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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천신문 |
김영호 / 화양연화 대표 / 전 대구교육대학교대구부설초등학교 교장
“동민 여러분들께 알립니다. 날씨가 상당히 추워졌습니다. 감기 조심 하시고 건강관리 잘 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12월 23일 월요일 오전 10시부터 마을회관에서 2024년 대동회를 실시합니다. 동민 여러분들께서는 많이 참석해 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 번 더 알립니다. …….”대동회를 앞두고 마을 이장님이 여러 번 방송한 내용이다.
9시가 조금 지나서 마을회관에 가니 어르신 네 분만 계신다. 방에 들어오라고 하는 것을 밖에서 기다리겠다고 했다. 마을회관의 마당은 차량 수십 대를 주차할 수 있을 정도로 아주 넓다. 바로 앞에는 어렸을 때부터 자리를 지키고 있는 100살이 넘은 정자나무도 있다. 마당을 서성이고 있는데 이장님 차가 들어오고 장을 보고 오는 형님들 차도 도착했다. 고기와 떡, 음료수 등을 방으로 옮기고 나니 마을의 형님들과 형수님들이 속속 나오셨다. 대부분 방으로 들어가고 몇몇은 밖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10시 정각에 경북 김천시 아포읍 대신 3리 시내이 마을의 대동회를 시작했다. 먼저 이장님이 간단한 인사를 했다. 이어서 윤삼희 형님께서 이장님이 A4 종이 앞뒤로 정리한 <2024년 동경비 결산 내역서>를 보면서 차근차근 감사 보고를 했다. 앞면에는 2024년 수입과 지출에 대한 내용이다. 뒷면에는 3천만 원 정기적금을 든 통장 복사본과 동경비로 사용하는 통장의 마지막 장의 복사본이 첨부되어 있다. 깔끔하고 정확하다.
윤삼희 형님의 감사 보고도 군더더기 없이 명확하다. 수입은 찬조금, 정기예금 이자, 폐비닐 판매비용 등이다. 지출은 마을회관의 전기, 수도, 텔레비전 등의 공과금이 대부분이다. 태극기와 김천시기 및 새마을기 구입비용도 있다. 또한 경로행사, 개발위원 식대 등도 있다. 특이하게 마을회관 사용료도 지출에 포함되어 있다. 감사는 말미에 수고한 이장에게 박수를 보내자는 말을 했다. 모두가 이장님께 박수를 보내는 것으로 감사보고를 마쳤다.
다음은 이장 선출 건이다. 대부분의 농어촌에서는 이장을 할 사람이 없어서 한 사람이 길게는 30여 년 동안 이장을 하는 마을도 있다. 간혹 경쟁자가 있어서 투표를 하는 마을도 있다고 한다. 이장님이 “제가 올해로 이장 3년째입니다. 다음 이장을 선출해야 합니다.”라고 했다. 여기저기서 잘 한 이장 더 하라고 격려 겸 강권을 한다. 찬성의 박수도 이어졌다. “그러면 한 번만 더 그러니까 3년을 더 하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라고 수락 겸 감사 인사를 했다. “형님, 10년은 더 하셔야지요.” 영호도 거들었다. 그렇게 이장 선출은 일단락이 되었다. 우리 마을의 이성규 이장님은 두루두루 잘 하신다. 혼자서 그 많은 포도 농사를 짓고, 마을 대소사에도 소홀함이 없어서 이웃 마을에서도 잘한다는 칭찬이 자자하다.
다음은 마을 숙원사업에 대한 이장님 설명과 주민들의 의견이 이어졌다. 농수로 정비, 농로 포장 등 아포읍에 신청해 놓은 사업과 도로의 반사경 설치, 굴다리 밑의 도로포장 등 다양한 의견이 나왔다. 그중에서 한참 동안 논의가 이어진 것이 마을 저수지에 관한 것이다. 낚시꾼의 문제, 물 사용료를 받는 문제, 등기 이전 문제 등이 제법 복잡하게 얽혀 있다. 저수지 아래쪽의 경작자 세 사람의 명의로 등기가 되어 있다고 한다. 두 분은 돌아가셨고 한 분은 연세가 많아서 젊은 층 중에서 세 사람을 정해서 명의를 이전하기로 했다. 명의만 세 사람으로 하는 것이지 엄밀히 말해서 마을의 공동 재산인 셈이다.
