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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천신문 |
“오늘 수업이 참 깊은 여운으로 남습니다. 짧지만 선생님과 함께한 시간이 현준이 평생에 가장 기억에 남는 시간과 가르침이 아니었을까 감히 말씀드려 봅니다. 호박을 먹을 때면 ‘김영호 선생님이 호박죽 좋아하신다고 하셨어요.’를 얘기하고, ‘내가 만일’이라는 노래를 듣고 온 첫날은 제목 생각이 안 나 내내 흥얼거리며 찾고 또 찾던 일이 추억으로 남을 것 같습니다. 늘 기억하고 추억하고 응원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선생님 ♡ 환절기 건강 유의하시며 잘 지내십시오.”
2025년 9월 17일 기간제 교사 마지막 날에 받은 문자이다. 김천의 농소초등학교 6학년 학부모 참관 수업을 마치고 교실을 정리하던 오후의 일이다. 일주일 이상 근무를 하는 곳이면 대상이 누구더라도 영호를 소개할 때 빠지지 않는 게 3대 기호식품인 호박범벅(죽), 칼국수, 묵(메밀묵, 도토리묵)이다. 지금은 기호식품이지만 그리 넉넉하지 않았던 어린 시절에는 한 철의 주식이었다. 쌀이 부족했던 여름철에는 저녁이면 사흘이 멀다 하고 칼국수였다. 벼 타작을 하지 않아 쌀이 더 부족했던 가을에는 호박에 콩과 밀가루 수제비가 어우러진 호박범벅도 여름철의 칼국수만큼이나 자주 저녁상에 올랐었다.
부모님이 계실 때는 호박은 어머니 몫이었다. 호박씨는 따로 구입하지 않고 씨앗을 받아서 사용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대물림을 하기 위해 꽁꽁 싸맨 호박씨를 찾을 수가 없었다. 맷돌호박 모종을 샀다. 모종을 사다가 어느 해부터 씨앗을 사서 모종을 키웠다. 호박은 크게 손이 가지 않아도 잘 자랐다. 특히 2022년에는 가히 호박 풍년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호박 수확을 많이 했다. 밭 세 곳에 30여 포기를 심었는데 잘 익은 맷돌호박도 30여 개를 수확했다. 10월 하순에 호박밭을 놓는데 덜 익은 호박이 아주 많았다. 호박을 따서 깨끗이 닦아서 차에 실었다. 2022년 10월 24일 월요일 아침 7시에 대구교육대학교대구부설초등학교 운동장 스탠드에는 가지런히 놓인 호박 48개와 단감 한 박스가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호박과 단감을 담아 갈 종이가방까지…….
올해는 화양연화 농장과 부모님이 계시는 김가네 맛꼬방 밭, 두 곳에 호박을 심었다. 삼월에 화양연화 농장의 포도 비가림 하우스에 호박씨와 노각오이 씨를 모종을 키우는 육묘용 용기인 포터에 넣었다. 원예용 상토가 아니라 밭의 흙을 포터에 담고 씨앗을 넣으니 싹이 더디게 올라오긴 했지만, 땅심을 받으니 하루가 다르게 자랐다. 될성부른 모종을 골라서 화양연화 농장에 20여 포기, 맛꼬방 밭에 10여 포기를 심었다. 모종을 심은 곳은 삼월에 아포농협에서 자체 생산 및 보급하는 고품질 완숙퇴비인 ‘온들에 퇴비’를 넉넉히 넣어 두었다.
화양연화 농장의 복숭아와 포도를 돌보면서 틈틈이 호박을 살폈다. 어느 날 꽃이 피고 아주 작은 호박이 열린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호박꽃이라고 다 호박이 달리는 것도 아니고, 달린 호박도 조금 크다가 떨어지는 경우가 있다. 궁금하면 휴대폰에 깔린 구글(Google)의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어시스턴트인 제미나이(Gemini)에 질문한다. 호박꽃은 수꽃 10개에 암꽃은 1~2개라고 한다. 초기에는 수꽃만 피다가 차츰 암꽃이 함께 피기 시작한다고 한다. 암꽃에서 열린 호박이 자라는 중간에 떨어지는 이유는 수분 부족, 영양 부족, 일조량 부족, 과다 착과 등의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고 한다.
일요일이다. 학교에 근무할 때 일요일은 주중에 비해서 조금은 여유가 있었다. 그래도 토요일이나 일요일 하루는 고향에 계신 부모님을 찾아뵙는 것이 일상이 되어서 자유시간은 그리 많지 않았다. 아내는 그럴 때마다 다른 집은 주말이면 다 놀러 가는데, 또 시내이(고향인 아포읍 대신3리의 자연마을 이름) 가느냐고 성화를 부리곤 했었다. 오늘은 대구에 사는 천 교장 부부가 화양연화 농장에 오는 날이다. 자주 드나들면서 포도 알솎기, 봉지싸기, 김장하기 등의 일손을 보탠다. 알고 지낸 지가 40년이 지났다. 오늘의 임무는 포두 봉지의 밑을 째는 일이다. 7시에 오기로 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아내는 8시까지 오기로 했다고 한다. 아내 말을 믿고 7시 직전에 집에서 출발해서 농장 가까이 오니 천 교장한테서 전화가 왔다. 문은 열려 있는데 차는 보이질 않으니 당황한 것 같았다.
