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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종합

개령면편(4)

편집국 기자 입력 2006.11.16 00:00 수정 0000.00.00 00:00

  ▷서부리(부억골,화목골,우량골)


  개령면사무소가 있는 동부리로부터 신룡리로 이어지는 도로변 호두산 아래로 길게 뻗어있는 한 마을속의 세부락, 서부리를 찾았다.
서부리는 조선시대까지 개령현 서면에 속한 부억골, 화목골, 우량골로 나누어진 별개의 부락이었는데 개령현청 소재지였던 동부동과 인접한 관계로 마을이 커지면서 1914년 개령면 서부동으로 통합되었다.


  이 마을은 전주이씨 일소(逸素)라는 선비가 임진왜란을 피해 마을에 정착하고 뒤이어 김해김씨가 입향하면서 두 집안이 대대로 집성을 이루어왔다.
서부리로 속한 부락중 우량골(友良谷)은 개령중학교와 접해있는데 


  예부터 주민이 우애있고 순하다 하여 붙인 이름이며 마을회관이 있는 화목골(和睦谷)은 마을주민들이 화목하고 사이좋게 살자하여 화목이라 마을이름을 지었다고 전해진다.
또 부억골(富億谷)은 마을에 부자가 많아 부자 부(富)자로 이름했다고 마을주민 전대하(71세)씨가 전한다.


  관련 자료에는 서부리로 속한 옛 부락중에 대나무가 많아 죽전골(竹田谷)로 불린 마을이 호두산 아래에 있었다는 기록이 나오는데 마을주민들로 부터는 확인 할 수 없었다.


  서부리는 호두산(虎頭山) 또는 와호산(臥虎山)으로 불리는 호랑이가 엎드려있는 산을 따라 길게 뻗어있는 형국인데 이 산은 개령의 진산인 감문산 자락으로 풍수적으로 볼 때 호랑이 형상의 호두산이 감천을 건너 맞은편 아포읍 대신(大新)마을을 노려보는 형국인지라 예부터 대신마을에 불길한 일이 자주 발생해 이를 막아볼 요량으로 마을 뒷산을 “개를 매달아 놓은 산”이란 뜻의 구현산(狗縣山)으로 고치고 마을 이름도 함정을 뜻하는 함골(陷谷)로 고쳐 호두산 호랑이가 개를 매달아놓은 대신마을을 향해 달려들다가 함곡 즉 함정에 빠지게 하여 마을로 미치는 불길한 기운을 없애고자 했다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전해지는 바로 그 산이다.


  호두산으로부터 신룡리 방면으로 호랑이의 긴 꼬리처럼 야트막하게 뻗어가던 야산은 뱀의 형상이라는 사산(蛇山)으로 연결되는데 사산아래 언덕빼기 도로변에 웅장한 규모의 3층석탑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이 탑은 김천 최대의 석탑으로 원래 신라시대에 창건된 사자사(獅子寺)가 있던 절터었는데 1473년(성종4년) 개령현감 정란원(鄭蘭元)이 절을 허물고 그 자재로 개령향교를 세웠다.


  이같은 사실은 영남지방의 역사인문지리서인 교남지(嶠南誌)의 개령군편에“在君北二里舊以郡西獅子寺爲學齊成宗癸巳縣監鄭蘭元創建於郡北三里....” (군 북쪽 2리에 있던 옛 사자사를 성종4년에 현감 정난원이 군 북쪽 3리에 학제(향교)로 세우니)라고 기록하고 있다.


  숭유억불을 국시로 건국한 조선이 전국의 수많은 사찰을 폐하고 유교의 산실인 향교나 서원을 세웠다는 사실을 확인해주는 대목이다.


  당시 사찰의 목재와 석물들이 대부분 향교건축에 소요되고 너무커서 용도를 찾지못한 몇개의 석탑 잔해들만이 남아 천년사찰 제 절터를 홀로 지키다 지난 97년 복원되어 한티고개(熊峴)를 넘나드는 길손들을 고즈늑히 굽어 보고 있다.


 


 




  ▷서부리 옛사자사 절터의 석탑. 뒤로 장부인릉이 보인다.


 


  탑 뒤로는 야산크기는 족히 되어보이는 구릉지가 있는데 감문국시대의 왕비 노로부인의 능(陵)으로 알려진 장부인릉(獐夫人陵)인데 주변에 민묘가 들어서고 정상부가 포도밭으로 개간이 되어 본디 형체를 찾을 길이없다.


  노로부인 또는 장부인의 존재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는데 일부학자들은 노로(爐盧)는 쇠를 다루는 화로(火爐)를 가리키는 것으로 감문국시대는 원삼국시대 즉 철기시대였으므로 철을 다루는 계층인 지배자를 상징하며 노로부인의 노로(爐盧)를 동물 노루(獐)로 잘못 표기해 장부인(獐夫人)으로 기록되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조선후기의 북학파 실학자요 발해고(渤海考)의 저자인 유득공(柳得恭1749-  )은 전국의 고도(古都) 20여곳을 답사하다 이곳에 들러 시 한수를 읊어 장부인과 감문국을 회고했다.
獐姬一去野花香  (장부인 가고 들꽃 향기로 남고) 埋沒殘碑古孝王  (묻히다 만 비석은 옛 금효왕의 것일세) 三十雄曾兵大發  (서른명의 군사 크게 일으켜) 蝸牛角上鬪千場  (달팽이 뿔 위에서 천번은 싸웠으리)


 


                                   <글/김천문화원 사무국장 송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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