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석꾼은 하늘이 내고 부자는 부지런함이 낸다고 하는데 우리 김천 지역에 천석꾼이 몇 명이나 되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구성면을 비롯한 지례, 부항, 대덕, 증산 5개면에서 유일한 천석꾼 부자 “이현택”을 소개하고자 한다.
본래 연안이씨 입향조는 이말정으로 1426년에 거창에 살다가 우리 마을 구성면 미평2리(지품동)에 와서 살게 되었는데 여름철 장마가 지면 지품천(현 감천)이 범람하면 물건너기가 어려워 다시 거창으로 갔다가 3년 후에 다시 와서 현재 방초정(국보)이 있는 상원리에 살게 되었는데 방초정을 지은 이항복은 이말정의 손자이고 천석꾼 이현택은 이말정의 후손이다.(품천사집)
이현택-이용영-이인화-이응대로 이어지는 천석꾼의 계보는 마음씨 좋고 인심이 후하여 아직까지 남에게 원한이나 해롭게 한 일이 없어 인격과 인심이 좋은 집안임을 증명하고 있다. 천석꾼이 소유한 산과 전답이 수십만 평에 이르겠지만 많이 없어지고 해도 현재 등기서류가 큰 상자에 가득하다니 옛날의 영화를 짐작케 한다. 천석꾼 아들 용영은 산을 사랑한 인물이다.
그 당시 꿀밤(도토리)을 여러 포대 사서 산 위에 올라 뿌렸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천석꾼의 산엔 아름드리 참나무가 꽉 들어차 있다. 소나무는 송진이 있어서 산불이 나면 불이 잘 붙으므로 취약하다고 불이 잘 붙지 않는 참나무를 육성했다는 사실은 감동 그 자체이다.
용영은 일꾼들이 자기 산에서 나무를 해서 지고 내려오면 어려워할까 봐 지나갈 때까지 자기 자신이 숨어서 피했다고 한다.
그때에는 남의 산에서 나무를 하기 어려웠고 산감이 있어서 땔감으로 해온 소나무 가지라도 집에서 발각이라도 되면 벌금을 하기도 했었다.
천석꾼 손자 이인화는 필자가 초등학교 1학년(1963년) 때 배우던 교실을 학교에서 임대하여 재건중학교를 설립하고 가난하여 중학교를 가지 못한 면 관내 50여 명의 젊은이들에게 책과 공책을 무료로 제공하고 영어도 가르쳐서 우리 지역에 많은 도움을 주었었다.
증손자인 이응대도 상주지역에서 미술선생으로 있다가 20여 년 전 퇴직하여 고향으로 왔는데 몸이 좋지 않아 일찍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 당시 김천 지역에서 유일하게 청년회 명목으로 농업 법인 대표를 필자가 가지고 있었는데 응대 선배가 그 법인으로 지역을 위해 큰 일을 해보자고 논의하던 중 세상을 하직하여 아쉬움이 많다.
본래 큰 부자집은 흉도 많고 탈도 많지만 필자가 알기로는 지역 주민들이 천석꾼 이현택 부자집을 원망하는 말은 아직 들어 본 적이 없어 존경스럽게 여기고 있다. 천석꾼 이현택의 묘는 우리 지역에서 유명한 필봉산 자락 아래 칠성바위라는 일곱 개의 큰 바위가 있고 주걱설이라는 곳에 위치하고 유적지를 연구하는 대학교수들이 탐방하러 오기도 한다.
천석꾼의 땅을 70여년 전 아버님께서 사셔서 30여년 전에 필자가 집을 짓고 만평 과수 농사를 짓고 있으니 천석꾼의 기운이 옮겨진 것이 아닌지 감사하기 이를 데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