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30년)동안 한 뿌리 한 정당에서
정치활동을 해온 사람에게
이렇게 정치적 살인행위를 할 수 있는가?
박팔용 전 김천시장이 한나라당 경북도당의 입당보류에 대해 한나라당 경북도당 김광원 위원장 앞으로 진실촉구를 요구하는 내용증명을 발송한바 있어 본지에서는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위해 내용증명 전문을 입수 보도한다. <편집자주>
저는 1973년 20대 청년시절 대한체육 과학대학교 재학 시 전국 대학생 봉사대장을 맡아 활동하고 있던 중 이를 유심히 지켜본 당시 여당인 민주공화당 의장 이었던 백남억 위원장으로부터 고향을 위해 함께 일해 보자고 해서 스카웃 되어 고향에서 민주공화당 김천금릉지구당 청년부장으로 정당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대통령 선거 때마다 당명이 바뀌게 되어 민주정의당 김천금릉지구당 사무국장, 민주자유당 김천금릉지구당 사무국장, 민주자유당 중앙당상무위원을 역임하던 중 1991년 민주자유당 공천을 받아 경북도의회 의원에 당선 되었습니다.
1995년 민선 초대시장 출마 시 민주자유당 공천을 신청하였으나 박정수 당시 지구당위원장을 십 수 년 동안 모셔왔지만 공천을 받지 못해 시장을 출마하기 위해서는 당적을 보유할 수가 없는 상태라 어쩔 수 없이 이십년 이상 몸 담아온 한 뿌리 한 정당인 민주자유당을 탈당하고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민선초대 김천시장에 당선 되었습니다.
1996년 2월 민주자유당이 신한국당으로 개명이 되고 당시 총재였던 이회창 총재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할 때 당에서 입당을 해달라는 간곡한 권유가 있어 그 당시 경북의 시장, 군수 6명과 함게 신한국당(대선직전 한나라당으로 당명개정)에 입당하여 최선을 다하였으나 이회창 후보는 낙선되고 한국정치역사상 처음으로 야당 후보인 김대중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이 되었습니다.
1998년 6월 저는 한나라당 공천을 받아 민선2기 김천 시장에 당선이 되었습니다. 야당이 정권교체에 성공한 김대중 정부는 특히 경북에서 한나라당 소속으로 당선된 시장, 군수들이 도저히 행정을 펼칠 수 없을 정도로 억압과 탄압을 하게 되었고 이에 견디지 못한 당시 김관용 구미시장, 이원식 경주시장, 최재욱 경산시장, 김진영 영주시장, 최재영 칠곡군수, 정해걸 의성군수, 김상순 청도군수 등 10여명의 시장, 군수들이 탈당을 하였고 오죽하면 경주 이원식시장, 영주 김진영시장은 새정치국민회의에 입당을 하였고 탈당한 다른 시장, 군수 등은 무소속으로 있었으며 경북지역의 재선 시장, 군수 중에서 저와 상주의 김근수시장 두 사람만 어떠한 압력에도 굴하지 않고 당 을 지키기 위해 갖은 고생을 하며 당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당시 압력행사에 대해 지금도 기억이 생생한 일은 모기관의 이○○ 청장(전남 목포출신)이 직접 저를 만나 “박시장님 우리의 입장이나 체면도 좀 세워 주어야 되지 않겠습니까?”라면서 “구미시의 김관용 시장도 탈당해서 무소속으로 있기로 했으니까 박시장님도 국민회의에 입당은 하지 않더라도 탈당만 좀 해주시지요.”라면서 회유를 위한 협박성 발언을 수차례 하는데도 “나는 공당의 공천을 받은 사람이고 시민 뜻에 따라 당선된 사람이기 때문에 내가 시장을 그만두면 두었지 탈당을 할 수가 없다.”고 강하게 버티자 그 괘씸죄로 김천시의 관계 국.과장, 주요부처 직원들은 근 1년간 주야 없이 검찰청으로 불러서 “당신이 승진할 때 시장에게 돈을 준 게 아니냐?”고 강압적인 조사를 하고 그것도 모자라서 시와 관계되는 공사를 하는 시공사 대표들에게는 “돈을 주고 공사를 맡은 게 아니냐?”등으로 1년 동안이나 시달리는 것을 보고 “과연 박시장이 탈당을 하지 않고 버틸 수 있을까?”라고 했던 말들이 지금도 김천시 공무원이나 시민들에게 전설화 되어있습니다.
이렇듯 엄청나게 어려운 일을 당할 때에는 당 으로부터 어떠한 보호나 위로를 받은 적도 없으며 야당으로서 당이 어려울 때 민선시장으로서 4년 동안이나 당 을 지켜주었는데 2002년 지방선거시 한나라당은 온갖 어려움을 무릅쓰고 당을 지키고 당의 자존심을 지켜온 사람에게 당의 공천장을 갖다 바쳐도 모자랄 판에 2002년 3월 7일 경북 김천 지구당위원장(임인배의원) 주관으로 치루어진 자체 당내경선 도중 특정인을 공천 하기위해 번호가 개제된 투표용지를 사용하는 부정투표를 진행하다 발각되어 공천경선투표가 부정으로 중단된 뒤 며칠 후 적법한 절차를 무시 한 체 특정인을 공천하였기에 저는 공천에서 탈락하는 배신을 당하였고 자기 일신의 영달이나 편의를 위해 굴욕에 못 참고 탈당한 타 지역의 시장, 군수(구미, 의성, 칠곡, 청도, 경산등)들은 재 입당하여 공천을 받는 비참한 현실을 보고 정치판의 비애를 느끼며 3대 민선 시장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한나라당을 탈당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압도적으로 당선 되었습니다.
