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호 / 화양연화 대표 / 전 대구교육대학교대구부설초등학교 교장
“자, 2주 뒤에 들장미로 실기시험을 친다. 모두들 열심히 준비하도록.” 1975년 김천시 아포읍의 아포중학교 2학년 때 중간고사를 몇 주 앞두고 김하조 음악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김하조 선생님은 음악시간에 시골 중학생들이 처음 보는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등 음악을 즐겁게 가르치신 분이다.
음악책의 악보만 있을 뿐 지금과 같이 노래를 듣고 배울 수 있는 도구가 없어서 그저 친구들과 함께 불러보는 게 연습의 전부였다. 독일의 작곡가 베르너가 작곡한 ‘들장미’의 ‘들장미 (Heiden-roslein)’는 괴테의 시라고 한다. 괴테가 슈트라스부르크에서 대학에 다닐 때, ‘프리데리케’라는 아가씨를 사랑하던 시절에 쓴 시로, 슈베르트를 비롯한 여러 작곡가에 의해 작곡이 되었는데, 베르너( Heinrich Werner)의 노래가 가장 널리 알려졌다고 한다. 인터넷에서 보니 들장미는 요즘도 많은 중학교에서 음악 수행평가곡이라고 한다.
2주 뒤 음악시간에는 선생님의 오르간 반주에 맞추어 다함께 들장미를 부르고 바로 실기시험을 시작했다. 한 시간이 45분인 중학교에서 한 반에 60명이 넘는 남학생들의 음악실기시험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앞에 나와서 번호와 이름을 말하고 바로 노래를 불렀다. 반주는 없었다. “웬 아이가 보았네 들에 핀 장미화 갓 피어난 그 향기에 탐나서 정신없이 보네 장미화야 장미화 들에 핀 장미화.” 1절을 끝까지 부르는 친구는 아무도 없었다. 대부분은 “웬 아이가 보았네 들에 핀 장미화 갓 피어난 그 향기에”까지만 하면 바로 점수가 공개되었다.
키순으로 번호를 정하는 때라 영호는 거의 60번 이상이었다. 영호 앞에 이○배라는 친구가 만점을 받았다. 영호는 다른 친구들보다 조금 더 길게 노래를 했다. “김영호 100점” 선생님은 100점을 받은 이○배와 영호를 앞으로 나오게 해서 한 번 더 노래를 부르게 했다. 이○배가 먼저 불렀다. 영호는 목이 잠기는 바람에 두 번이나 기회를 얻었지만 노래를 마치지 못했다. 그렇게 들장미는 영호가 노래를 좋아하게 된 출발점이었다.
그 뒤로 고등학교를 다니면서는 노래를 부를 기회가 거의 없었다. 대구교육대학교에 입학해서는 남자들에게 공포의 대상인 오르간과 가창 실기가 있었다. 오르간 때문에 힘들었지만, 가창 시험은 그리 힘들지 않게 좋은 점수를 얻었다. 대구의 초등학교에 발령을 받아서는 아이들에게 노래를 많이 듣게 했다. 음악 시간에는 음악책의 노래를 듣고 부르지만, 아침이나 점심시간에는 영호가 좋아하는 노래를 많이 듣게 했다. 학년 구분 없이 많이 들려준 노래는 다음과 같다.
안치환의 내가 만일,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등. 킬리만자로의 표범, 향수, 독도는 우리 땅, 꿍따리샤바라 등이다. 아침마다 7시 30분 쯤 출근해서 이 노래들을 반복해서 들려주었다. “산기슭을 어슬렁거리는 하이에나를 본 일이 있는가 짐승의 썩은 고기만을 찾아다니는 산기슭의 하이네나…….”가방을 메고 교실을 들어서는 여학생이 중얼거렸다. 마침 컴퓨터에서는 킬리만자로의 표범이 나오고 있었다. 2004년 대구교육대학교대구부설초등학교 3학년 2반 교실의 3월의 어느 아침의 일이다. 개인적으로는 어려서부터 예체능의 경험을 많이 하도록 하는 것이 참 좋다는 생각이다.
교감과 교장일 때는 필요할 때 노래 부르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자청한 일이 더 많았다. 대구태현초등학교 교감 때는 여름밤에 열린 작은 음악회에서 향수를 불렀다. 방과후 선생님의 피아노 반주로 연습을 하고, 잘 올라가지 않는 고음은 퇴근길의 한적한 시골밤길에서 목청을 올리기도 했다. 대구교동초등학교 교장 때는 학교 학예회에서 향수를 불렀다. 이전과 비슷한 방법으로 연습을 했다. 대구교육대학교대구부설초등학교 교장 때는 꽃사슴 버스킹에서 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를 두 번 불렀다. 여러 곳에서 강의를 하는 말미에도 불렀다. 학교 방문 손님을 안내하다가 음악 선생님 반에서 방문객의 특성을 맞는 노래를 연주곡으로 들려주거나, 원하는 노래를 부를 수 있도록 했다.
