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more
특집 종합

농소면편(마을이야기 74)

편집국 기자 입력 2006.10.12 00:00 수정 0000.00.00 00:00

▣ 농소면편


 


▷봉곡1리(샙띠,우봉골)


  밤실로부터 용암을 지나 지방도를 따라 한참을 더 들어가다 보면 샙띠와 우봉골로 이루어진 봉곡1리를 만날 수 있다.


  이 마을은 김해김씨 충량(忠良)이라는 분이 임진왜란때 남원에서 이주하고 이후 화순최씨 12세손 세갑(世甲)이란 분이 조마면 신안에서 이주하여 정착한 이래 대대로 김해김씨와 화순최씨, 동래정씨가 집성을 이루어왔다.


  두 마을중 샙띠는 조선시대까지 개령현 농소면에 속한 봉현리(鳳峴里)로 불리다가 1914년 봉현과 인근의 사실, 노산을 합해 봉곡동이라했고 1960년대초 부터 인근 우봉골에 새로 마을이 형성되면서 1971년 샙띠마을이 우봉골과 함께 봉곡1리로 분동된 후 오늘에 이르고 있다.


  샙띠라는 지명은 예부터 마을 뒷산에 왜가리와 백로가 집단으로 날아와 산다하여 새터 또는 봉황새 봉(鳳)자를 써서 봉현(鳳峴)이라했는데 음이 변해서 샙띠로 정착된 것으로 보이며 우봉골은 연명리 수오동으로 넘어가는 고개아래의 작은 마을로 우봉골이라는 골짜기에 마을이 형성되었다하여 골의 지명을 따서 마을이름도 우봉골이라 했다고 마을이장 최용원(45세)씨가 전한다.


  이 마을에도 예부터 10년마다 장승을 깎아 세우고 온 동민이 모여 장승제를 올리던 풍습이 있었는데 지금은 장승배기, 장승골이라는 지명으로만 남아있을 따름이다.


  마을뒤에는 조선말 이 마을에 살았던 이종화(李鍾華)의 처로 남편이 병사하자 삼종지의(三從之義) 즉, 미혼에는 아버지를 따르고 출가하면 남편을 따르고 남편 사후에는 이들을 따라야 한다는 여자의도리를 지키겠다며 자결을 선택한 열녀인 김해김씨의 열녀각이 섰는데 1847년 나라에서 정려가 내리고 1853년 정려문을 세워 후손의 부역이 면제되었다고 전해지는 마을의 자랑이다.


 


 


 




  ▷샙띠마을 김해 김씨 열녀각


 


  ▷봉곡2리(사실, 노산)


  샙띠마을 위 백마산 별미령을 경계로 성주군 벽진면과 접하고있는 봉곡2리는 사실과 노산 두 마을로 이루어져있다.


  샙띠와 마찬가지로 김해김씨가 집성을 이루고 있는 마을로 마을뒤산인 백마산에 소재한 고방사(高方寺) 아래에 있는 마을이라하여 사실(寺室), 사곡(寺谷)이라 했다고도 하고 마을에 새가 많아 새실또는 새 조(鳥)자를 써서 조곡(鳥谷)이라 했다고도 한다.
또 노산마을은 뒷산에 갈대가 많아 갈대 노(蘆)자를 써서 노산(蘆山)이라 했다고 전해진다.


 


 


 




 


  ▷사실마을 표지석


 


  백마산을 넘어 성주로 연결되는 험준한 고개인 별미령(別味嶺)은 예부터 성주에서 서울로 갈 때 거쳐야하는 고개로 백마산의 갈대밭을 헤치고 고개를 넘다가 숨을 돌리며 걸치는 막걸리 맛이 일품이라 하여 별미령이란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마을뒤 백마산에 소재한 고방사는 신라 눌지왕2년인 418년에 아도화상이 창건한 사찰로 전해지는데 당시 큰 규모였으나 임진왜란때 소실되어 많은 전각이 불에타고 법당만 남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백마산 고방사 전경


 


  백마산에는 예부터 묘를 들이지 않는 산으로 유명한데 산에 묘가 들어서면 가뭄이 든다는 속설이 있어 가뭄이 드는 해에는 온 산을 뒤져 암장한 묘를 찾아 해맨다고 마을이장 김길웅(70세)가 전한다.


                                                        <글/김천문화원 사무국장 송기동>



저작권자 김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