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작은 꼬리에 사유(思惟)를 달고 있다. 맞을까 하는. 국어교육에 오직 한 길을 걸어오고 있는 박인기 국어교육학자는 우리 말살이에서 우러나온 성찰의 술잔을 자주 사람들에 권한다. 그 술잔을 받아 마셔보면 상대는 마치 내 말살이는 바람직한가요, 일상에서 이래 말해도 될까요 하고 눈치를 보게 된다. 국어 및 문학 교육과정 연구를 지속해 온 박 교수의 산문집 『짐작』(소락원 2024)이 그런 책의 하나다. 그가 낸 이런 부류의 산문집 『인간적 언어, 언어적 인간』에 이어 나온 두 번째 산문집이다.
우리나라 국어 및 문학 교육과정 수립과 전개에서 우한용 서울대 명예교수(소설가)와 함께 개척자적 업적을 쌓아온 그는 정년 후 인간의 말살이에 관한 가치관을 담은 담론을 양산하고 있다. 중등 국어교사로 출발해 한국교육개발원 연구원, 대학 국어교육 교수, 독서학 연구 및 현장 지도자로 활동해 온 저자는 사람들의 말씨와 그 말살이 풍경을 통해 이 세상을 지켜본다.
그는 평소에도 인간 언어의 기능을, 리터러시(literacy;문해 역량)의 지평을 넘은, 다른 차원에서 응대하고 고찰한다. 인간의 말살이를 보통 사람들보다는 더 넓고 깊게 지켜보면서 그 풍경을 학술적으로 풀어낸다. 이런 관점과 세계관에서 나온 담론의 산문집이다. 이 산문집에는 인간의 언어활동은, 인간이 영위하는 삶의 총체란 그의 철학에서 나온 담론과 스토리텔링이 소복이 담겨 있다.
산문집 『짐작』에는 이런 글 36편이 3편씩 묶여 12강으로 편성돼 있다. 각 강의 첫머리에 그 주제를 짧은 시로 안내해 주고 있어 읽는 흥미를 더해 준다. 표지화는 김천 출신 김현철 화가의 그림이다. 김 화가의 동명의 전시회 주제에서 이 산문집의 제목을 따왔다고 한다. 발문은 박 교수와 평생 브로맨스를 유지하면서 공저를 많이 낸 우한용 교수가 썼다. 박 교수와 우 교수는 서로 ‘외우(畏友)’라 우기는 동학이요 문우다. 모두 박학능문(博學能文)의 문사다.
저자는 이 책에서 우리 말살이에 있어 지혜와 역량이 중요함을 강조한다. ‘언어는 살아 움직이는 생물’이니 그 생태를 잘 살펴야 한다. 언어는 기능으로 쓰이고 의미로도 쓰는데, 그 의미의 숲을 잘 헤아려야 한다는 것이다. 왜? ‘언어의 의미는 헤아릴 수 없이 많고 또 깊’기 때문이란다.
평소 그의 많은 글을 대해 보건대, 그는 해박한 인문지식을 바탕으로 하여 국어교육자 답게 말살이에 관한 특유의 가치관과 소신을 갖고 세상을 대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이를테면 유태인 교육에서부터 우리 대중가요 ‘있을 때 잘해’, 로댕의 조각 ‘칼레의 시민’, 황희 정승의 사고와 어법, 작가 이문구의 소설, SNS에 나도는 저렴한 언어들 … 등등의 소재에서 우리가 어떻게 말살이를 잘할 것인가 하는 성찰을 보이면서 그에 상응하는 지혜를 전한다.
저자의 산문은 대개 한 편 한 편이 3〜4단계로 구성되고 분량이 긴 편이며 학술성을 지니는데, 이번 산문집에선 3단계로 구성, 분량이 짧아지고 문체가 간명해져 보다 신선감을 주고 서민성이 두드러져 보인다. 사람들이 바람직한 언어 사용과 품위 있는 말살이를 위한 지혜를 얻기에 유용한 산문집으로 읽힐 것 같다. 독자는 저자로부터 일상의 내 말살이가 바람직한가, 술잔을 건네받으며 짐작해 볼 것 같다.
민빛솔(시인•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