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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천신문 |
이 무렵 적암의 신세가 잘 드러난 시 「우연히 읊다 偶吟」 한 수를 더 감상해 본다. 무오사화 갑자사화를 모두 겪고 난 뒤 일흔 나이에 고향 김산에서 쓴 시다.
三杯卯酒詫年稀 아침 술 석 잔을 마시고, 나이 일흔이 된 것을 자랑삼아
手拓南窓一詠詩 손으로 남쪽 창문을 열어젖히고 한 번 시를 읊네
泉眼溢池魚潑剌 샘 구멍에서 솟는 물이 못에 넘치매 고기가 뛰놀고
樹林遶屋鳥來歸나무 숲이 집을 둘렀으니 새가 돌아오네
花生顔色雨晴後 꽃은 비 갠 뒤에 안색이 나고
柳弄腰肢風過時 바람이 불 때 버들가지 허리를 흔드는구나
誰道適庵無箇事 누가 적암이 아무 할 일 없다고 말하는가
每因節物未忘機 매양, 시절 만물로 인하여 세상 욕심 아직 잊지 못한다네
- 『적암집』, 『패관잡기』 제3권-4권, 『패대동야승』 제4권
두 정변을 맞아 낙향하여 김산을 지키며 살고 있는 자신의 처지를 담담하게 그러나 운세가 호전되기를 바라는 심정도 은근히 깃들어 있다. 적암이 세상을 떠나기 5년 전의 작품이다.
이렇게 적암은 고향 김산을 지키고 있다가 1503년(연산군 9) 11월 형 매계가 귀양지 순천에서 세상을 떠나자 이듬해 3월 시신을 운구해 와 장례를 치렀다. 1518년에는 중종의 명을 받아 김안국과 함께 『이륜행실도』를 편찬하고, 1525년(중종 10)에는 고려 말에서 조선 전기에 활동한 문인과 지식인의 동향과 시화를 모은 문집 『소문쇄록謏聞瑣錄』을 김산 봉계에서 저술했다.
적암은 김종직은 물론 김안국, 남효온, 정여창, 박상, 이행, 권민수, 이항, 홍언필 등의 학자 및 문인과 교류했다. 시인이요 통역관이기도 하였다. 만년에 자신의 시 원고를 정리하여 『적암시고適庵詩稿』를 엮어 허균에게 전하였다. 뒷날 원고가 상당히 유실되었지만 이를 허균이 정리하여 『적암유고適庵遺稿』를 엮으며 서문을 얹었다. 1988년 한국고문헌연구회에서 여타의 문헌에 전하는 적암의 시문을 수합하여 『적암유고適庵遺稿』를 중간하고, 2018년 김천문화원에서 『국역 적암유고適庵遺稿』(권오웅 번역)을 발간했다. 현재 적암의 시 작품은 150 제 398 수가 필사본으로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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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붕(鄭鵬 호 新堂 1467년 세조 12∼1512년 중종 7) 선생이 시, 소, 행장 등을 수록한 『신당실기』. 실제의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적은 책이란 의미다. 1900년에 후손 정홍이 편집, 간행했다. 길재, 김숙자, 김굉필의 학통을 이어받은 선생은 감문 광덕리 탄동에서 태어나 뒷날 선산의 신당으로 이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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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15∼16세기는 도학과 문학과 자연이 하나의 복합체로 존재하던 시기였다. 성리학은 문학과 문화의 기반이 되고 대부분의 사대부들은 정치 현장에 나아가서도 도(道)를 행하다가 그에 부합하지 못 하면 자연에 침잠하여 한가로이 노닐며 맘내키는 대로 즐기는 삶을 살았던 것이다.
