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이 세무조사 자료제출을 회피한 외국계 기업에게 부과한 과태료 건수가 2019년 116건에서 2023년 2건으로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세청의 질문‧조사 및 자료 제출 요구를 거부하는 일부 글로벌 기업의 행태는 여전하지만, 솜방망이 규제로 인해 이를 제재하지 못하는 것이다.
국회 송언석 기획재정위원장이 국세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직무집행 거부 등에 대한 과태료 부과 현황’ 에 따르면 국세청이 자료 제출을 거부한 외국계 기업에 부과한 과태료는 작년 기준 2건(6600만원)에 그쳤다. 이는 2019년 116건(21억800만원)에 비해 건수로는 98%, 금액으로는 96%가량 급감한 수치이다.
현행 국세기본법 제88조(직무집행 거부 등에 대한 과태료)은 납세자가 국세청의 질문‧조사에 응하지 않거나 과세자료의 제출을 기피하는 경우 과태료를 부과하고 있으며, 과태료 부과기준은 시행령에 근거해 최소 5백만원부터 최대 5천만원으로 규정되어 있다.
이에 국세청은 외국계 기업의 자료제출 회피에 대응하기 위해 각각의 자료제출 불응 건에 과태료를 부과해왔다. 하지만 2021년 법원이 하나의 세무조사에는 1건의 과태료 부과한 인정한다는 판결을 내린 이후 과태료의 부과 건수와 금액은 급감했다. 국내 매출이 수조원으로 추정되는 외국계 기업이 자료제출을 수십차례 거부해도 부과할 수 있는 과태료는 최대 5천만원에 불과한 것이다.
납세자가 과세자료를 제출하지 않는 방법으로 버티면 과세관청은 과세처분에 대한 명확한 증거를 확보하지 못해 추계과세를 할 수밖에 없다. 이후 납세자가 과세처분에 불복한 뒤 그제야 유리한 자료를 제출하면 과세처분은 취소될 확률이 높아진다.
실제로 일부 외국계 기업의 경우 과세자료가 해외 본사에 있다는 핑계로 국세청의 세무조사에 협조하지 않다가 불복과정에서 유리한 자료만 증거로 제출하는 방식으로 대응해 왔다. 그리고 이러한 행태로 인해 외국인에 대한 국세청의 조세 행정소송 패소율을 2023년 기준 19%로 전체 평균 9%의 2배가 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특히 6대 대형 로펌이 담당한 외국인 조세행정소송의 패소율은 작년 기준 79.3%를 기록했다.
세무조사 자료제출 거부에 대해 주요 선진국들은 고액의 벌금이나 징역형 등을 부과해 엄정히 대응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세무조사에 필요한 자료제출을 이행하지 않는 경우 사실상 세무시효가 중단되며, 조사단계에서 제출하지 않은 과세자료를 불복단계에서 증거로 제출하는 것을 금지하기도 한다.
영국의 경우 자료제출 통지에 불응하는 경우 과태료가 순차적으로 높아지는 동시에 형사처벌의 대상이 되며, 독일의 경우 세무조사에 협조하지 않는 자에게는 이행강제금을 부과하는 등 비협조의 정도에 따라 제재의 수준이 계속 증가하는 비례적인 벌칙 적용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송언석 기획재정위원장은 과세자료 회피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국세기본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할 예정이다. 개정안은 세무공무원의 적법한 직무집행을 거부‧기피하거나 제출명령에도 불구하고 자료를 제출하지 아니한 자에게는 ‘재제출명령’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법률이 정한 범위 내에서 이행강제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했다.
개정안을 준비중인 송언석 위원장은 “본사가 해외에 있는 일부 기업들이 과세자료 미제출 등의 방법으로 세무조사를 방해한 후 조세소송 과정에서 유리한 자료만을 제출해 과세처분을 취소 받는 것은 조세 정의를 훼손하고 국부를 유출하는 행위”라며 “미국, 영국, 독일 등 주요 선진국의 규정과 비교할 때 현행 국세기본법의 과태료 수준은 불충분한 제재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라고 문제를 지적했다.
