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멀티메일 한 통을 받았다. 예쁜 아기 사진과 함께 ‘선생님, 이 분이 우리 아들습니다’라는 이상한 메시지가 떠 있었다. ‘이게 무슨 말이지? 아, 그래!…’ 역시 나의 캄보디아 제자 렝스레이 뚜오즈였다. 몇 개월간 나에게 한국어를 배우러 나오다 아기 낳느라 몇 주 쉬더니 어느새 낳은 아기 사진을 내게 보여 주고 싶었나 보다. ‘아기’를 ‘이 분’이라 말한 것이나 ‘입니다’를 ‘습니다’로 이상하게 표현하긴 했지만 내겐 그 문자가 너무 반갑고 소중하다. 어법에 맞지 않는 표현은 좀 더 공부해 고치면 되지만 낯선 나라에 시집와 잘 적응하고 살면서 예쁜 아이까지 낳곤 그 기쁨을 나에게까지 전하려한 뚜오즈의 마음이 내겐 감동 그 이상이었으니까….
벌써 1년이란 시간이 지나갔다. 제각기 다른 언어와 문화를 갖고 있었지만 이젠 하나의 공통분모를 갖게 된 그들에게 가장 우선적이고 꼭 필요한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을 시작한지도…. 시골 초등학교에서 글쓰기를 지도하며 만난 금지와의 인연이 나를 이곳까지 이끌었다. 금지에게는 겨우 열 살밖에 차이나지 않는 베트남에서 온 새엄마가 있다. 새엄마를 갖게 된 금지에게 몇 가지 변화가 생겼다. 엄마가 없어지던 순간부터 습관이 되어버린 불안정하던 눈빛은 초롱초롱해지고 자주 감지 않아 기름기가 흐르던 머리카락은 윤기를 내기 시작했다.
“어젯밤에는 엄마가 베트남에서 가져온 엄마 잠옷을 입고 잤어요. 그 잠옷에서는 엄마냄새가 나서 참 좋아요”라고 말하는 금지를 보며 아무런 말이 통하지 않아도 국적을 뛰어넘어 따뜻한 엄마가 되어준 금지의 베트남 엄마에게 난 마음으로 깊이 감사하고 있었다.
‘금지가 새엄마와 말이라도 좀 통한다면 더 좋은 관계가 형성될 수 있을 텐데…’하는 생각에 금지의 새엄마에게 한국어를 좀 가르쳐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러던 차에 다문화 가족지원센터에서 이주 여성들에게 한글 교육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내가 맡은 반은 한국어 첫걸음 반. 영어와 한자 조금 정도 쓸 수 있는 내가 필리핀이나 중국뿐 아니라 캄보디아, 베트남, 인도네시아, 태국까지 다양한 국적과 언어를 가진 그들과 서로의 생각을 언어로 소통한다는 일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참으로 신기하게도 우리는 눈짓으로, 몸짓으로, 열정으로 그런 일들을 극복해 나갔다. 멀고 먼 낯선 땅에 와서 하루 빨리 적응해 나가려는 그들의 의지와 열의가, 부족하지만 그 어려움을 조금이나마 소통시켜 주고 싶어 하는 나의 열정이 맞물려 동그라미를 그려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말이 통하지 않으니 눈이 바빴다. 한 번이라도 눈을 더 맞추어주려 애쓰고 평소 내게 그리 익숙하지 않았던 미소를 끊임없이 지어 주느라 얼굴 근육도 쉴 틈이 없었다. ‘궁하면 통 한다’했던가? 비록 가슴 깊숙한 곳에 있는 이야기를 털어놓진 못해도,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이 많지 않아도 가슴으로 느끼는 공통언어가 있었다. ‘사랑’이라는 따뜻한 말.
일주일에 두 번씩 만나는 시간들을 겨우 1년 남짓 보냈다고 얼마나 많은 정이 들었으랴? 하는 생각이 들 수 있겠지만, 가까이 다가와서 말없이 볼에다 뽀뽀를 해주고 달아나는 부끄럼 많은 베트남 새댁 뉴엔티김엠, 수업 오는 날마다 사탕이랑 초콜릿을 들고 와서는 주머니에 꼭꼭 넣어주는 소녀 같은 중국새댁 장령, 친정인 인도네시아에서 가져 온 거라며 수공가방을 선물로 주고 가는 수미데띠아또, 출산 선물이라며 아기 내의 한 벌 사 주었더니 남편과 아이까지 데리고 집으로 인사 와 주었던 브티트엉. 이런 일들이 사랑이 없다면 어찌 가능한 일일까?
오늘도 수업 마치고 돌아오는 길, “선생님, 우리 집에 가서 ‘감자삼’ 먹고 가요!” 감자 삶아 주겠다는 말이라는 걸 알아차리는데 한참 걸렸지만 예쁜 마음으로, 넉넉한 미소로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에 ‘감자삼’ 한 솥 먹은 것보다 더한 포만감을 느낀다.
‘그래, 머나 먼 곳에 와서 낯선 문화를 접하면서 살아 갈 그들을 위해 삶아 익히면 뽀오얀 분이 나는 감자처럼 그들의 삶도 뽀오얀 분이 나 맛있게 익을 수 있도록 내 미미한 노력이나마 아끼지 말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