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귤화위지
김영민
(김천YMCA사무총장)
춘추전국시대 초나라의 왕은 옆에 있는 제나라의 제상 안의가 매우 명망이 높은 것과 제나라의 도덕이 널리 펴져있는 것을 시기하여 안의를 불러 잔치를 마련합니다.
그 자리에서 초왕은 제나라 출신인 도적을 잡아 앞에 두고는 안의에게 ‘제나라는 도덕적이라는 데 도적이 웬 일인가’라며 비아냥합니다. 안의는 ‘회수 남쪽의 귤을 회수 북쪽에 심으면 탱자가 되듯이 도덕이 넘쳐나는 제나라에서는 없던 도적도 초나라에 오면 도적이 된다’는 답으로 초왕을 한방 먹이는 이야기입니다. ‘회남자(淮南子)’와 ‘주례(周禮)고공기(考工記)’에 나오는 ‘귤화위지’라는 말입니다.
환경이나 풍토의 중요함을 말하는 것이겠지요. 마중지봉(麻中之蓬)이니 맹모삼천지교도 같은 의미로 해석이 될 수 있습니다. 또 근간에 일어난 상황들을 보면 이 말은 더욱 빛을 발합니다. 선진국이라 하는 나라들이 가장 공정한 방식으로 인재를 발굴한다는 특채제도가 우리나라에서는 고위 공무원 자녀 직장마련해 주기로 전락하고, 입학사정관을 통한 공정한 진학방식을 특목고 출신 학생 가려뽑기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 잘 말해 줍니다.
강남의 땅값도 여기를 벗어나지 않겠지요. ‘말은 제주도로 사람은 서울로’라던지, 지방이 갈수록 죽어간다고 아우성 하는 것도 이 말이 주는 의미와 무관하지 않겠지요.
그런데 ‘탱자만 모인 곳 지방’이 아니라 ‘탱자라도 귤로 거듭나는’ 우리 지방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우리 지방, 김천에 살고 있다는 것이 자랑스러웠습니다.
서울의 한 동단위보다 작은 인구가 전국을 이리 놀라게 하는 일이 가당키나 하겠습니까만 ‘스타킹’에서 연속 우승해 독일로 유학하게 되는 ‘고딩 파바로티’ 김호중군, 지방 출신 학생으로는 유일하게 한국일보 콩쿨 1등으로 입상한 박성근 군, TBC콩쿨(플롯 부문) 1등의 김진솔 양 등 김천예고 학생들이 보여준 모습들은 우리를 감격하게 만들기에 충분했습니다.
물론 그들이 어릴 적부터 뛰어난 음악적 소양을 가졌기에 가능했다지만 아무리 훌륭한 바탕에도 그를 빛나게 다듬어주는 조련사가 없이는 어디 엄두조차 낼 수 있는 일이겠는지요?
다르게 말하자면 탱자라도 귤로 만드는 훌륭한 토양과 수질이 있어 내일의 우리나라를 밝고 아름답게 만들 근본들이 여기 인구 10여만의 작은 고을에서 오늘도 땀 흘리고 있다는 말로도 바꿀 수 있겠지요.
서울에 내로라하는 학교들과 천금을 들여야 한두 시간의 지도를 받을 수 있는 선생들에게서 배운 이들 모두를 제치고 이름을 세상에 펼침은 자연과 인간다움에서 자라나는 삶이 바른 교육의 모습이고 그로부터 한 성장이 목표에 가장 빠른 길임을 보여준 한편의 장엄한 성공 교향곡(?)으로 보아도 큰 잘못은 아닌 듯합니다.
전국의 영제들과 그들이 찬란한 빛이 되기를 바라는 부모님에게 묻습니다.
귤과 탱자가 본디 한 모습으로 잎이나 자라는 형태도 비슷하지만 어떤 토양에서 어떤 수질이 있느냐에 따라 귤도 되고 탱자도 된다면 그대들의 선택은 무엇인지요?
기억하라고 일러 드립니다.
한 시골의 작은 마을에서 전 세계를 밝히는 빛이 있음을 보면서도 서울이 좋고 이름이 좋아서 시골과 서울이라는 고정관념을 벗어나지 않겠다면 귤의 모습을 기대하는 것은 공연한 일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