송 위원장은 이어 “법안뿐만 아니라 시행령을 통해 매출 규모에 따라 과태료 구간을 세부화하는 등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을 보호하면서도 악의적인 조세회피에는 엄정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라면서 “정부에서도 문제점과 대책 마련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는 만큼 개정안이 상임위원회에서 조속히 논의될 수 있도록 많은 관심을 기울이겠다”라고 밝혔다.
[참고자료_1]
<현장에서 발생하고 있는 문제 사례>
#사례1
매출액이 수조원에 달하는 글로벌 플랫폼기업 A사는 국내 소비자들로 부터 수취한 서비스 판매수입 대부분을 해외 본사로 송금하며, 송금한 금액 대부분을 로열티 비용으로 계상하였다. 그 결과, 한국 법인세 계산의 기초가 되는 영업이익이 과도한 수준으로 축소되었고, 전체 매출액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소액의 법인세만 납부하였다.
A사는 국세청의 세무조사가 시작되자, 국내소비자들에게 제공되는 서비스의 제공자는 해외 본사이고, 한국지사는 중간 유통업자로서 서비스를 재판매한 것에 불과하므로 유통마진 수준의 이익만을 남길 수밖에 없는 사업구조라 주장하였다.
이에 따라 국세청은 A사 주장의 타당성을 확인하기 위해 해외 본사와의 저작권·사용권에 관한 계약서 및 내부 의사결정 구조 등 핵심적인 자료들의 제출을 요구하였으나, A사는 자료가 국내에 없다는 이유를 들며 수개월 간 자료제출을 지연, 끝내 거부하여 국세청의 과세를 곤란하게 만들었다.
국세청은 이에 수십억원의 과태료를 부과 2021년 법원의 판례이전에 수십억원의 과태료를 부과하였으나, 하나의 세무조사에는 1건의 과태료 부과한 인정한다는 판례가 생긴 이후 최종적으로 2천만원 수준의 과태료만 납부함
하였으나, A사는 국내 굴지의 법무법인을 선임하여 대응에 나서 법원에 이의신청·항의하였고, 최종적으로 과태료 2천만원 수준만 납부하였다.
#사례2
B사는 글로벌 IT 기업의 한국 법인으로서, 해외 모법인으로부터 온라인 서비스 상품을 구매하여 국내 고객들에게 재판매하는 영업활동을 하고 있다. 국세청은 B사에 대한 세무조사를 실시하며 B사가 계상한 매출액과 비용의 적정성을 산정하기 위해 계약서, 이사회 회의록, 거래처별 매출자료, 타 해외법인과의 비교소명자료 등을 요구하였다.
특히, 국세청은 6개월에 달하는 조사기간 중 조사법인에 수십 번 방문하거나 해외에 화상회의를 개최하여 자료제출 협조를 요청하는 등 적극적으로 자료요구하였으나 B사는 관련자료 일체에 대해 자료제출을 거부하여 국세청의 세무조사 진행을 방해하였다.
위 사례와 같이 자료제출 거부로 세무조사 시 정상적인 세액 산출을 어렵게 만든 후, 조세불복 단계에서 자사에 유리한 자료만을 선택적으로 제출하여 세무조사로 부과된 세금을 취소받는 경우는 드물지 않은 일이다.
특히, 계약서와 같은 자료는 거래 쌍방이 보유함이 너무나도 당연한 것임에도 자료가 해외 모법인에만 있다는 핑계를 들며 시간을 지연하고 조사를 방해하는 행태가 팽배하다.
일부 글로벌 플랫폼 기업들은 이러한 방식으로 전세계에서 발생하는 수입의 대부분을 본사나 조세부담이 적은 특정 국가에 있는 계열사로 이전하고, 실제 수입이 발생한 국가에서는 이익을 축소하여 매우 낮은 수준의 세금만을 부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