3선 민선시장 재임 10여 년 동안 전국에서 제일 낙후된 김천시를 전국 최우수 도시로 만든 3대 기적을 이룩하고 명예롭게 퇴임 한 후 18대 대통령 한나라당 후보 경선에서는 제가 비록 무소속의 입장이었지만 박근혜 후보 경북특보단장을 맡아 최선을 다하였고 경선 후 낙선한 박근혜 후보가 깨끗하게 승복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면서 한나라당의 정권 재창출에 밑거름이 되기 위해 이명박 한나라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 경북지역발전위원장겸 김천지역위원장을 맡아 제가 오랫동안 무소속으로 살아남기 위해 평소 관리해 오던 3천여명의 조직명단을 중앙선대위 직능본부발전위원회에서 보내달라고 해서 보내주었고 나름대로는 열심히 최선을 다하여 이명박 후보의 당선에 큰 역할을 다 하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지난해 대선기간 중 이회창 후보가 대통령 후보로 출마선언을 한 직후인 2007년 10월 14일 한나라당경북도당 으로 부터 금일 당장 입당을 해달라고 전화가 걸려 와서 “왜? 여태까지 가만히 있다가 갑자기 입당을 하라고 하느냐”고 그 이유를 물어보니까 한나라당 경북도당 사무처장(조영삼)이 말하기를 “중앙당 최고위원회의에서 결정된 사항인데 이회창 후보가 창당을 하면 지역유력 인사들이 이회창이 만드는 당으로 영입될지 모르니 김천의 박팔용 전 시장 같은 분 을 빨리 입당 시키라고 했다.”면서 오늘 중으로 입당원서를 제출해달라고 해서 마침 그때 나는 타지에 출타 중이라 사무실에 있던 최해천, 정경택을 경북도당으로 보내 입당원서를 제출하게 되었으며 그 후 경북도 당에 확인을 해보니 지역구 국회의원의 동의가 있어야 하는데 김천에는 임인배의원의 반대가 심해 보류되고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 후 지난해 11월 29일 김천파크호텔에서 개최된 본인이 위원장으로 있는 이명박 선대위 경북발전위원회(전직 시장, 군수 수십 명 참석)대책회의 시 김광원 도당위원장, 중앙의 권용문 위원장이 참석하여 권위원장이 인사말에서 “오늘 축하할일 이 있다”고 하면서 “이명박 후보와 이상득부의장이 직접 약속한 사항”이고 여기오기 전 에 이명박 후보와 전화통화를 했는데 “지금은 대선기간중이라 일단은 대선을 잘 치루고 난후 이미 입당원서를 제출한 분들은 일괄 입당처리 할 테니 우선은 대통령 선거에 최선을 다해 달라”고 하여 이명박 후보의 대통령 당선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했습니다. 이번에 일어난 행위는 이명박 당선자와 중앙당의 뜻 이 아닌 것은 분명히 알게 되었고 전적으로 누구의 사주를 받았는지는 모르지만 경북도당 관계자의 농간인 것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작년에 이회창 후보가 출마 한다고 할 때는 다급하니까 급히 입당을 하라고 해 놓고 입당을 보류하는 그 자체만으로도 개인적인 명예나 자존심이 상하는 문제인데 대통령에 당선 되고 나니까 이제 와서 사실 무근인 민주당 운운하면서 입당을 보류하였다고 신문, TV등 언론에 발표하여 정치적 살인행위를 하는 것은 도저히 묵과할 수 없습니다.
공당의 자세가 이래서야 집권여당이 될 수 있겠습니까? 전혀 터무니없는 사실로 정치적 살인행위를 자행한 한나라당 경북도당 관계자는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할 것이며 본인은 민주당에 입당한 사실이 전혀 없는데도 민주당 당적을 보유했다고 한 그 소명자료를 제출해 줄 것을 강력히 요청하는 바입니다.
또한 사실무근의 이유로 입당 보류하는 것 자체가 당이 어려웠을 때 이 박팔용만큼 공헌한 사람도 없을 것이며 도덕적이고 정도로 살아온 본인의 정치신의를 무참히 무너뜨리는 행위로서 경북도당 관계자는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며 신문, TV 등을 통해 소상히 진실을 밝혀 줄 것과 본인이 충분히 납득할 수 있도록 경북도당 차원의 해명서를 본인에게 보내줄 것을 강력히 요청하며 이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모든 법적인 대응을 할 것을 밝혀 두는바입니다.
2008년 1월 31일
국회의원예비후보 박팔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