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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기고

수필공원 - 무시 서리와 무 나눔

김천신문 기자 입력 2024.11.28 13:54 수정 2024.11.28 01:54

김영호 (전 대구교육대학교 대구부설초등학교 교장)


“오늘 마때이(자치기) 진 팀은 밤에 뭐 가져올래”
“고구마로 하자”
“우리집은 고구마는 다 먹었는데 무시로 하자.”
“그러면 고구마나 무시 중에서 하나를 가지고 오도록 하자.”

그렇게 추수가 끝난 논이나 밭에서 자치기 판이 벌어졌다. 자치기로 옥신각신하다 보면 짧은 겨울 해는 금방 개와 늑대의 시간이 된다. 시래깃국에 밥을 넣고 고추장으로 비벼서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저녁을 먹는다.

약속 장소는 겨울밤의 말 달리는 바람을 겨우 막아주는 짚삐까리(짚낟가리)나 나무삐까리(나무낟가리)이다. 대부분 약속한 고구마나 무시를 가져오지 않는다. 그렇다고 타박할 일은 아니다. 너나없이 가난했던 시절이라 고구마나 무시가 넉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엄마의 눈웃음 같은 초승달을 친구삼아 술래잡기를 하면 금방 배가 고프다. 허기를 채울 궁리의 결론은 서리이다. 고구마는 방 안에 두었기 때문에 무시 서리를 한다. 누구 집의 무시구디(무구덩이)가 어디에 있는지는 다 알고 있다. 대문이나 개가 있는 집은 피한다. 간혹 무시 서리를 하다가 뒷간(화장실)을 가는 주인과 마주치기도 한다. 그러면 주인은 인심 좋은 헛기침이나 두어 개만 가져가라고 한다. 한 명씩 돌아가면서 이가 시리도록 시원한 무시를 한입 가득 베어 물면 세상 부러운 것이 없는 행복한 겨울밤이 익어갔다. 대신초등학교를 다녔던 김천시 아포읍 시내이 마을 영호의 겨울밤 추억이다.

2024년 8월 17일 토요일에 배추씨와 무씨를 넣었다. 밭은 고향집에서 300여 미터 거리인데 산자락에 자리해서 석쇠불고기로 유명한 배시내와 그 너머까지 보이는 전망이 좋은 곳이다. 김가네 맛꼬방의 산실이다. 평생 땀과 눈물로 자갈밭을 옥토로 바꾼 부모님이 밭 중간에 계신다. 밭의 절반 정도에 무와 배추 및 고추를 심는다. 연작의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서 매년 돌려가면서 심는다. 씨앗을 넣을 때와 솎아주기나 수확의 세 번의 일은 5남매와 아내가 힘을 모은다. 나머지 비료를 주거나 약을 치거나 익은 고추를 따는 것 등의 전반적인 관리는 부지런한 동생 몫이다.

올해는 가뭄과 장마가 반복되어서 무와 배추 농사에 어려움은 많았다. 처음 넣은 배추씨는 대부분 조금 자라다가 말라 죽는 바람에 모종을 사다가 다시 심었다. 무는 생각보다 잘 자라서 풍년이 들었다. 예년과 비슷하게 씨앗을 뿌렸는데 크기(부피)가 지난해의 배 이상이 되었다. 동생은 조금 자라서 솎아줄 때 간격을 넉넉하게 한 결과라고 말한다. 한 이랑에 두 줄씩 씨앗을 뿌렸는데 모두 네 이랑 여덟 줄에서 무가 자랐다. 파란 점이 두 줄로 난 것 같은 이랑은 바람과 햇빛과 비와 동생의 정성 덕분에 새파란 줄이 되고 온통 초록 천지가 되었다. 빙산과는 반대로 뿌리의 대부분은 땅 위에 있는데 땅속 부분은 흰색이고 땅위에 나온 부분은 청색이다.

무나 배추는 씨앗을 뿌리고 90일 정도가 지나서 수확하면 본연의 제맛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2024년 11월 17일 일요일에 무 갈무리를 했다. 전체 무는 어림잡아 500개가 넘었다. 게다가 부피가 지난해의 배 이상이 되어서 엄청난 양이다. 무게가 3.21 킬로그램이나 되는 무도 있었다. 김가네 5남매가 다 먹기에는 너무나 많은 양이다. 그렇다고 어디 장에 내다 팔 수도 없는 노릇이다. 세 명의 누나는 각각 20킬로그램 쌀포대에 10개씩 넣어서 5포대씩 나누었다. 동생집에도 한 포대를 두었다. 나머지는 농막으로 가지고 왔다. 김장 때 사용할 20개는 별도로 갈무리하고 나머지는 속에 비닐이 들어 있는 쌀포대에 담아서 보관하고 있다. 잎(무청)은 농막에 7미터 길이로 친 두 줄에 가지런히 걸어서 시래기를 만들고 있다.

무밭을 놓기 일주일 전에 30여 개로 무말랭이를 만들었다. 길쭉하고 얇게 먹기 좋을 크기로 잘라서 소금에 절인 다음 햇빛 좋은 옥상에 말리고 있다. 해마다 무와 배추의 수확일에 차량 지원을 해주는 해봉 회장에게는 두 번에 걸쳐 80여 개를 나누었다. 민우회원 두 명에게 30개, 신문사에도 30개를 나누었다. 심의센터에는 쌀포대에 두 개씩 넣어서 14개를 토요일마다 운동하는 560 배드민턴에는 40개를 나누었다. 단골 식당에 10개, 같은 아파트의 친구에게 10개와 5개를 나누었다. 바로 옆집에는 20개를 나누었다. 아내의 학교에도 10개를 나누었다. 고향의 옆집에도 10여 개를 나누었다. 그렇게 40여 가구에 250개 이상을 나눴다. 무청이 필요하다고 하면 그대로 주고 무청이 필요하지 않다고 하면 잘라서 주었다. 무를 자를 때는 자른 무에서 싹이 나지 않도록 무청과 뿌리의 경계에서 뿌리 쪽으로 5밀리미터 정도에서 자르면 무청 말리기도 쉬운 일거양득이 된다.

무시는 주로 경상도나 전라도에서 쓰이는 무의 사투리이다. 중세 한국어의 ‘무 ’가 현대로 넘어와서 중부 지방에서는 ‘무우’가, 남부 지방에서는 ‘무수’나 ‘무시’가 되었다고 한다. ‘무우’가 표준어였으나 지금은 ‘무’가 표준어이다. 국립국어원 표준어 규정 제14항에는 준말이 널리 쓰이고 본말이 잘 쓰이지 않는 경우에는 준말만을 표준어로 삼는다고 한다.

김가네 맛꼬방의 무 나눔을 한 40여 가구에서 무국, 무김치, 무생채, 무차, 무전, 무말랭이, 무밥 등으로 맛있는 향기가 넘쳐나길 소망한다. 이번 겨울에는 야식으로 무 하나 깎아 먹으면서 무시 서리하던 까까머리 영호의 초등학교 시절로 잠시 시간여행을 떠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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