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7년 5월 16일 밤 1시 월남전선 주월한국군 최북단에 주둔한 맹호(수도사단) 26연대 3중대 맞은편 2중대 진지에 베트콩(월남의 공산당)의 기습공격이 감행되었다. 한밤중 2중대에서 들려오는 콩볶는듯한 요란한 총성에 놀라 초병을 제외한 대다수 장병들이 깊은 잠결에서 깨어났다. 2중대 진지 상공에는 조명탄이 쉴사이 없이 터진다. 강 건너 불구경하듯 우리 3중대는 불안한 마음으로 날이 밝기를 기다렸다. 새벽이 되자 우리중대는 총출동령이 떨어졌다. 밤사이 2중대는 엄청난 피해를 입었음이 분명했다. 중대원 절반이 적의방망이 수류탄공격과 총격에 쓰러지고 그 절반이 전사하는 월남전 사상 가장 큰 피해를 입었다. 날이 밝자 우리 중대는 신육크(헬기)에 올라 수분을 비행하여 적의 퇴로를 가로막는 수색작전에 들어갔다. 중대의 주력 1,2소대는 산악지역으로 화기소대와 중대본부는 개활지를 따라 수색작전을 시작했다. 사탕수수밭을 지나 논과 밭이 시야에 들어오고 들국화 활짝피어 있는 농수로와 같은 길게 이어간 방천에 가까이 오자 별안간 탕!탕! 베트공의 총탄이 정확히 우리에게 날아왔다. 순간 으악하는 비명소리 높이 뛰는 척후병 변상병, 벼락같이 엎드린 나는 내 앞의 백일병에게 자세 낮춰, 사격해! 뒷쪽의 분대원에게도 신호를 보냈다. 우리 분대는 일제히 사격을 개시했다. 그사이 나는 최대한의 낮은 자세로 수미터 전방에 보이는 낮은 논둑을 향해 필사적인 포복을 감행했다. 나와 매복된 적과의 거리는 전봇대 한칸사이의 거리. 일단 수류탄 공격권은 벗어났다. 나는 뺨을 땅에 붙인 자세로 총구의 방향과 각도를 잡아 적을 향해 연발 또는 점사격으로 계속 응사했다. 적탄은 내 양쪽 어깨곁에 박혀 흙이 튀어온다.
어머님! 나는 이제 죽습니다. 하루 하루 피를 말리는 운명과 같은 전선의 날들 귀국할 때가 지났어도 보충병이 오지 않아 귀국이 늦어지고 있을때 별안간 죽음의 공포가 이렇게 다가올 줄이야. 어머님! 어머님! 이제 나는! 옆에 쓰러진 변상병은 즉사 한듯 움직이지 않는다. 흩어진 철모와 베낭 “살아야 한다. 살아서 돌아가야해” 발꿈치를 치면서 분대원들에게 신호를 보냈다. 움직이면 죽는다. 자세 낮추고 사격하라는 내 최후의 명령일지도 모른다. 이놈들 내 앞에 오기만 해라 나도 한놈 죽이고 죽는다. 내 그냥 죽을수는 없다. 적이 공격해올때까지 나는 숨을 죽이고 공격해 오기만을 기다렸다. 왠지 포지원이 되지 않아 오기는 극도에 도달했다. 이판사판 적과 대치하며 포지원 사격을 받기까지 1시간 30분은 저승길을 얼마나 오고 갔을까? 살아야 해! 살아서 돌아가야 해! 절박한 사선에서의 강렬한 삶의 욕망 예고없이 날아든 적탄에 쓰러져 인간 운명이가는 마지막 으악소리! 생물에서 무생물을 번져가던 그 소용돌이 물결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이것이 운명일까? 운명은 바로 자기자신. 자신을 운명이라고 외친 항가리의 극작가 게르데스의 절규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적과의 대치시간이 길어진 것은 그들의 고성능 무전기가 우리 무전기를 교란시켰기 때문이며 처음 날아온 거리 측정의 포탄이 바로 내 머리 위에서 터져 나는 온통 붉은 황토흙을 뒤집어 썼다. 휴~! 순간 죽은줄 알았다. 그러나 살아 있음을 느꼈다. 하마터면 우리 포에 아찔한 순간이었다. 야! 이새끼야! 사격중지시켜! 나는 후방을 향해 있는 힘을 다해 소리질렀다. 무수한 포탄이 들국화 피어난 농수로를 강타하자 적들은 퇴각했다. 내앞의 백일병과 강병장이 이끈 분대원은 엄패지역을 향해 후퇴하다가 모두 총을 맞은 상태, 돌무더기 뒷쪽엔 온통 내 분대원들의 울음바다, 3명은 그자리에서 전사하고 3명은 다리, 허벅지, 옆구리에 총상을 입고 신음과 아우성이었다. 왜! 움직였나! 그 자리에서 방어하라고 했는데 왜 움직였나! 나는 소리 질렀다. 명령불복종하고 살겠다고 엄패지역을 향해 달아나다 적들의 집중사격을 받은 것이다. 척후병 변광래 상병의 죽음이야 어쩔수 없는 상황이지만, 이날이 분대장으로서는 가장 서운한 날!
사자는 말이 없네! 피비린내 나는 산야. 핏빛음성 영혼깊이 응고 되고 사관도 부하도 모두 넋을 잃었다. 그날의 슬픔을 잊지못해 가능하면 나는 매년 호국의 달에 국립묘지를 찾는다. 변광래 상병의 묘비를 바라보았을때 왈칵! 북받쳐 오는 슬픔에 그만 통곡하고 말았다. 한번 분대장은 영원한 분대장. 귀신잡는 김하사 조국 위해 먼저가신 ‘님’ 지켜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