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주)김천신문사 |
소설가 김중혁(39세)이 등단 10년 만에 첫 장편소설 ‘좀비들’(창비)을 발간했다. 김천 출신으로 성의고를 거쳐 계명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2000년 ‘문학과사회’에 ‘펭귄뉴스’를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한 김중혁이 소설집 ‘펭귄뉴스’, ‘악기들의 도서관’에 이은 장편소설 ‘좀비들’을 발간한 것.
그동안 김유정문학상, 젊은작가상 등을 수상한 김중혁의 ‘좀비들’에는 좀체 좀비가 등장하지 않는다. 언제쯤 좀비가 등장할지 궁금해 하면서 책장을 한참 넘길 때 마침내 등장한 좀비로 인해 책장은 다시 넘어간다. 줄거리를 보면 이렇다.
전국을 다니며 휴대전화 수신감도를 측정하는 직업을 가진 주인공 채지훈은 어느 날 작업 도중 어떤 전파도 잡히지 않는 무통신지역 ‘고리오마을’에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얼마 후 죽은 형이 남긴 수많은 LP판 가운데 ‘스톤플라워’라는 잘 알려지지 않은 1960년대 록그룹의 음반에 이끌려 그와 관련된 자료를 찾아다닌다.
그러다 도서관에서 일하는 유쾌한 거구 ‘뚱보130’을 만나 친구가 되고 그의 도움으로 스톤플라워의 리더가 쓴 자서전을 번역한 홍혜정이라는 인물을 찾아 다시 고리오마을을 방문한다. 그러던 어느 날, 고리오마을에서 거액을 걸고 그해가 가기 전에 죽을 사람들의 순서를 맞히는 게임을 벌이고 있음을 안 주인공과 뚱보130은 홍혜정과 다툰 끝에 서로 멀어지게 되고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두 사람은 홍혜정의 갑작스러운 사망 소식을 듣는다. 여기까지가 좀비의 등장을 위한 예비단계인데 어느 날 밤 주인공과 뚱보130 앞에 불쑥 ‘좀비’가 나타난다.
“그리고 고개를 돌렸을 때 그와 눈이 마주쳤다. 그 깊은-너무 깊어서 뒤까지 뚫려 있는 듯한-두 눈을 들여다보고 말았다. 혹시 좀비의 눈을 들여다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그건 엄청난 경험이다. 좀비와 대면한다는 건 허공을 들여다보는 일이고 깊은 구멍을 들여다보는 일이고 죽음과 마주하는 일이다.”(105쪽)
다음 날 고리오마을과 그 주변이 완전히 봉쇄되고 그들 앞에 한 무리의 군인들이 등장하면서 이야기는 빠르게 전개된다. 소설 속 인물들은 처음에는 무작정 공포에 사로잡혀 좀비와 사투를 벌이지만 김중혁의 좀비는 우리가 관습적으로 알고 있는 스타일과는 다르다. 주인공은 좀비들을 무생물처럼 다루는 군인들에게 즉각적인 분노를 느끼며 오히려 좀비들에게 인간적인 애정을 보이기까지 한다. 좀비들은 공포의 대상이 아니라 살아남은 이들과 죽은 이들을 연결하는 기억으로서 산 이들의 앞에 나타나는 존재들로 그려진다. 그런 좀비들과의 대면을 통해 가까운 가족의 죽음에 오래 사로잡혀 있던 소설의 인물들 역시 죽음의 기억과 마주하고 마침내 화해를 향해 나아갈 수 있게 된다.
그래서 김중혁이 ‘작가의 말’을 통해 직접 밝히고 있듯 이것은 좀비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잊고 있던 기억에 대한 이야기다. 기억하고 싶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