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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종합

삶의 향기- 박스버스 타고 문학기행

김천신문 기자 입력 2018.04.10 17:55 수정 2018.04.10 05:55

편재영(시인·율곡동)

ⓒ 김천신문
 김천문화원에서 수업하는 3개 문예창작반 수강생 사십 명의 문학기행 날이다. 지도선생님과 함께 경남 하동 이병주문학관과 박경리 소설 ‘토지’ 배경이 된 평사리 최참판댁을 둘러보기 위해 준비된 버스에 올랐다.

봄비를 맞으며 활짝 핀 벚꽃을 두고 버스가 고속도로 휴게소를 지나자 모두들 촉촉하게 젖어 드는데 갑자기 창문이 날아갔다고 뒷자리가 웅성거린다.

천정에 달린 들창문은 비닐봉투를 연결해 의자에 묶여 있었고 뒤꽁무니 달린 뻥 뚫어진 큰 창으로 찬바람과 비가 들이치는데 어이가 없다.
뒷자리에 앉은 수강생 몇이 금 간 유리창이 비에 허물어졌다고 했다. 황당한 선생님은 전화를 했다.
“왜, 이런 차를 보냈습니까? 창문이 날아갔어요.”

운전기사는 고속도로 갓길에 버스를 세우고 다음 휴게소까지 좀 참아 달라고 사정을 한다.
뒤따라오던 승용차 앞 유리창에 파편이 떨어져 금이 갔다.
조심조심 휴게소까지 가보는데 도착해서 창문을 고치려는가? 버스를 바꾸어주려는가?
일기예보에 전국적으로 하루 종일 비가 오고 태풍이 불겠으니 고층 건물의 유리창에는 테이프를 붙이고 미리 예방하라 방송하는데 걱정이 되었다.

운전을 하다 보면 가끔 승용차에 ‘아기가 탔어요!’ 라고 쓰인 글귀는 봤지만 ‘창문이 날아갔어요!’는 난생 처음 본다.
날씨 탓에 선뜻 내키지 않은 여행이었으나 하동의 섬진강도 보고 글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추억을 함께 만든다는 기쁨이 컸다.

시인은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감성과 상상으로 글을 쓰고 긍정적 사고로 희망을 도출해낸다고 하더니 맞는 말이다.
누구 탓도 원망도 없이 선생님 가르침대로 여유와 유머를 잃지 않고 어린이처럼 주어진 환경에 순응할 뿐이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수강생들은 말을 아끼고 꽃띠들은 신기하고 재미있다는 듯 깔깔대다가 완전벨트를 매기도 한다.
한참 후 도착한 휴게소에서 버스 기사는 빈 박스를 구해 뚫린 창을 막고 날아가지 못하도록 테이프를 붙였다.
차주 대신 왔다는 기사 처지도 딱하지만 강한 바람을 타고 고속도로 위로 박스가 날아가면 어떻게 되겠는가? 모두들 불안한 눈치다.

박스버스를 타고 경남 하동의 벚꽃 길을 따라 이병주문학관에 도착하니 유홍준 시인과 관장이 나와 우리를 반긴다.
대표작 ‘지리산’ 은 어느 능선과 이어지는가 알 수 없지만 산과 산 사이에 문학관이 외따로 있었다.

시인으로 소설가로 유명한 이병주문학관 전시실에는 연대기 순서에 따라가며 작가의 생애와 작품 세계를 엿볼 수 있도록 유품과 작품 등이 소개 글과 함께 전시되어 있었다.
작가는 피에로의 국화에서 “어떤 주위를 가지는 것도 좋고, 어떤 사상을 가지는 것도 좋다. 그러나 그 주위 사상이 남을 강요하고 남의 행복을 짓밟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자기 자신을 보다 인간답게 하는 힘이 되는 것이라야 한다”는 글을 남겼다.

문학 현장에서 우리는 사진에 목숨 건 사람처럼 비 때문에 단체사진을 건물 안에서 찍고 내려와서 밥 먹고 난 뒤 비가 그쳐  또 가서 찍었다.
봄비가 내리는 섬진강은 쉬지 않고 흘렀다.

강변의 팔십 리 벚꽃은 다 지고 없었지만 창창한 고목에 황홀했을 순간을 떠올리게 하고 농부의 손길로 길들여진 배꽃은 어장에 누워 단아한 여인의 미소를 지으며 줄을 이었다.
달리는 버스에 몸을 맡긴 채 소녀처럼 감상에 젖는데 평사리 최참판댁을 지나간 버스는 좁은 길에서 회전하느라 끙끙댄다.

버스에서 내려 매표소를 지나 올라가니 드라마 세트장이 나온다.
TV 연속극으로 본 서희아씨의 기억이 되살아난다. 길상이와 서희 아씨 얼굴에 기념사진을 찍었다.  

최참판댁의 고래 등 같은 기와집 주위에는 종 이름이 새겨진 작은 초가집이 여러 채다.
악양벌의 모든 토지가 최참판 소유라니 마을 사람들은 모두 소작인으로 산 것이다. 
사랑채에 들어서니 당대의 부와 권력을 누리던 주인공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고 최참판 모습의 할아버지가 사랑채에 앉아 있는데 진짜 사람인가 헷갈릴 정도로 움직이질 않는다.
안채, 별당, 사당은 제대로 관람도 못하고 집 뒤에 있는 평사리문학관으로 발길을 돌렸다.
대나무 숲길로 올라가니 조용한 전시실에 소설 ‘토지’는 이백 자 원고지 삼만천이백 매를 집필한 박경리 작가의 열정으로 탄생되었다고 소개한다. 이십육 년간의 대작이다. 한 여류 작가의 힘이 놀랍기만 하다.

작가는 갔지만 ‘토지’는 살아 있고 많은 관광객이 평사리를 찾는다.
책을 읽고 갔으면 감동이 컸을 텐데 의미도 모른 채 시간에 쫓겨 부지런히 사진을 찍었다.
어두워지는 평사리는 태풍이 불어 낙하산이 된 우산을 쓰고 무사히 돌아오는데 겁도 없는 버스가 김천문화원 앞 일방통로 역주행을 한다.
“어쩌자고 이리 들어 왔습니까?”
이런 저런 마음고생 많이 한 기사는 저녁식사도 않고 구미로 줄행랑치고 착한 바보들의 하루는 호호 하하 재미나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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