에 참 종교의 의미를 설파하고 실천하는 성직자 본연의 모습이 아쉽습니다.
주해) 빈자의 일등이란 부처님 생존 시 난타라는 가난한 여인이 구걸한 돈으로 정성껏 바친
보잘것없는 등만이 바람이 불어 다른 등은 다 꺼져도 이 등만은 밝게 타올랐다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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