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또한 시간에 속해 있음에도, 그 시간의 존재를 알지 못한 채 살아왔었다. 살아오면서 힘에 버거워도 앞에 놓인 짐을 벗어놓을 수가 없었다. 머리에, 가슴에 남아 있는 일들은 외면하면 할수록 해야 할 일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더 커져만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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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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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오면서 알게 모르게 원했던 소소한 바램들이 인생의 목표가 되었다. 그러나 그 목표는 항상 원하는 크기만큼의 어려움을 동반하고 있었다. 후회를 등에 지고 살아가더라도, 결코 멈추거나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것이 시간이란 벽(壁)이었다.
걸어오면서 보았던 길과 이렇게 뒤돌아서서 바라보는 길의 모습은 달랐다. 바라보는 방향과 그 마음이 다르니, 같은 길이었지만 다른 길이 되어 있었다. 왠지 이리 세월이 흘렀을까. 옅은 감성의 끝자락을 움켜쥐고 가을을 맞고 있다.
가을은 신선한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인생의 목적지가 곁에 와있음을 느꼈던 요즈음은 인생의 가을이 성큼 다가와 있는 것 같다. 삶의 시간은 무한한 듯, 시간을 허비하고 있었던 내 모습을 뒤돌아본다. 외로움이 스며들 때 그리움도 찾아오는 법이다.
가을은 데면데면하게 스쳐 지나간다. 지난해 그 가을은 와 있지만, 그리운 것들과 쓸쓸한 것들 사이의 젖은 길에서 서성인다. 지금 어디에 있는가. 어디를 어떻게 돌아서 여기 와 있는 것일까. 비워야 할 것은 무엇이고, 채워야 할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남겨진 그리움은 무엇인가.
인생의 계절은 잘 비워내고, 잘 채워가는 과정의 연속이다. 잘 비워낸다는 것은, 삶을 꾸준히 돌아보고 자신과 친해지는 과정이자, 흘러보내지 못해 상처가 되는 마음이 줄어들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잘 채워간다는 것은, 좋아하는 일과 더불어 새로운 일에 용기를 내는 시도이다.
아무리 마음이 흔들린들 가을은 깊어만 갈 것이다. 가을이 무엇이길래 마음에 생채기를 내고 있는가. 여태껏 살아오면서 지키지 못한 약속, 부족함으로 상처받은 이에게 미안하다고 하지 못한 용렬함, 작은 자존심 하나로 벽 하나를 허물지 못해 결국 놓쳐버렸던 소중한 인연에 대한 미련인가.
삶이란 세월의 계절을 지나면서, 비바람 만날 때도 있었다. 먹구름 걷히면 밝은 날이 오기 마련이기에, 지금은 좀 쉬면서 가고 싶다. 쉬엄쉬엄 가자. 인생아! 과거는 되돌릴 수 없겠지만, 현재를 잘살면 후회할 일은 없을 것이다.
소박한 일상, 평범하고도 아름다운 삶 그리고 사람 냄새가 가득한 저녁 있는 삶이 좋다. 좋은 것을 있는 힘껏 좋아하며, 내 삶은 평범할지라도, 아이들은 최고의 인생을 살아가길 바라는 아비의 마음이 지나온 세월에 쌓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