김종직이 김천문학 개화에 기여한 바는 컸으며 조위·조신 가문 문신의 문학활동은 여타 문신의 것보다 돋보인다. 매계의 시재(詩材)는 성종 임금이 일찍부터 인정하고 후대와 총애했던 바, 역사에 잘 알려진 대로다. 성종은 매계를 함양군수로 내려보내면서도 시를 지어 올리라 할 만큼 매계의 시재를 애호했었다. 매계는 정치적 입장으로는 훈구 대 사림, 문학적 논리로는 사장 대 경술의 대립항 속에서 인생을 산 문신이었다. 도학에 뜻을 두면서도 벼슬길에 나아가서는 정치 현실에 참여하려는 의지를 드러내 보였는데, 이러한 점이 그의 수많은 문학작품에 점철돼 나타나 보인다. 무오사화 이전에는 벼슬살이 가운데 한가한 정취를 노래한 것이 많았지만 무오사화 이후에는 다시 도학으로 회귀한 문학을 도모한 것으로 정리된다.
적암은 서얼이란 신분상의 한계로 인해 정계에서 높은 관리가 되어 종사하진 않았다. 하지만, 허균은 조신曺伸을 ‘엄지손가락으로 꼽을만한, 학식이 우뚝 뛰어난 사람’으로 평할 만큼 적암 역시 학문과 시문이 빼어났다. 매계는 조정에서의 관료 생활과 외관 근무, 유배생활로 인하여 고향 김산을 떠나 있는 기간이 많았지만, 적암은 보다 고향에 오래 머물러 살았기에 김산에서의 실생활, 자연과의 교감, 지역사회 사대부들과의 문학 및 문화적 교류, 향리에 대한 애정의 시문을 많이 남겼다. 적암의 시문 중에는 고향 김산에 대한 자부심과 애정이 진솔하게 깃들어 있는 작품이 상당 편 있다. 이에 대해서는 종합적이며 더욱 심도 있는 연구가 이뤄질 필요가 있다고 본다.
요컨대 김천문학은 15세기 초에 장지도 선생에 의해 태동 되어 조선 전기(1567년 명종대까지)는 최선문, 최사로, 이약동, 이숙함, 김종직, 이세인, 조위, 조신 등이 개화하였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작품을 낱낱이 소개하진 못 하였지만 허종, 허침, 정석견, 정붕도 조선 전기에 김천문학의 위상을 형성한 문신들이었다. 다음 기회에 보강해 소개하고자 한다.
참고문헌
기본자료
『국역 김천군지』(김천문화원, 2008)
『국역 매계문집』(김천문화원, 2008)
『국역 적암유고』(김천문화원, 2018)
『국역 품천사집』(김천문화원, 2014)
『국역 교남지』(김천문화원, 2002)
『금릉군지』(금릉문화원, 1994)
『금릉지』(여이명 편저, 1718)
『금릉지』(전호봉 편저, 금릉지편찬회, 1963)
『김천시사Ⅳ』(김천시, 2018)
『김천시지』(김천문화원, 1989)
『매계집』(조위, 무술본, 1718년 숙종 44)
『매계집』(조위, 무술본 저본, 계명문화사, 1988)
『국역 매계문집』(김학우 번역, 김천문화원, 2008)
『신증동국여지승람』 제29권
『적암유고』(한국고문헌연구회, 1988)
『정종실록』 제1∼3권
저서
여이명 저, 『금릉승람』(1718, 조선 숙종 44)
우문(우준식) 저, 『감문국개령지』(한성도서주식회사, 1933. 10. 15.)
이동재 저, 『매계 조위의 삶과 문학』(보고사, 2004. 8)
정출헌, 『점필재 김종직, 젊은 제자들이 가슴에 품은 시대의 스승』(여헌학연구회, 예문 서원, 2015. 12)
조위 지음, 이동재 옮김, 『매계집』(평사리, 2009. 3)
논문
권진호, 『매계 조위의 삶과 생각』(김천문화원, 2024. 6)
김창호, 『조위 시에 나타난 15세기 후반 관인상과 그 의미』(원광대학교 한문교육학과, 한국문화원연합회, 2012. 10)
이동재, 「매계 조위의 삶과 사상적 지향」(한국문화원연합회 경상북도지회, 『매계 조위 선생의 학문과 사상』, 2012. 10. 11. 김천문화회관)
임종걸, 『매계 조위의 생애와 시세계』(안동대학교대학원 한문학과 석사, 1992. 12)
윤호진, 『매계 조위의 학문연원과 시세계』(경상대학교 한문학과 석사, 2005. 12)
<연재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