못이기는 척 영호도 노래를 불렀다. 지금도 대구교육대학교대구부설초등학교에 근무하는 장은석, 오한우 선생님의 연주와 지도 덕분이다. 지면을 빌어 감사를 드린다.
“아포농협 농한기 강요강좌 회원모집. 모집대상은 아포농협 조합원 및 조합원가족 80명. 모집기간은 2024.01.24.~31(선착순 80명 모집시 조기종료. 강좌시간은 매주 목요일 오후 2시~3시 30분(1시간 30분). 장소는 아포농협 본점 2층 회의실. 수강료는 월1만원. 강사는 가수 태윤. 강좌기간은 2024.2~3월, 12월(12회 예정). 접수는 아포농협경제사업장 지도방문계 접수. 조합원님들의 많은 관심과 접수 부탁드립니다. 아포농협 하○순.”2024년 1월 24일 아포농협에서 발송된 문자가 휴대폰에 찍혔다. 2020년 금오공대 평생교육원에 가요교실 수강 신청을 했었는데, 코로나 때문에 연기 또 연기되다가 결국은 시작도 못하고 폐강이 되었다. 코로나가 끝난 뒤에는 가요강좌가 개설이 되질 않아서 늘 궁금하던 참이었다.
다음날 서둘러 아포농협을 방문했다. 2014년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바로 승계를 해서 아포농협 조합원 자격으로 신청을 했다. 2023년 3월 21일 제17대 아포농협조합장에 취임한 성기호 조합장은 아포중학교와 김천고등학교 1년 후배이다. 오랫동안 고향에서 농업인으로 활동해서 농민의 마음을 잘 헤아리는 것 같다. 가요강좌도 농한기에 농민의 복지를 위한 좋은 정책이라고 생각한다. 개강식은 2월 1일 목요일이다. 마침 김천농업기술센터에 미리 신청한 농업인 교육과 중복이 되어서 가요강좌에 참석을 할 수가 없어서 아쉬웠다. 강사가 어떤 분인지 수강자 중에 남자가 몇 명인지도 궁금했다.
두 번째 날에는 조금 일찍 참석을 했다. 다행히도 남자는 나를 포함해서 4명이었다. 강사는 태윤이라는 가수인데 스마트한 인상에 수강생의 수준에 맞게 적절한 유머를 섞어서 재미있게 잘 가르쳤다. 신청을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수 태윤은 ‘태윤의 싱싱티비’라는 유튜브를 운영하는데 구독자가 16만 명이 넘었다. 매주 목요일 오후 6시에는 ‘오늘도 안녕하신가요’라는 라이브도 진행하고 있다. 청송 사나이, 언제나 청춘 등 7곡을 발표했고, 노래방에도 4곡이 수록되어 있다고 한다. 3대 방송사 등에 출연 및 대구와 경북의 곳곳에서 노래교실 강사로 명성이 자자한 가수이다. 그래서 농사 등의 일은 목요일 오전까지만 하고, 오후에는 아주 특별한 일이 아니면 시간을 비워두고 있다.
영호는 여러 애창곡이 있다. 처음에는 박일남의 갈대의 순정을 즐겨 불렀었다. 1980년대 말부터는 향수를 많이 불렀다. 정지용이 시 향수에 김희갑이 곡을 붙이고 서울대 음대 성악과 교수인 박인수와 대중가수 이동원이 부른 크로스오버곡이다. 킬리만자로의 표범 등 조용필의 노래도 많이 불렀다. 안치환의 내가 만일과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도 많이 불렀다. 특히 내가 만일은 수업시간에 시 바뀌어 쓰기 활동을 하기에 좋다. 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는 버스킹과 강의 도중에 많이 불렀다. 최근에는 임영웅의 별빛 같은 나의 사랑아, 배금성의 사랑이 비를 맞아요 등의 여러 곡을 부른다. 화양연화 농장에서 일을 할 때도 이어폰의 한 종류인 샥즈를 착용하고 휴대폰에서 유튜브의 노래를 연결해서 무한 반복으로 들으면서 따라 부르고 있다. 그냥 일을 하는 것보다 훨씬 즐겁게 할 수 있다.
드물게 지인들과 노래방에서나 공공장소에서 노래를 할 기회가 있다. 마치고 집에 오면 늘상 아내에게 핀잔 겸 조언을 듣는다. “당신은 노래는 잘 하는 데 소리를 너무 질러요. 지난 번 구미송설동창회 한마음 큰 자치에서 노래를 부를 때 소리를 너무 질러서 한쪽 앰프가 나오질 않았어요. 제발 노래 부를 때 힘 좀 빼고 불러요.”맞는 말이다. 예전에는 대꾸를 하고 변명도 했지만, 요즘은 무조건 예예 하면서 수긍한다. 아포농협의 가요강좌에서 태윤 가수의 강의와 노래를 들으면서 아내의 혜안에 감탄한다. 그렇다. 노래도 운동도 힘이 들어가서는 제대로 되질 않는다. 세상만사에 힘을 빼는 것을 노래를 통해서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