제일 쟁점이 된 것은 마을회관 문제이다. 예전에는 마을의 중간쯤에 마을회관이 있었는데 그 건물은 개인에게 팔고 지금의 자리에 1994년 12월 3일에 건립되었다. 문제는 마을회관 자리가 대부분 국유지라는 것이다. 그래서 준공 허가가 나지 않아서 무허가 건물이라고 한다. 30여 년 전에 마을회관을 이전 신축하면서 깔끔하게 정리가 되지 않아서 두고두고 문제가 되고 있다. 지금은 한국자산관리공사에 마을회관 사용료로 매년 30여만 원 이상을 내고 있다고 한다. 마을회관을 부수고 마을 땅에 새로 지어달라고 하자는 의견, 부지를 매입해서 준공 검사를 받자는 의견 등등으로 분분했다. 명확한 결론을 내기가 어려웠다. 이장님이 노력해 보겠다는 말로 마무리를 했다. 영호도 마을의 최대 숙원사업을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지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지를 고민 중이다.
드디어 점심시간이다. 미리 준비한 돼지고기는 과방(果房) 경력이 풍부한 두 형님이 결을 살려서 썰었다. 돼지고기, 떡, 부추전, 김치, 감귤, 소주, 음료수 등이 각각의 상에 차려졌다. 일회용 장갑을 끼고 김치, 떡, 전을 각각의 접시에 담았다. 형님들 몇 분이 방마다 배달했다. 김이 나는 돼지고기를 소금에 찍어서 먹어도 김치와 먹어도 맛있었다. 간혹 전과 떡도 먹으면서 옆에 앉은 형님들 잔에 소주를 채웠다. 저녁에 김천문협의 출판 기념회 겸 송년의 밤 일정도 있고, 잇몸 수술을 한 지가 얼마 되지 않아서 술은 그림의 술이었다. 삶은 고기를 먹으니 구워서 먹는 것보다 훨씬 부드럽고 식감도 좋았다. 최근 몇 년 동안에 가장 많은 돼지고기를 맛있게 먹은 것 같다.
대동회(大同會)는 촌락사회의 자치적인 운영을 위한 집회조직으로 마을 공동체 구성원들의 회의로 두 가지 종류가 있다고 한다. 하나는 당산제와 같은 제의(祭儀)와 결부된 것으로, 제의를 마치고 음식을 나눠 먹으면서 하는 회의이고, 다른 하나는 제의와 결부되어 있지 않은 정기적 또는 부정기적인 마을 회의이다. 우리 마을의 대동회는 영호가 어렸을 때는 전자에 해당되고 지금은 후자에 해당된다. 대동회는 촌락의 구성원들이 새해의 생산 활동에 앞서 당면한 현안 문제와 공동관심사를 논의하여 참여의식을 높여 공동체의 일원으로서의 소속감을 확인하고 상호부조 정신을 함양하여 사회적 협동을 증진케 하는 기능으로 마을의 자치 기능을 향상 시킨다고 한다.
점심을 먹고 잠시 밖으로 나와서 조금 걷다가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상을 치우고 방바닥을 닦는 등으로 방 정리를 했다. 형님들도 같이 거들어서 금방 마무리가 되었다. 오늘 대동회에 참석한 남녀를 통틀어서 63살인 영호가 제일 막내이다. 담소를 나누는 이장님께 지난해와 같은 금액을 찬조하니 고맙게 마을 경비로 쓰겠단다. 여성 어르신들이 계시는 두 방에 인사를 하고 마을회관을 나서서 마을 길을 걸었다. 어젯밤에 화양연화 농장에는 영하 9도 이하로 떨어졌지만, 마을의 골목길은 따뜻한 햇볕과 바람을 막아주는 담벼락 때문에 그리 춥지는 않았다. 상념에 잠겨 걷다가 고개를 드니 오롯이 햇살을 받고 있는 산이 보인다. 금오공대 평생교육원에서 풍수지리를 조금 배운 영호의 눈에는 영락없는 문필봉(文筆峰)이다. 많이 닳아서 짤막한 붓 같기도 하고 몽당연필 같기도 한 문필봉이다. 그 너머로 시나브로 동지(冬至)를 지나온 겨울 햇살이 눈부신 대동회의 오후 풍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