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 후기에 3대 시성으로 꼽히는 이안눌 (李安訥 호 東岳. 당진 태생. 1571 선조4∼1637 인조 15)이 금릉 연화지에서 남김 시가 있다. 그가 1613년 경주부윤에 임명되어 임지로 가는 길에 김산을 경유, 하룻밤 묵으며 쓴 것이다. 그는 윤근수(尹根壽), 권필(權 ), 이호민(李好閔) 등과 교우하며 <동악시단(東岳詩壇)>을 형성, 생애에 4,379수의 시편을 문집 『동악집(東岳集)』 (전 26권)에 남겼다.
夜宿金陵一草家 금릉의 한 초가에서 자는데
平池如鏡侵枯荷 거울 같은 연못에 마른 연(蓮)이 잠겨 있네
五更寒月三庚雨 삼복에 비 오더니 새벽에 찬 달이라
無限風光獨自嗾 한량 없는 풍광에 홀로서 스스로 부추기네
○ 1792년(정조 16)에 이성순(李性淳) 군수가 개축할 때, 둘째아들 이면승(李勉昇 1766 영조 42∼1835 헌종 1. 뒷날 경상도관찰사 지냄)이 상량문을 썼다. 이성순이 남긴 장시가 있는데 일부분을 소개해 본다.
特立危 擁衆山 우뚝 솟은 높은 용마루는 뭇 산이 에워싸고
雙流巧合自成環 두 물 줄기 교묘히 합쳐져 절로 에도르네
一輪秋月碧潭外 둥근 가을 달은 푸른 못 너머에 떴고
十里歸僧紅樹間 십리로 돌아가는 스님은 단풍 숲 사이에 있네
可耐民憂方溢目 백성들 근심, 막 눈에 넘쳐나니 견딜 수 있으랴
且將樽酒暫開顔 또 술잔을 잡고 잠깐 얼굴을 펴보네
竹樓肯爲明年計 죽루에서 기꺼이 내년을 위해 계획하여
剩借來人吏諜閒 후인에게 남겨주니 관리의 문서 처리 한가하길
○ 이성순(李性淳)의 후손 이대원(李大遠)이 봉황대에서 쓴 시가 있다.
昔聞二水與三山 예로부터 이수와 삼산이 있다 들었는데
鳳去臺空世幾環 봉황새 대에서 날아가, 빈 것이 몇 대인가
官路縱橫碧潭畔 관로를 누비다가 푸른 못 두둑 어슬렁거리니
村客出沒綠陰間 시골 나그네들 녹음 사이로 들락날락거리네
百年洞闢壺中面 백년 동네는 선계에서 얼굴을 내밀 듯하고
五月樓亭鏡裡顔 오월 누정은 거울 속에 얼굴을 비추는 듯하네
覺經營神所造 참으로, 이 누정은 신이 지은 것인가
古來太守劇淸閒 예부터 이곳 태수는 극히 맑고 한가로웠다네
김산(金山)은 8세기 신라 경덕왕 때부터 써 온 이 지방의 지명이다. 14세기 조선 초 이 마을에 김산향교가 들어서면서 교동(校洞)이라 부르게 됐다. 김산군 관아가 여기 있었고 정치, 문화의 중심지였다. 교동과 삼락동, 문당동을 합쳐 김산고을이라 불렀다. 이곳의 봉황대는 예로부터 지식인, 교양인들이 강학하고, 풍류와 문학을 즐기던 공간이다. 선비들은 이곳에서 학문을 논하며, 시를 교류하고, 풍류와 예술로써 심신을 수양했다.
지금껏 소개한 시문 외에도 봉황대에는 관련 역대 시문이 많이 남아 전한다. 이곳은 장정문(1936~2019) 시조시인의 고향 마을이기도 하다. 마을 사람들이 연화지 둘레길에 장 시인의 시화를 여럿 게시해 놓아 관광객의 눈길을 끌고 있다. 그는 이 마을에서 태어나 196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에 ’두메꽃‘, 신아일보 신춘문예에 ’석굴암대불‘로 등단했다. 김천중·고등학교 교사로 재임하면서 영남시조문학회에서 활동하고 ’봄의 찬가‘, ’요산요수‘, ’고향서정‘, ’겨울산‘. ’산일‘, ’사향춘‘ 등의 시조를 남겼다. 일찌기 출향하였기에 그의 시조에는 고향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과, 향토적 정서를 노래한 작품이 많다.
좀 치는 두리기둥/세월은 아파와도// 옛 풍도(風度)ㄴ 물에 어려/드맑힌 고향 하늘// 추풍령/먼 낙조에 서서/그도 하나 꿈이 깊다.//
- 장정문, 「봉황루 鳳凰樓」 전문
장정문의 시 세계에는 고향이란 중점에서 콤파스로 그리듯 그 시혼이 펼쳐져 있다. 봉황대, 연화지 둘레길을 걷다보면 지금도 장 시조시인의 시혼이 하늘을 맴돌고 있는 듯하다.
