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신초등학교 6학년 때 경주로 1박 2일의 수학여행을 갔다. 10월 말쯤이라 소작농을 하던 부모님은 가을 타작에 무척 분주할 때였다. 수학여행 전날 밤에 어머니는 영호의 속옷 안쪽에 다른 천을 덧대어 주머니를 만들었다. 그 안에는 수학여행 용돈 500원짜리 지폐를 한 장 넣었다. 새벽같이 대신역에 모이니 선생님이 대신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모자를 하나씩 주셨다. 첫차인 완행열차를 타고 경주로 향한 100여 명의 아이들은 창밖의 풍경에 넋을 놓고 있었다.
2024년 4월 10일은 모두가 환갑을 훌쩍 넘긴 대신초등학교 동기들이 서울로 나들이를 한 날이다. 선거일이지만 사전투표를 하고 마음 편하게 나들이를 즐길 수 있었다. 50여 년 전에 대신초등학교 6학년 때 경주로 수학여행을 갈 때 뒤척이며 잠 못 이루었던 기억과 흡사한 설렘으로 설친 잠을 뒤로하고 모임 장소로 나갔다. 28인승 리무진 버스에는 대구에서 서대석 친구 등 5명이 타고, 구미에서 김수원 친구 등 5명, 경부고속도로 대신 쉼터에서 김무영 친구 등 4명이 동승해서 서울로 향했다. 서울로 가는 내내 버스 안은 흥분과 설렘으로 왁자지껄 했다.
대신초등학교 7428 동기회는 2014년 10월 11일 첫모임을 하고 11월 1일에 40여 년 전의 뛰놀던 그 플라타너스 아래에서 동기회 발대식을 하고 만남의 기쁨을 나누었다. 은사님을 찾아뵙고 동기회 모임을 정기적으로 이어가다가 코로나 19 때문에 모든 것이 중단되었다. 2022년 번개팅으로 2023년 1월 14일에 회장 이취임식과 새로운 임원을 구성하게 되었다. 첫모임부터 초대회장인 서춘희 동기의 노고가 많았다. 2023년에는 김수원 동기가 회장을 맡았고, 2024년에는 김무영 동기가 회장으로 봉사하고 있다. 그 뒤로는 대석, 희식, 상길, 기섭 동기들이 회장으로 봉사할 날을 학수고대하고 있다. 2023년부터는 회장의 임기는 1년이다.
서울에 가까워질수록 묘한 기분이 들었다. 아이 둘이 서울에 있고 교육전문직원 회의나 교과서 심의 등으로 서울을 방문할 때와는 또 다른 기분이었다. 약간은 한적한 구미나 하루 종일 밭일을 하면서도 사람 만나기 어려운 고향에 비하면 서울은 그야말로 인산인해이다. 같은 마을에서 자란 김정태 동기가 멀리까지 나와서 동승했다. 대로를 가다가 좁은 길을 들어서니 버스가 앞으로 가다가 뒤로 가다가를 무한 반복하는 어려움도 있었다. 버스에서 내려 안내하는 서울 친구들을 따라 우르르 몰려가다가 어느 한정식 집에 도착했다. 식당 안도 많은 사람들로 북적이고 서울의 동기인 서강석 등 9명이 미리 자리를 잡고 있었다.
식사를 하기 전에 각자 소개를 했다. 서울의 남자 동기들은 졸업하고 몇 번 보기도 했지만 여자 동기들은 1974년 2월에 졸업을 하고 50년 만에 처음 보는 얼굴이 대부분이었다. 약간 부끄럼을 타기는 하지만 억센 세파를 헤치고 이 자리까지 온 친구들이라 자기소개를 잘 했다. 어떤 동기들은 높임말을 하기도 하고 어떤 동기들은 편안하게 말을 하기도 했다. 6학년 때 체육시간에 느티나무 아래에서 남자와 여자가 짝이 되어서 손을 잡고 춤을 추는 시간이 있었다. 그 때 대부분의 남자들은 느티나무 가지를 주워서 잡았던 기억이 새롭다. 남녀칠세부동석도 세월의 흐름에 자연스럽게 손을 잡고 얼굴을 맞대는 사이가 되었다. 그렇게 술잔과 세월의 흐름이 함께한 맛있는 점심이 끝났다. 식대는 서울 동기들이 부담을 했다.
식사를 마치고 인사동을 걸었다. 구미나 대신에서 온 친구들은 우리는 서울에 살아라해도 못 산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저마다의 삶의 방식이 있으니 지금 이 나이에 낯섦에 익숙해지기는 쉽지가 않다. 주로 사람을 상대하는 서울과 복숭아나무나 포도나무 등 농작물을 상대하는 시내이(고향의 자연부락명)의 삶이 같을 수는 없다. 광화문을 거쳐서 1997년 12월 6일 유네스코가 정한 세계유산인 창덕궁에 들렀다. 서울에 자주 왔지만 창덕궁은 처음이다. 처음 보는 세계문화유산인 궁궐의 내밀함도 궁금증을 더했지만, 50년 만에 동기들과 함께 걷고 이야기하고 사진을 찍는 게 더 좋았다.
다시 한참을 걸어서 버스를 타고 이태원으로 이동했다. 대로에서 좁은 계단을 내려와서 국밥집에 들렀다. 사람 많은 서울에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느라 시장기가 더했다. 원하는 국밥에 인생 맛을 더한 술이 빠질 수가 없었다. 저마다 돌아가면서 건배를 하는 사이에 개와 늑대의 시간이 되었다. 서울의 윤재구 동기는 디지털 MP3 라디오를 박정란 동기는 비누를 선물로 준비했다. 이제 헤어져야 할 시간이 되었다. 아쉬움에 몇 번이나 손을 잡고 놓은 손을 흔들다가 차에 올랐다. 14명을 태운 버스는 서울을 벗어나기가 바쁘게 대신으로 구미로 대구를 향해 달렸다.
이제 우리의 꿈이 자란 대신초등학교는 2015년에 폐교가 되고, 수학여행의 추억이 서린 대신역은 기차가 서지 않는 카페가 되었다. 2024년 4월 10일은 아이였던 대신초등학교 친구들이 이제는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되어서 50년 만의 해후를 한 날이다. 앞으로 50년을 더 살 수 있다고 장담할 수는 없지만 그 하루의 만남이 50년도 더 살아갈 힘을 주는 설렘이요 희망이요 행복이었다. 50년 만의 해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