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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마을이야기

김천의 누정(樓亭)과 누정문학(樓亭文學) ③

김천신문 기자 입력 2024.11.14 10:59 수정 2024.11.14 10:59

민경탁(국어국문학자)


▣ 현존 가장 역사 깊은 김천의 누정, 방초정(芳草亭)

방초정은 임진왜란 때 우리 민족의 쓰라린 역사와 뼈아픈 가족사가 서려 있는 누정이다. 마을 공동체를 위한 배려를 지닌 환경친화적 건축유산으로서 대한민국 보물 제2047호다. 중국 북송의 철학자요 문학자인 주돈이의 생각과 마음을 다분히 띠고 있는 누정이다. 변천이 심했다.

원래 조선 중기 1625년(인조 3)에 선조를 추모하기 위해 이정복(李廷馥 호 芳草 1575~1637) 부호군이 지금의 위치에서 국도 쪽으로 건립했다. 뒷날 훼손된 것을 1689년(숙종 15)에 그의 손자 이해(李垓 호 松齊)가 중건했으나 이듬해 병란으로 일부 화재를 입었다. 이를 1727년에 다시 보수했으나 1736년 대홍수로 유실, 1788년(정조 12)에 후손 이의조(李宜朝 호 鏡湖)가 현 위치로 이전하며 중수했다. 현존하는 김천의 누정 가운데 가장 역사가 깊으며 모성정, 무송정과 함께 지역의 대표적인 문중 건립 누정이다.

방초정 안에는 누정과 일대의 아름다운 경치를 노래한 제영시 38편이 걸려 있다. 우암의 문인 장유(張瑠 호 安齋 1649 인조 27∼1724 경종 4)는「방초정8영」(안재선생문집)을 썼다. 조선 후기의 문신 이만영(李晩永 호 守岡 1877∼1963)은「방초정10경」(수강문집)을 써서 이곳에 남겼다. 정자 안의 사방 귀퉁이에 주련 형태로 걸려 있다. 이만영의「방초정10경」은 방초정을 시점으로 하는 집경시로서 당시의 그 일대 풍경을 상상해 볼 수 있게 한다.

○ 수많은 시인과 묵객이 방초정에서 시를 썼다. 일찍이 임진왜란 때의 호성공신(扈聖功臣)으로 문장이 뛰어났던 오봉(五峯) 이호민(李好閔 1553 명종 8~1634 인조 12)이-집안 종손(宗孫) 이정복(李廷馥)이 건립한-방초정을 보고 시를 지어 주었다. 『오봉집』 권2에 전한다.

書示宗孫廷馥 글을 써 종손 정복에게 보여주다

                                         이호민(李好閔)

雨露丘原倍愴情 언덕과 들판에 비와 이슬 내리니 서글픈 정 갑절인데
行人 得祭淸明 행인은 겨우 청명에 제사 지낼 수 있을 뿐이네.
白頭未判南歸計 백발에도 남녘으로 돌아갈 계획 판단해 정하지 못하니
愧春山杜宇聲 봄 산 두견새 울음소리에 부끄럽기만 하네

○ 이석유(李錫裕)의 아들 이급(李 1639 인조 17∼1714 숙종 40)은 이곳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품천사집』(1929)과 『교남지』(1937)에 전한다.

亭名芳草豈無情 정자 이름을 방초로 하니 어찌 뜻이 없겠나
帶得濂翁意思明 분명 염계(주돈이) 옹의 의사를 띠고 있네
春到年年靑不盡 해 마다 봄은 이르러 푸른 빛 그지없는데
孱孫誰復繼家聲 잔약한 자손 중 누가 다시 집안 명성 이을까

○ 방초정에는 우암 송시열의 문인들이 많은 시를 남겼다. 이만영의 「방초정십경」은 내용이 이렇게 요약된다.

1경 일대감호一帶鑑湖
감호 일대의 물가 풍경을 그려냄
2경 십리장정十里長亭
우뚝 솟아 이정표 역할 하는 정자를 노래함
3경 금오조운金烏朝雲
금오산에 아침 구름 낄 때의 경치를 그려냄
4경 수도모설修道暮雪
수도암의 해 저무는 설산 풍경을 그림
5경 나담어화螺潭漁火
연못에 불 밝혀 고기 잡는 모습을 그려냄
6경 우평목저牛坪牧笛
들판에서 부는 목동의 피리 소리를 들음
7경 굴대단풍窟臺丹楓
굴대 주변의 붉은 단풍을 노래함
8경 송봉취림松岑翠林
송산의 푸른 수풀에서 들려오는 새소리를 노래함
9경 응봉낙조鷹峰落照
응봉 아래에 해 떨어지는 풍경을 그려냄
10경 미산반륜眉山半輪
미산 위에 뜬 반달을 노래함.