삼삼이수의 고장, 김천은 고을마다 정자와 누각을 많이 세웠다. 개령에는 앞서 소개한 무민루와 팔승정 외에도 면 소재지 마을 앞 유산(柳山)에 현감 변심(卞鐔)이 조선 세종 때에 건축하고 사가(四佳) 서거정(徐居正, 1420-1488)이 기문을 지어서 남긴 동락정(同樂亭) 그리고 추흥루(秋興樓)가 더 있었는데 폐철되었다. 1713년(숙종 39) 광덕산 아래에 세운 오수정(五綏亭), 향약소로 세운 내신정(來新亭). 묘광못에 세운 낙원정(樂園亭), 조선 후기 개령 덕촌리의 자선가 우상학이 관학산 아래 세운 화학정(華鶴亭)이 더 있다.
지례에는 향교의 문루인 사반루(思泮樓), 김해김씨문중의 만취정(晩翠亭)이 현존한다. 훼철된 누정으로 옹취정(擁翠亭), 현감 이병건이 세운 삼소정(三笑亭), 1715년(숙종 41)에 조하성이 세운 화옥정(華玉亭), 현감 한문홍이 세운 사명정(四明亭), 지례 옥류폭포 위에 문락소의 후손이 세운 옥류정(玉流亭), 김난규가 세운 경파정(鏡波亭) 그리고 식수정(植樹亭), 상연정(賞蓮亭)이 있었다. 구성 도동서원의 문루인 임해루(臨海樓), 대덕 섬계서원의 문루로 상설루(常雪樓)가 있었는데 역시 훼철됐다(정원호, 『교남지』,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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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례 향교의 문루인 사반루. 1774년(영조 50)에 건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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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문면 광덕리에는 하한정(夏寒亭), 오수정(五授亭), 감천면 금송리에는 이홍명이 세운 사미정(四美亭), 조마에는 화순최씨문중의 최창락이 세운 남애정(南涯亭), 구성에는 화수정(花樹亭), 은진송씨문중의 미호정(美湖亭), 성산여씨문중의 광암정(廣岩亭), 대덕에는 인동장씨문중의 쌍호정(雙湖亭)이 있었거나 지금도 남아 있다.
예의 김산군 관내에는 봉황대 외에도 여이랑이 세운 군자정(君子亭), 1742년(영조 18)에 군수 이화정이 창건한 풍월루(風月樓), 군수 김세조가 객사 앞에 세운 취옹정(醉翁亭), 객사 동쪽에 세운 서하루(棲霞樓)가 더 있었다. 마무리
김천 관내의 누정과 누정문학은 구성, 지례, 대덕 일대에 가장 많이 분포되었다. 이 중에서도 지례에 가장 많다. 감천이 이 일대에 완상할 절경을 조성, 여러 명문 세가가 형성되어 많은 학자와 관료를 배출, 이 고장이 누정을 건립할 수 있는 재력을 지니게 했기 때문이다. 여기 거론하지 못 했지만 김천 관내에는 나름대로 주요한 의의와 가치를 지닌 누정과 누정문학이 더 많이 있었거나 있다.
유교문화의 핵심은 선비문화에 있고 경북에는 곳곳에 그 유산이 많다. 어디를 가도 서원, 향교, 재실, 누정을 쉽게 접할 수 있는 고장이다. 서원 , 향교, 재실은 교육 또는 추모의 역할이 강하다면 누정은 지식인, 교양인이 풍류와 시정(詩情)과 정견을 나누고 강학, 수양, 휴양하는 공간으로서의 기능이 강하다. 개령에 감호정시단, 조마에 구로재시사와 남애정시사가 있었다. 이곳에는 선비들의 숨결과 의식과 정서가 오롯이 전한다. 그래서 역대 관리들은 누정 건립을 치정의 공적으로 삼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 경상도는 문헌상 최초로 누정이 생성된 지역이며 가장 많이 산재한 고장이다. 우리 선조들은 자연 친화, 순응 세계관에 의해 누정에서 심신을 수양하며 많은 문학 작품을 남겨왔다. 이렇게 누정과 누정을 중심으로 펼쳐진 문학을 파악, 음미함은 전통사회의 역사와 상류층 문화의 성격과 지역문화의 특색을 이해하는 근원이 될 것이다. 이에서 선조의 정신과 문화와 전통을 이해하며 이로써 새로운 지역문화를 창성해 나아가야 국가적인 문화가 융성할 것이다. 전통문화를 바탕으로 지역문화를 시대감각에 맞게 재창조해 나아가야 할 것이다. 김산의 봉황대, 연화지-김호중 소리길을 연계해 관광명소로 조성, 지역경제가 활성화되고 많은 관광객이 모이고 있음은 그 우수 사례의 하나이다.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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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학중앙연구원,『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2004년 ~ 2013년).
연재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