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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천신문 |
KTX 김천구미역에 내리면 김천의 변화와 고민이 함께 보이는 풍경이 있다.
새로 들어선 건물들 사이로 불이 켜지지 않은 층이 보인다. 분양되지 않은 채 비어 있는 곳도 있고, 한때 사무실이었다가 지금은 창에 종이가 붙어 있는 곳도 있다.
공공기관 추가 이전 논의가 이어지면서 각 지역의 유치 경쟁도 본격화되고 있다. 김천도 다시 미래를 준비하는 시간을 맞고 있다. 지난 7월에는 범시민 결의대회가 열렸고, 시는 국회를 오가며 유치 논리를 다듬고 있다.
당연한 일이다. 기관 하나가 오면 사람이 오고 일자리가 생긴다. 김천은 이미 여러 공공기관을 맞이하며 새로운 변화의 가능성을 경험한 도시다.
그런데 역에서 본 그 빈 층들이 자꾸 마음에 남는다.
전국 혁신도시의 산학연 클러스터도 분양은 상당 부분 이루어졌지만 실제 입주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자리는 마련되었는데 그 자리를 채울 사람과 기업은 충분히 오지 않은 것이다. 혁신도시가 안고 있는 고민도 결국 여기에 있다.
“나무를 심기에 가장 좋은 때는 20년 전이었다.”
어디선가 들었던 이 말을 오래 마음에 담아둔 적이 있다.
나무를 심는 사람은 자신이 그 열매를 모두 얻기 위해 심지 않는다. 심은 나무가 얼마나 자랄지 알 수 없고, 자신이 그 그늘 아래에서 쉬게 될지도 알 수 없다. 그럼에도 심는 이유는 언젠가 누군가 그 아래에서 쉬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음만으로 좋은 숲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어떤 나무가 이 땅에 맞는지 알아야 하고, 뿌리를 내릴 수 있는 자리인지 살펴야 한다. 심는 일보다 어려운 것은 자라게 하는 일이다.
공공기관 유치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기관을 데려오는 것이 나무를 심는 일이라면, 그 기관을 중심으로 기업이 모이고 일자리가 생기며 사람이 자리를 잡는 것은 뿌리를 내리게 하는 일이다. 둘은 같은 일이 아니다.
그래서 기관의 숫자만큼 중요한 것이 사람이 머물 수 있는 조건이다. 아이를 키울 의료와 교육, 일할 곳과 살아갈 환경이 함께 갖춰져야 한다. 어린이 전문 통합의료센터와 교육 여건을 둘러싼 김천의 고민도 결국 이 문제와 맞닿아 있다.
이런 고민은 다른 도시의 경험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싱가포르는 작은 항구도시에서 출발했지만 사람에게 투자하는 길을 택했다. 당장의 자원보다 사람의 역량이 미래의 가장 큰 자산이 될 수 있다고 보았고, 교육과 인재 육성이라는 보이지 않는 나무를 오랜 시간 키웠다.
처음부터 숲이 보였던 것은 아니다. 작은 묘목에서 가능성을 보고, 그것이 자랄 시간을 기다린 것이 결국 도시의 경쟁력이 되었다.
나는 공직에서 오래 일하며 좋은 계획이 반드시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것을 여러 번 보았다. 잘 만든 정책도 사람들의 삶과 연결되지 못하면 현장에서 힘을 잃었다.
시간이 지나 돌아보면 빠져 있던 것은 대개 비슷했다.
그 정책을 실제로 쓸 사람이 어떤 하루를 살아가는지에 대한 이해였다.
행정은 계획서를 만드는 데서 끝나는 일이 아니라, 그 계획을 사람의 삶과 이어지게 하는 일이었다.
남부내륙철도가 놓이고 김천역에 선상역사가 들어서면 이 도시는 또 한 번 달라질 것이다. 그러나 철도가 들어온다는 사실만으로 도시의 미래가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구도심이 다시 사람을 불러들이는 공간이 될지, 아니면 사람들이 더 빠르게 지나가는 통로가 될지는 지금 무엇을 준비하느냐에 달려 있다.
역을 만드는 것이 나무를 심는 일이라면, 그 주변에 사람이 머물게 하는 것은 뿌리를 내리게 하는 일이다.
지금 김천이 심는 나무들이 20년 뒤 어떤 숲이 될지 우리는 알 수 없다.
그래서 더 멀리 보아야 한다.
나무를 심는 사람은 그 그늘의 주인이 되기 위해 심지 않는다. 언젠가 그 아래에서 쉬게 될 사람을 생각하며 심는다.
20년 뒤, 그리고 그보다 더 먼 미래에도 이 도시에 살고 있을 사람들을 생각하며 오늘 필요한 나무를 고르고 심는 일.
그리고 그 나무가 뿌리내리고 숲이 될 수 있도록 돌보는 일.
그것이 지금 우리가 해야 할 몫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