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지에서 고향 말을 쓰는 사람을 만나게 되면 모르는 사람이라도 반가운 마음이 든다. 말 하나로 구수한 고향의 정을 느끼게 하는 ‘지역의 방언’을 모으는 데 20년을 공들인 사람이 있다.
하루에도 수십 개의 신종어가 생겨나고 또 사라지는 요즘, 잊혀 사라지는 지역의 방언에 애착을 갖고 6천여 개의 사투리를 모은 이종개(78세) 씨를 만나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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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천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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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투리는 우리가 지키고 보존해야 할 소중한 문화유산입니다. 사투리에는 그 지역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있습니다. 우리 조상의 삶의 숨결이 녹아든 방언들이 흔적없이 사라져버리게 놔둘 수 없어 하나, 둘 모으기 시작한 게 6천 개가 넘었네요.”
이종개 씨가 지역 방언을 모으기 시작한 때는 2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국사진작가협회 창립준비위원장과 제2대 회장을 역임한 이종개 씨는 ‘시가 있는 사진’에 관심을 가지며 2000년도에 시 창작반에 들어간다.
당시 시 창작반에서 시를 배우던 중 자신이 사투리인 줄 모르고 사용한 단어가 사투리로 지적받게 된다. 또 때마침 김천 사투리 50여 개가 실린 김천시지(金泉市誌)를 보게 되는데 일반인인 이 씨가 보기에도 김천의 사투리에 대해 자료가 빈약해 보여 이를 계기로 김천 방언을 모으기로 결심한다.
“고향이 김천이니 어릴 때 사투리를 들으며 자랐고 서울 생활도 15년 정도 했기에 사투리와 표준어를 구분할 수 있는 제가 방언을 모으기에 제일 좋은 조건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처음엔 작은 수첩을 들고 다니며 메모를 하니 염탐꾼으로 오해를 받기도 했지요. 지금 생각하면 웃고 넘길 일이지만 당시에는 황당했죠. 스마트폰이 처음 나오자마자 구매해서 거기에 저장하기 시작한 뒤로는 그런 오해는 받지 않게 됐습니다.”
단국대 경제학과 재학시절과 군 복무 시절 또 직장생활 등을 더해 15년 동안 서울과 경기도에서 생활한 것이 이종개 씨가 표준어와 방언을 구분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방언수집 초창기엔 수첩과 펜을 항시 갖고 다녔다. 어느 순간에나 주변 사람이 사투리를 쓰면 그 자리에서 바로 메모하기 위해서였다. 그렇지않으면 잊어버리기 십상이었다. 이로 인해 염탐하는 것으로 오해받아 수첩을 뺏으려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했다.
이런 어려움은 이 씨가 2007년 스마트폰을 사용하면서부터 해결됐다. 핸드폰의 노트 기능을 사용해 기재하니 그냥 자신의 핸드폰을 보는 것으로 주위에서 대수롭지 않게 여겼기 때문이다.
이 씨가 사투리를 모으는 주수집대상지는 경로당이었다. 70대 이상의 김천 토박이 어르신들이 모이는 경로당에서 예사로 쓰는 말 중에서 새로운 방언을 듣게 되는 날, 그는 보석이라도 얻은 기분이 들었다고 한다. 새로운 방언 하나를 모으는 것이 돈을 모으는 것보다 더 좋았다는 이 씨는 이후로도 줄곧 방언수집의 묘미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그러다 문득 자신이 제대로 맞는 방언을 모은 것인지 불안한 마음에 그동안 모은 방언들을 전문가에게 내보일 생각을 하게 된다.
“제가 국문학 전공이 아니다 보니 혹시 잘못 수집한 게 아닐까 싶어 모 고등학교의 국어 교사에게 감수를 의뢰했더니 자신이 전혀 모르는 말이 많으니 다른 사람에게 맡겨 보라는 답을 들었습니다. 신·구세대 간 사용 언어의 장벽이 높아 의사소통이 두절 되는 데다 사투리는 학문적 대상도 아니어서인지 더 쉽게 사라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그때 더 확고히 들었지요. 앞으로 20~30년 후 노년 세대가 모두 돌아가시고 나면 우리 선조들의 얼이 살아있는 지역의 방언도 함께 사라질 것 같아 걱정입니다.”
골동품을 모으듯 소중하게 김천 지역 방언을 수집해 온 이종개 씨의 마지막 꿈은 자신이 수집한 사투리를 체계적으로 정리해 제대로 된 자료로 남기는 것이다.
<본지는 2월부터 이종개 씨가 수집한 김천 방언을 선별해 매주 연재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