이내 아내도 화양연화 농장에 도착했다. 넷이서 커피와 샤인 머스캣으로 식전의 궁금한 입을 해결하고 일을 시작했다. 먼저 천 교장 부부가 할 일을 간단하게 설명 및 시범을 보였다. 영호가 식사시간 전후로 봉지 째는 작업을 80퍼센트 이상을 해놓아서 작업량은 그리 많지 않았다. 손이 빠른 천 교장 부부가 부지런히 움직인다. 아내는 서울배추와 무를 솎는다. 영호는 자루가 긴 낫을 들고 울타리 쪽의 호박잎을 따기 시작했다. 원줄기 가까이 잘라서 줄기가 긴 것은 한 자 이상이 되기도 한다. 10개를 기준으로 하는데 한두 개가 더 추가해서 자귀나무 아래에 미리 깔아놓은 비닐의 가장자리부터 차례대로 놓았다. 그러는 사이에 채소를 솎은 아내는 자귀나무 아래에서 채소를 다듬는다. 아내의 일손은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무척이나 빠르다.
울타리 쪽에서 50여 장의 호박잎을 따고 울타리 안쪽도 따기 시작했다. 호박은 박과의 한해살이 덩굴식물이라서 덩굴손으로 울타리 등을 감으면서 잘 올라간다. 울타리 안쪽의 노각오이를 키우던 곳을 차지한 호박잎도 30여 장을 땄다. 천 교장 부부가 포도봉지 째는 작업을 마치고 호박잎을 다듬기 시작한다. 이전에도 여러 번 해서 손놀림이 익숙하다. 천 교장 부부는 잎 가까이서 줄기를 자른다. 천 교장 부인이 자른 줄기는 된장 끓일 때 넣으면 아주 제맛이라고 한다. 조금 남긴 줄기의 끝을 잡고 잎사귀 방향으로 잡아당기면 호박잎 겉면을 감싸고 있던 까슬까슬하고 질긴 섬유질이 실처럼 쭉 벗겨진다. 줄기 사방으로 돌려가면서 반복하는 작업이 계속된다. 부부금슬의 상징인 자귀나무 아래에서 아내가 나물을 다듬고 천 교장 부부가 호박잎을 손질하면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은 화양연화, 오늘도 참 좋은 날이다.
농막 주변의 호박잎을 따고, 포도밭 뒤쪽의 호박잎이 지천에 널린 곳에서도 넉넉하게 땄다. 손질한 호박잎을 10장씩 정리해 달라고 부탁했다. 먼저 정리한 것을 씻는 것은 영호의 몫이다. 큰 플라스틱 함지박에 지하수를 계속 흘려보내면서 두 번씩 씻었다. 호박잎을 찌는 것은 두어 번 경험이 있어서 그리 어렵지 않았다. 씻은 것은 10장씩 정리했다. 지름이 50센티미터인 찜 솥에 시계 방향으로 90도씩 두 번씩 포개서 20여 분을 쪘다. 10여 분이 지나면서 김이 피어오르듯 나기 시작하다가 찜 솥 가장자리로 비지땀을 흘리듯이 물방울이 떨어진다. 불을 끄고 잠시 뜸을 들인 뒤에 뚜껑을 여니 구수하면서도 풋풋한 흙내가 가을바람을 타고 화양연화 농장에 흩날린다.
두 번째와 세 번째는 처음과 같이 줄기 부분이 찜 솥의 안쪽으로 향하도록 80장씩을 쪘는데, 같은 시간에 불을 끄고 뚜껑을 여니 처음과 같지 않았다. 가스 불 조리개가 중간으로 되어 있었다. 위에 쌓은 것은 다시 찌는 수고로움도 즐거운 일이다. 마지막에는 10장씩 정리한 것은 줄기 부분이 찜 솥의 가장자리 쪽으로 향하게 해서 90도씩 네 곳에 놓고 찌니 시간도 줄고 훨씬 잘 쪄졌다. 그렇게 40장을 한 번 더 찌니 모두 320장의 호박잎을 쪘다. 대구의 천 교장 부부가 80장을 가져가고 나머지는 김가네 오 남매와 아내의 지인 두 사람에게 고루 나누었다. 찌지 않은 호박잎 80여 장은 신문지로 포장해서 나누었다.
찐 호박잎은 눈 건강 개선 및 시력 보호, 혈관 건강 및 고혈압 예방, 장 건강 및 변비 완화, 체중 조절, 피부 미용 및 면역력 강화 등의 효능이 있다고 한다. 호박잎에는 단백질이 부족해서 단백질이 풍부한 된장이나 두부강된장을 곁들여 먹으면 환상의 궁합이라고도 한다. 올해는 호박잎 1,000여 장을 쪘다. 김가네 오 남매와 여러 지인의 건강한 밥상에 작은 도움이라도 된 것 같아 기분이 좋다. 호박잎을 찌면서 늦은 가을에는 한 솥 가득 호박범벅을 끓일 날을 손꼽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