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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시론 - 바람이 좋아, 풍년이 좋아

김천신문 기자 입력 2022.08.18 11:10 수정 2022.09.23 11:10

추풍령 지명 유래와 변천

ⓒ 김천신문
추풍령이란 지명엔 어떤 뜻이 담겨 있을까. 당(唐)나라가 신라를 침공할 때 이 고개에 진영을 설치했기에 당마루고개, 당령(唐嶺)이라 이르기도 한다. 고개의 들판에 메밀농사로 인한 하얀 메밀꽃이 뒤덮혀 백령(白嶺)이라고도 했다.

추풍령은 충청북도와 경상북도의 경계에 있다. 고려 초 전국에 525역, 이에 다시 22역도(驛道)를 두어 관장할 때 김천역(김산현), 추풍역(어모현)이 있었다. 물론 말이 운송 수단인 역참이다. 이 때에 秋風驛(추풍역),‘秋風岺(추풍령)’(『고려사 지리지』, 14451년 조선 문종 1)이라 적었다.

조선조 들면서 추풍역은 김천역도의 속역이 되었는데, 이 때엔 추풍을 ‘풍년 풍(豊) 자’ ‘秋豊(추풍)’으로 썼다(『세종실록 지리지』(1432년 세종 14), 『신증동국여지승람』(1611년 광해군 3)). 이렇듯 추풍령 일대는 행정 소속이 충청도와 경상도를 여러 번 오갔다. 조선 전기 이조좌랑을 지낸 문신 박융(朴融 호 憂堂, 미상 ~ 1428)은 시에서 ‘대숲에 서늘한 바람이 일고 솔밭에 푸른빛이 떠도니, 객사의 난간에 의지해서 놀기에 알맞구나’라 읊었다. 충청도관찰사를 지낸, 조선 초의 문신 조위(曹偉 호 梅溪, 1454 ~ 1503)는 김산 동헌 중수기에서 ‘높은 산마루와 중첩한 산마루들이 책상 앞에서 두 손을 마주 잡고 읍을 하고, 무성한 수풀과 평평한 풀밭이 주렴과 창살에 아롱지며, 맑은 바람이 시원하고 새들이 울면서 날아다니는 등 그윽하고 고요하고 깨끗한 모습’이라 노래했는데 이는 황악산, 추풍령 발치의 눈앞에 펼쳐진 경치를 가리킨 것이다.

조선 후기의 많은 인문지리서에서는 다시 ‘바람 풍(風) 자 ‘秋風’, ‘秋風岺’, ‘秋風岭(추풍령)’ 등으로 표기했다(『동여비고』, 1682년 숙종 8 추정).『해동지도』, 1724년 경종 4. 등). 김정호의 『대동여지도』(1856년 철종 7~1861년 철종 12)에도 ‘秋風岺’,  ‘秋風’으로 나오며, 『황간현지도』(1872 고종 9)에도 ‘秋風嶺(추풍령)’이라했다.

추풍령을 내려오며 경부고속도로를 중심측으로 하여 내려다 본 김천시가지 정경

추풍령은 지리상, 군사상 중요한 고개다. 영주의 죽령(竹嶺), 문경의 조령(鳥嶺, 새재)과 추풍령, 아래로 더 내려가 함양의 육십령(六十嶺), 팔량치(八良峙)는 영남과 다른 지방 생활권을 연결하는 주된 통로다. 추풍령에 인천측후소 추풍령지소가 생겼고(1935년), 이것이 추풍령기상대로 승격(2000년)되었다. 추풍령은 임진왜란 때에 군사적 요충지로서 의병장 장지현(張智賢 1536∼1593)이 의병 2,000명을 이끌고 왜군 2만 명을 맞아 치열한 싸움 끝에 물리쳤고(1차 전투), 다시 공격해 온 4만 명의 왜군에 패하여 장렬히 전사한 아픔을 지니고 있다. 6.25 동란 때엔 북한군의 침투로가 되었음은 물론이다.

추풍령은 교통상, 경제상으로도 중요한 통로다. 조선시대 말 추풍령 일대의 행정구역명은 경북 김산군 황금소면이었다. ‘황금소면’이란 추풍령 역참이 마련되면서 이곳 사부리의 ‘황보(黃寶)’와 ‘금보(金寶)’ 마을에 관리들의 숙소가 있어 생겨난 지명이다. 추풍령을 오가는 사람들이 많아지며, 저잣거리가 활기를 띄어 1904년부터 3일, 8일 마다 추풍장이 섰다. 경부선 추풍령역(秋風嶺驛)이 개통(1905년)된 것은 추풍령 유명세 형성의 큰 충격파였다. 문경 조령을 통과하던 교통량이 이곳으로 흡수되기 시작했다. 이 무렵 황간현은 부군 폐합에 따라 황간현 매곡면 일부와 상주군 공성면 일부를 병합하여 ‘황금면’으로 개칭(1914년)하면서 영동군에 편입되었다.

추풍령은 죽령, 조령에 비해 뒤늦게 유명세를 탔다. 추풍령 철길을 배경으로 한 영화 “추풍령”과 주제가 ‘추풍령’이 탄생(1965년), 추풍령을 널리 알림에 3차 충격파가 됐다.  ‘구름도 자고 가는 바람도 쉬어 가는’으로 시작하는 가요 ‘추풍령’(전범성 사, 백영호 곡, 남상규 노래)의 문화예술적 위력은 컸고 크다. 2004년부터 영동군에서 매년 추풍령가요제가 열린다. 경부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서울과 부산의 중간 지점인 이 고개에 우리나라 최초의 고속도로휴게소가 생기고(1971년), 서울올림픽 성화 봉송기념으로 고갯마루에 가요 “추풍령노래비”가 섰다(1988년). 이렇게 추풍령이 유명해지자 ‘황금면’을 ‘추풍령면’으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1991년).

한반도 중부와 영남을 관통하는 관문 추풍령은 ‘고개에 이르면 가을의 신선한 바람이 분다’ ‘여름이라도 고갯마루는 신선한 가을 날씨다’또는 황간 쪽으로 벌판이 넓어 ‘가을이면 풍요롭다’ ‘가을걷이가 풍성한 곳’이란 뜻을 지니고 있다. 고개에 이르면 가을바람 같이 서늘해져 낭만적으로 ‘秋風’으로 썼건, 서민에겐 먹고 삶이 중요해 ‘秋豊’이라 썼건, 높이 221m에 지나지 않는 추풍령엔 지방도, 국도, 경부선 철도, 경부고속도로가 집중적으로 통과한다. 현재 추풍령은 우리나라에서 교통량이 가장 많은 고개, 가장 널리 알려진 고개다.

민경탁 시인·전 본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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