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나는 하늘을 본다. 매 순간 다른 모양의 구름이 떠가고 다양한 하늘의 색을 보게 된다. 맑은 날의 가을하늘은 너무도 투명하고 짙은 색이다.
그런 날에는 시간이 잠시 정지된 게 아닌가 싶은 생각마저 든다. 나뭇잎은 살랑거리는데 바람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가을빛에 흠뻑 취해 온 몸이 마비되는 것 같은 짜릿함을 느낀다.
단풍은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고 한다. 먼데서 보는 산의 단풍은 아직 약해보이지만 그럴 때라도 산에 직접 올라가서 보면 곱게 물든 단풍의 풍취를 아주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다.
큰아들이 초등학교 2학년이고 작은 아들은 일곱 살이던 때, 가기 싫다는 아들놈 둘을 겨우 달래서 산을 오른 적 있다. 신발을 퉁퉁 차며 걷는 폼이 마음에 차지 않아 조금 올라가다가 따라오겠지 싶어 뒤도 안 돌아보고 올라갔었다.
구부러진 길을 돌아서니 나무에 가려 앞에 가겠거니 하던 엄마가 보이지 않으니까 기를 쓰고 열심히 따라왔던지 숨을 헐떡이면서 “엄마, 엄마”를 연신 불러댄다.
‘고놈 쌤통이다’ 속으로 쾌재를 부르면서 “엄마는 천천히 왔는데 니네들이 오기 싫어 너무 뒤에 처지니까 그런 거”라고 “엄마보다 앞서서 가라”고 했더니 냉큼 앞으로 내달린다.
그제야 안심을 하고 쉬엄쉬엄 천천히 오르다보니 큰아이가 묻는다.
“엄마, 가을이 되면 왜 저렇게 나뭇잎이 빨갛게 되는 거야?”
“응, 그건… 나무는 뿌리에서 물을 끌어올려 햇빛을 받으면서 광합성작용으로 영양분을 저장하거든. 그런데 가을이 되면 겨울을 나기 위해서 잎을 떨궈 내야 해. 그렇게 되면서 햇빛을 받고 있던 나뭇잎은 엽록소가 파괴되고 그래서 색이 변하는 거야.” 라고 장황하게 설명을 했더니 가만히 듣고 있던 작은 녀석 왈 “에이, 겨울에 옷 다 벗고 서 있을 거 생각하니까 부끄러워서 그래” 하는 거 아닌가.
아! 그렇구나! 기발한 생각이다 싶어 “그래 네 말이 맞다” 했더니 그것보라는 듯 형을 한번 슬쩍 보면서 의기양양하다. 하는 짓이 귀엽다.
아이들의 눈높이로 볼 수 있다는 것은 참 복 받은 일이다. 특히나 글을 쓴다는 사람은 더 그렇다. 때 묻지 않은 순수를 갖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아이들을 키울 때는 그래도 같이 놀아주면서 아이가 보는 시선으로 자연과 사물을 보곤 했던 것 같은데 지금은 다 큰 녀석들 타지로 보내고 나니 이 가을이 더 쓸쓸하고 외롭다.
한 살 한 살 나이가 점점 들어갈수록 가을처럼 고운 색을 낼 수 있어야 하는데 아직은 그런 경지에 턱 없이 모자라니 이 노릇을 어이할까 싶다.
보이는 것만 보려하는 것은 나의 아집이 커진 탓이다. 욕심을 버리고 마음을 비우면 티 없이 파란 가을하늘 조금이나마 닮을 수 있을까. 빤히 알면서도 마음을 비우는 일…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햇살이 어제보다 더 길게 거실바닥에 드러눕는다. 따뜻하고 좋아 모로 나란히 누워 빛 바라기를 하다가 깜빡 졸았는데 어느새 햇살이불 슬쩍 걷어가 버렸다.
창틈으로 들어오는 바람도 제법 서늘해져서 일어나 창문을 닫으며 또 한 번 하늘을 본다.
이제 하루해가 저무는구나. 아쉬운 가을날의 하루고 또 지나가는구나.
아무 일 없다는 듯 저리 여유로운 가을빛을 정말 닮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