방초정
○ 이정복의 후손 이수원(李遂元 1734∼1815)은 또 이렇게 읊었다.

吾門何幸此亭新 우리 문중이 이 정자 새롭게 하니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數字華楣感後人 화려한 처마의 몇 글자가 뒷사람을 감동 시키네
芳草年年窓外碧 방초는 해 마다 창 밖에 푸르런데
至今留待古庭春 이제야 머물며 옛 뜰의 봄을 기다리네
○ 조선 후기에 지례현감을 지낸 이채(李采 호 화천華泉. 경기 고양 태생. 1745 영조 21∼1820 순조 20)은 방초정에서 이렇게 읊었다. 이채는 인현왕후의 조카인 도암(陶菴) 이재(李縡 1680~1746)의 손자다.

名亭一曲喜重新 한 구비 이름난 정자, 중건돼 새로우니 기쁜데
雲鳥川魚付主人 구름 속의 새, 시내의 고기 주인에게 주어지네
試看華楣芳草字 화려한 처마에 방초란 글자 찾아 보니
百年長保四時春 백년토록 사계절 봄을 길이 보전하고 있네

○ 조선 후기의 문신 건옹(健翁) 김양순(金陽淳 1776~1840)이, 방초가 지은 시판에서 운을 따 노래한 시가 방초정에 걸려 있다. 1833년 답청일(음 3월 3일) 에 경상도관찰사로서 이곳에 답청놀이 왔다가 쓴 시다. 건옹은 이조판서, 대사헌에 두 번 올랐으나 말년에 모역 혐의를 받고 투옥, 국문을 받던 중 심한 고문에 불복하다가 사망했다. 추사 김정희를 유배 가게 동기를 부여한 사람이다.

和芳草亭主人板上韻 방초정 주인 시판의 운을 써 짓다

年年芳草爲誰新 연년의 향기로운 풀은 누구를 위해 새로운고
名亭舊主人 이름 난 정자의 옛 주인은 마음 섭섭해 하네
書香滿架書 聞 글의 향기가 서가에 가득해 장막에 와 닿고
落盡汀花又暮春 물 가의 꽃은 떨어져 다 하니 또 봄이 저무네

○ 조선 후기 성주(星州)의 응와(凝窩) 이원조(李源祚 1792~1872) 학자는 「방초정에서 지례현감과 더불어 芳草亭與知禮
」라는 작품을 남겼다. 그가 구성(龜城)에 있는 지례현감 정기화(鄭夔和)와 방초정에서 만나 서로 화답한 시다.

龜城一面碩人 구성의 한 면에 덕망 높고 관대한 분 있다더니
喬木蒼松認古家 교목과 푸른 소나무가 고풍 어린 집안임을 알리네
我行適共秋聲到 소리 당도하고
流水鳴蟬夕照斜 흐르는 물소리, 매미 소리에 저녁노을 비껴 가네

정기화(鄭夔和, 1798 ~ ?)의 거주지는 횡성이었다. 1834년 식년시에 생원으로 합격, 음관으로 1862년 7월에 지례현감을 지냈다, 1863년 성주 겸임 지례현감, 1864년 12월에 경기도 김포군수, 1866년에 충청도 홍산현감(부여군 홍산면)을 역임한 인물이다.

○ 조선 말기의 유학자요 독립운동가인 송병선(宋秉璿 호 淵齋. 우암의 9대손. 1836∼1905)도 이곳에서 시를 남겼다.

曠野秋亭碧月新 넓은 들 가을 정자, 푸른 하늘에 달이 새로운데
我懷瀟濾想前人 나는 맑고 깨끗한, 앞 시대 사람을 생각하네
老松高柳 差地 늙은 솔 높은 버드나무 울퉁불퉁한 땅에
一氣同流芳草亭 천지의 한 기운이 방초정에 함께 흐르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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