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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천신문 |
예비작가 아줌마들과 함께 산고개 꽃마을찻집을 찾았다. 아니 찻집 앞마당의 수양꽃복숭아나무를 찾아갔다는 것이 더 솔직한 표현이겠다. 오랫만에 갔더니 찻집 주인이 바뀌었고 업종도 팬션으로 바뀐 듯하다. 커피를 달라 하니 주기는 하는데 커피값은 아니 받겠단다. 커피를 마시며 카페 아니, 팬션 앞 잔디 마당에 수양꽃복숭아나무를 찾는다. 아니 보인다. 주인께 물어보니 자기도 못 보았단다. 이 건물이 매물로 내놔졌을 때 불이 났고, 매입할 때 벌써 앞마당엔 나무들이 별로 없는 빈터인 채로 매입했단다.
밖으로 나가 앞마당을 둘러보니 예전의 운치 있는 풍경이 삭감돼 있다. 내가 이 카페를 찾지 아니한 그 얼마의 시간에 수양꽃복숭아가 사라졌다. 그 얼마의 시간이 수양꽃복숭아를 어디로 데려간 것인가. 시간이란, 수명을 가진 유기체에게 가장 실재적이며 절대적인 개념, 넓게 보아 사물이 태어나 성장, 사멸하는 기간일 터. 빅뱅 우주론에 의하면 현재 우주가 흐른 시간은 138억 년이라 하는데, 한 유기체가 우주로부터 삶과 죽음의 배역을 부여받는 출연 기간은 언제까지란 말인가.
이 카페에 오면 나는 친구 하나를 그린다. 그와 나는 이 고장 동향이며 고교 동기, 대학에선 나보다 한 해 뒤에 그가 동과에 들어와 동문이 된 사이다. 내가 대학을 졸업하면서 치른 공립학교 순위고사(오늘날의 임용고사) 발령을 기다리다가 청도의 어느 사립고교에 근무하고 있는데, 어느날 도 교육청에서 공립학교 발령 전보가 왔다. 공교롭게도 그다음 날, 옛 고3담임께서 급히 모교로 부임해 주면 좋겠단 전화 연락이 왔다. 순위고사 성적이 썩 좋지 않아 타지사립고교에 가 있는 이 몸을 모교에서 찾다니.
토요일 오후, 나는 모교 은사의 안내를 받아 교장실에 들어갔다. 재학 때 교감이었던 은사는 교장이 되어 있었다. 교장선생님은 은사인 여러 보직교사를 앉혀 놓고 내 이력서를 훑어보더니, 당장 월요일 운동장조회 시간에 전교생에게 부임 인사를 하라 한다. 집으로 돌아와 아버지는 물론 주위의 여러 사람들로부터 조언을 구하며 고민에 빠졌다. 이틀 고민 끝에 나는 결국 공립학교 발령지로 발길을 돌리고 말았다.
일 년 뒤, 모교의 그 국어 교사 빈 자리에 동향의 이 친구가 부임해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몇 년 후 그는 다시 대구의 어느 사립고교로 옮겨갔고, 나는 상주의 공립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는 몸이 되었다. 서로 멀찌감치 떨어져 있지만, 우린 서로 국어 하나는 잘 가르쳐 보자 다짐하며 청춘을 보냈다. 간혹 명절 때 고향 가는 길 버스나 기차 칸에서 반가이 만나곤 했다. 명절을 맞아 경북선의 자그마한 역에 내려 5리를 걸으면 우리 마을, 그는 여기서 또 10리를 더 걸어 이 고갯마루의 고향마을로 가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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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 후 그와 나는 고향 땅에서 종종 만났다. 그는 종종 내게 그동안 못 만나던 친구들을 불러 모아 놓으라 해놓곤 대구에서 올라왔다. 그동안 못 만난 고향 친구들과의 만남, 못 가본 문화유적지 관광을 여유롭게 즐겼다. 그는 술을 하지는 못 했지만, 어쩌다 밥값을 내가 낼라치면 작별할 때에 다른 술 한 병을 내게 들려주곤 한다. 그 술 한 병은 아직 우리 집 주방 진열장에 그대로 남아 있다.
얼마 동안 그에게서 소식이 없이 잠잠했다. 연락을 해 보니, 감기 몸살이 심해 딸네집에서 요양 중인데 한 달쯤 뒤에 만나잔다. 한 달이 지나도 연락이 없다. 다시 전화를 해봤더니, 허리가 아파 병원에 입원해 있는데 “보름쯤 뒤에 퇴원할 테니 고향서 만나자” 했다. 나는 허리 물리치료를 잘하는 치료원을 소개해 주며 만날 날을 기다렸다.
어느날 홀연히 스마트폰으로 궂긴소식 하나가 전해 왔다. 문자를 보고, 나는 그의 부친이 별세했다며 고향 친구들에게 소식을 전했다. 그랬더니 친구들로부터 그의 부친과 형님은 벌써 타계한 지 오래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문자를 다시 읽어 보았다. 친구 사망 소식을 친구의 아들이 내게 보낸 소식이었다. 황망했다. 수양꽃복숭아 이 고개 넘어 홀연히, 친구는 얼굴을 거두어 갔다.
친구의 무덤에 소주 한 잔을 올린다. 써 온 시를 함께 온 한 친구에게 읊조리게 했더니 눈가에 이슬이 맺힌다. 술을 못 하는 친구가 이 술잔을 받기는 하는 것일까. 유명을 달리하여 만나는 것이 이 우주에서 무슨 의미를 가지는 것일까. 이승의 사과나무 아래에서 열매를 찾거나 거기서 중력과 이론의 법칙을 찾아내어 공식화하는 것이 저승에서 바라보았을 때 무슨 의미를 지니는 것일까.
잔디 마당 정자에서 녹차를 즐겨 마시던 그가 수양꽃복숭아를 데려갔는가. 잔디 마당 이 공간은 무엇이란 말인가. 무한한 우주의 한 공간, 사물이 존재하고 여러 현상이 일어나는 이곳이 무엇이란 말인가. 물리적으로 말해 ‘공간(Space)’라 하고, 인간의 애착과 의식이 더 해지면 ‘장소(Place)’라 이르며 발붙여 사는 이곳. 우리 인간은 또 꽃은 살아있는 동안 어느 한 지점에 머물러 있다가 그다음 어디로 가는가.
꽃마실카페 잔디마당 수양꽃복숭아가 사라졌다. 잔디 마당 정자에서 녹차를 즐겨 마시던 친구도 사라졌다. 친구가 수양꽃복숭아를 데려갔는가. “입 밖에 내지 못한 말 꽃망울 맺었거니/봄비 멎어 연두 신록 꽃 소식 들리거든/꽃사과 산철쭉 안내받아 찾아오려무나/와서는 수양꽃복숭아 춤사위 일렁일 때/떨어지는 꽃망울 망울망울 담아 가려무나” 친구와 수양꽃복숭아를 잊어야 내 존재가 지켜지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