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more
오피니언 종합

애향 회고록 - 금릉중·고등학교 악대부를 창설하다<상>

김천신문 기자 입력 2024.08.01 10:15 수정 2024.08.01 10:15

강희일(전 김천대덕중 교장)

음악은 사람의 마음을 화합하게 하고 예의는 사람의 신분을 구별하게 한다. 사람 사이에 마음이 화합하면 서로 친해지고, 사람 사이에 구별이 있으면 서로 존경하게 된다. 음악의 감화가 지극하면 원망하는 마음이 없어지고, 예의가 완전해지면 서로 다투지 않게 된다. 유가사상(儒家思想)의 중요한 고전인 『예기』에 나오는 말이다. 옛날 임금들은 예(禮)와 악(樂)을 나라 통치와 백성 다루기의 핵심 가치로 삼았다.

내 나이 설흔이 되던 1964년 3월 안동중학교에서 금릉중학교(현 김천중앙중학교)로 전보 발령을 받았다. 그때 안동사범학교는 폐교 예정이어서 부속중학교는 안동중학교로 통폐합이 되었다. 안동사범학교부속중학교와 안동중학교에서의 2년 교직 경력을 바탕으로 내가 고향의 학교로 전보 발령이 난 것이다.

44세 때의 강희일 교사

부임을 해 보니 금릉중학교는 12학급, 금릉고등학교(현 김천중앙고등학교)가 학생 1학급을 모집하여 개교하고 있었다. 나는 중학교 2학년 학급담임을 하면서 중·고교 13개 학급의 음악 수업을 담당했다. 나는 삼십대의 혈기와 열성으로 수업에 지극정성, 열정을 다 쏟았다. 학생들에 대한 애착심이 유별나서 엄한 체벌도 마다하지 않았다.

지금 회상해 보건대, 그때 제자들에게 좀 더 부드럽게 대해 줬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아있다. 김천 시내를 걷다가 분명 아는 제자인데도 인사를 하지 않고 그냥 지나갈 때면 그 이유가 분명 있겠는데, 재학 시절 내게 호되게 꾸중을 들은 것이 아닌지 싶기도 하다. 혹은 쌍둥이가 아닌가 하고 내 나름 대로 해석을 하곤 한다. 혹시 섭섭한 마음이 있었다면 즉시 사과를 해 주고 싶다.

일년에 한두 번씩 김천시민체육대회가 열렸다. 행사가 있을 때마다 느끼는 바가 있었다. 시민체육대회에 나가보면 악대가 없이 응원하는 우리 학교 학생들은 기가 죽어있는 것이다. 학교 역사가 짧고 학생 수도 적으며, 상대적으로 학력도 낮아 보이는 데다가 나팔소리, 북소리 하나 없이 운동장에 나가 있으니 교장선생님을 비롯해 전 교직원과 학생들이 기가 죽어있는 것이다. 아쉬웠다.

금릉중.고 악대부 창설대원과 강희일 당시 지도교사(1965)

1965학년도 초 어느 날이었다. 김정상 교장선생님께서 날 좀 보자 하시더니 “강 선생님, 악대 지도할 수 있습니까?”하고 물으시기에 서슴없이 “예, 할 수 있습니다” 하고 답했다. 교장선생님은 매우 기뻐하시면서 “그래요? 강 선생님이 악대를 지도할 수 있으시다면 악기를 구입해 악대를 조직하도록 할까 합니다” 하셨다. 나는 기쁘기도 하면서 일변 은근히 걱정도 되었다. 내겐 1962학년도에 안동사범학교의 관악기를 보관하면서 트럼펫과 트럼본을 조금씩 익혀 둔 것, 1963학년도에 안동중학교 악대를 최재목 선생님으로부터 인계받아 지도한 경험이 있었다. 하지만 염려가 아니 되는 바는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하면 될 것이다’ ‘할 수 있다’고 담대히 용기를 가졌다.

그러던 어느 날엔가. 왜관 미군부대의 G·M·C 트럭 십여 대가 나무판자를 잔뜩 싣고 와서는 학교 운동장에 산더미같이 부려 놓는다. 미군부대 막사를 뜯은 나무판자들인데 대못이 숭숭 박힌 것들이다.



저작권자 김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