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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천신문 |
‘어린왕자’를 쓴 생텍쥐페리는 지도자란 책임을 지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래서 말인데 선거철만 되면 그 많은 지도자들은 어디에 숨었다가 이렇게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나 싶으면서 이건 또 뭔가 하는 씁쓸한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과연 그들에게 책임은 무엇이고 애국심은 무엇이며 애향심은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선거철만 되면 말로는 개혁과 혁신을 부르짖고 행동은 구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겉 다르고 속 다른 병든 속내는 우리 사회에 혼란만 부채질 하는 한 축으로 자리 잡은 지 이미 오래다.
분열의 유전자가 낳은 혼돈
말은 인간의 굴레다 즉 자기가 한 말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말에 대한 책임이다. 우리는 이들이 하는 말에 눈 부릅뜨고 정신 바짝 차리고 무너지는 담장 밑에 서 있는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어떤 선택이 가장 옳은 선택인지? 여기서 우리는 그들이 정말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아온 사람인지 주변에는 어떤 사람이 같이 하는지 알아야 할 것이다.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겠지만 특히 중요한 것은 인간과 사회에 대한 애정 있는 이해와 포용력 그리고 품격이다.
우리는 너무나 많이 속아왔다. 국민의 선택권까지 얕잡아 보면서 결말이 모호한 일일드라마처럼 비상식과 혼돈으로 몰아가면서 온 국민을 헷갈리게 하는 현실을 우리는 어떤 시선으로 바라 봐야 할까?
동기와 표방하는 명분도 없이 안 되겠다 싶으면 국민의 판단력을 흐리게 하며 비장한 한탕주의로 깜짝 쇼를 연출해서 국민의 넋을 빼 놓고 승부수를 던진다. 이런 행위는 한마디로 국민을 향한 테러이며 폭력이다.
철학도 비전도 없이 무조건 되고 보자는 속셈이요 유일한 전략이며 표방한 명분 속에 내재한 구체적 함의일 것이다.
국민을 대중조직의 만만한 대상으로 얕잡아 보는 국민관이며 예의를 모르는 냉소적이며 불손하고 턱없이 모욕적인 국민관이다.
지도자에겐 쉬운 문제는 결코 오지 않는다. 쉬운 문제라면 이미 다른 사람이 해결했을 것이다. 국민스스로가 할 수 없는 일을 하는 것이 지도자가 해야 될 일 아닌가?
아무것도 준비된 것도 없이 ‘이정도면 혼자 해 먹겠지’하는 생각을 만에 하나라도 한다면 그것은 무모함을 넘어 무능과 무책임의 산물이 될 것이다.
지도자라는 자리는 해먹는 자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온갖 언론을 통해 매명하고 정치에 입문하면 국민에 대한 배신을 식은 죽 먹듯이 하는 이것이 정상적인 나라에서 있을 법한 일인가?
그렇게 정치를 하고 싶으면 지금이라고 신발 끈 메는 법을 가르쳐 준 사람을 기억하라
우리의 체온을 체감할 수 있는 자
미움과 원한의 과거로 역사를 축적하면 그 집안, 그 나라의 역사는 망한다.
이제 우리는 우리의 체온을 체감할 수 있는 자를 찾아야 한다.
인간 수명이 횟수가 아니라 호흡수로 정해져 있다면서 냉정을 권장하는 어느 문화권의 속담은 시사하는 바가 커다.
착한 것과 못난 것은 생판 다르며 세상에 악덕이 번창하는 이유는 못난이 때문이라고 그 지혜는 가르친다.
후회는 아무리 빨리해도 이미 늦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