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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문화·음악 수필

수필공원-처서(處暑와 포쇄(曝曬)

김천신문 기자 입력 2024.09.04 10:59 수정 2024.09.05 10:59

김영호 / 화양연화 대표 / 전 대구교육대학교대구부설초등학교 교장

ⓒ 김천신문
4시 34분에 알람을 설정해 두었다. 대구로 출퇴근을 할 때는 4시 44분에 1차 알람, 5시 05분에 2차 알람을 했었다. 알람을 설정할 때 모든 숫자를 같게 하거나 처음 숫자와 마지막 숫자를 같게 하는 게 습관이 되었다. 생각보다 일찍 잠을 깼다. 아침밥을 먹을까 하다가 바나나 하나로 해결했다. 나이 들어서 먹는 약을 챙기고 4시 50분에 집을 나섰다. 하지가 지난 지가 한참이 되어서 컴컴했다.

5분 정도 달려서 둘째 누나를 태우고 화양연화 농장으로 향했다. 둘째 누나는 김가네 농장 일이나 고향의 대소사에 가자 많이 동행하고 있다. 농장에 도착해서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지난밤부터 채우기 시작한 5톤짜리 물탱크를 확인했다. 물이 살짝 넘치고 있었다. 배추씨를 예비로 뿌린 곳과 쪽파를 심은 곳에 스프링클러를 작동시켜 두고 고향집에 도착하니 동생이 참깨 털 준비를 하고 있었다. 먼저 골목길 담장에 말리는 것부터 털기 시작했다. 이내 같은 읍에 사는 큰누나와 자형이 도착했다. 네 명이 깻단을 들고 50센티 정도 되는 막대기로 빠르게 북을 치듯이 두드렸다. 8월 15일 처음 털 때보다는 양이 적은 것 같았다. 동생은 탈탈 턴 깻단을 수레에 싣고 작은 밭으로 옮겼다. 7시가 되기 전에 작업을 마쳤다.

누나와 동생에게 뒷정리를 부탁하고 화양연화 농장으로 향했다. 누나들에게는 마치면 자형의 트럭을 타고 농장에 들리라고 했다. 먼저 스프링클러를 잠그고 물이 어느 정도 스며들었는지를 확인했다. 포도밭과 복숭아밭의 관수 시설은 포토밭에 설치한 스위치로 작동이 된다. 포도에 마지막 약을 쳤다. 참 손이 많이 가는 샤인 머스캣 포도이다. 약 치는 시설을 잘 해 놓아서 혼자서도 30분 정도면 충분하다. 포도송이가 궁금해서 봉지의 접힌 부분을 쨌다. 걱정했던 것보다는 송이가 좋았다. 그러고 있는데 누나들과 자형이 포도밭 입구에서 이야기를 나눈다. 포도송이가 예쁘다고 입을 모은다.

점심을 집에서 먹고 양복에 넥타이를 매고 12시가 되기 전에 집을 나섰다. 대구에서 열리는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서 한 시간 정도 차를 몰았다. 교통방송을 들으면서 운전을 하는데, 오늘이 처서라는 이야기와 처서의 풍습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포○라는 말의 의미를 설명하는데 두 번째 글자를 정확하게 듣지를 못했다. 어떤 낱말인지 궁금했다. 1시부터 시작한 회의는 4시 30분쯤에 무난하게 마쳤다. 모두가 결과에 수긍하고 앞으로는 더 이상 이런 일로 만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5시쯤에는 후배를 만나기로 미리 약속이 되어 있었다. 2009년 대구광역시서부교육지원청 장학사로 근무할 때 처음 만났다. 수업발표대회 국어과 1등급을 하고 장학자료 발간 등에도 많은 도움을 준 선생님이다. 그 후배는 지천명의 나이다. 학교의 관리자 관계부터 시작한 이야기가 앞으로의 진로, 수업 이야기 등으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후배의 개인적인 고민과 갈등이 이해가 되었다. 겸손과 겸손과 겸손이 열정으로 이어져 일신우일신하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러던 차에 지인 네 명을 만났다. 대구교대 동창회 인사들이다. 후배와는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누다가 후배는 먼저 가고 4명의 자리에 합석을 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2024년 8월 22일 화요일은 처서이다. 24절기의 입추와 백로 사이로 태양의 황경이 150°에 있을 때라고 한다. 여름이 지나 더위도 가시고 선선한 가을을 맞이하게 된다고 하여 처서(處暑)라 불렀다고 한다. 처서가 지나면 따가운 햇볕이 누그러져서 풀이 더 자라지 않기 때문에 논두렁이나 산소의 풀을 깎아 벌초를 하기도 한다. 우리도 곧 20여기의 산소 벌초를 해야 한다. 방송에서 정확하게 듣지를 못해서 궁금했던 낱말을 찾아보니 포쇄이다. 처서에는 여름 동안 장마에 젖은 옷이나 책을 햇볕에 말리는 포쇄(曝曬)의 풍습도 있다고 한다. 조선 시대에는 실록의 포쇄를 매우 엄격히 했다고 한다. 실록과 같은 중요한 서책이 여름 장마철을 거치면서 눅눅해진 한지의 습기를 없애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었을 것이다. “처서가 지나면 모기도 입이 비뚤어진다.”라는 속담이 있지만 이번 여름만큼은 처서 본연의 모습은 아닌 것 같다.

이번 처서에는 네 가지의 포쇄를 했다. 참깨 털이도 포쇄의 한 방편이다. 마른 장작 같이 말린 깻단을 막대기로 두드리면 참깨가 하얀 눈처럼 쏟아진다. 포도밭에 약을 칠 때도 포쇄가 원활하게 되어야 한다. 비가 오는 날에 약을 치는 것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나 마찬가지이다. 회의도 마찬가지이다. 회의를 마치고 뒤가 개운치 않은 것 보다는 깔끔하면 기분도 좋고 보람도 배가 된다. 후배와 동창회 인사들과 만남도 서로의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기분이 한결 좋아져서 포쇄를 한 기분이다.
세상사가 포쇄를 한 것처럼 뽀송뽀송하고 깔끔하면 좋겠다. 그러자면 남의 탓을 하기 전에 내 마음부터 포쇄가 되어야겠다. 여러분은 어떤 포쇄를 하고 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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