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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문화·음악 종합

연재 4- 내 고향 김천을 노래하다

권숙월 기자 입력 2013.09.02 09:02 수정 2013.09.06 09:02

이승하(중앙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 i김천신문

김천발 완행열차 

  가다가 또 멈추면 쉬었다 가면 되지만 
 이 밤이 언제 끝나려나 잠도 쉬 오지 않아
 5등 열차 5등 인생만 싣고 달리는 완행열차 
 김천-대신-아포-구미-사곡-약목-왜관-연화-신동-지천-대구 

 구린내 찌린내 젓갈 냄새 막장 냄새 
 청처짐한 우리네 삶을 싣고 흔들리며 
 산나물 인절미 고추 장수 미역 장수 한 소쿠리 한 보따리 
 다 판들 몇 푼이나 될까 젖은 꿈을 담고 흔들리며 

 저승꽃 얼굴에 핀 노파는 밭은기침으로 잠 못 이루고 
 푼더분한 저 아가씨 시집가서 잘살 수 있을래나 
 헛헛한 김에 소주 한 병 오징어 한 마리 
 밤잠 없는 노인네한테 술잔 권하게 되었지  

 땅 파먹기 싫다고 아들 셋 대처로 다 달아나 
 장사 밑천 해야겠다고 땅 잡히라니 미칠 노릇이여 
 작년에는 막내딸이 무신 병인지 시름시름 앓는데 
 큰 빙운에 입원도 못 시키고…… 현금이 있어야제 

 시상이 아무리 모질어도 젊으니 얼마나 좋은가 
 치받이가 있으면 내리받이가 있고 
 에움길이 있으면 올곧은 길이 있네 잘 마셨네 
 생애의 종착역에 선 노인의 주름살이 골 깊다 

 한숨과 욕설, 잔기침과 너털웃음, 차창 밖은 
 외진 마을 잠들어 있다 간이역에 내리는 사람 겨우 두셋 
 그리운 마음, 아픈 사연들을 싣고 달리는 야간 완행열차 
 뚝심 좋게 달려라 새벽이 오는 길로 놓인 저 선로 위를

<시작 메모>
 김천에서 대구까지 가자면 대신, 아포, 구미, 사곡, 약목, 왜관, 연화, 신동, 지천역을 거쳐야 한다. 대구역은 열 번째 역이었다. 열차는 김천에서 정시에 출발하는 법이 없었고, 대구에 정시에 도착하는 법도 없었다. 잘 가다가도 무궁화호나 새마을호 같은 빠른 열차가 지나가게 되면 멈춰 서서 지나가기를 기다려줘야 했다. 완행열차는 특징짓는 것은 ‘느림’이기도 하지만 또 하나는 ‘소리’이다. 다른 지방 사람들이 들으면 싸우는 소리로 듣는다는 경상도말 중에서도 김천 사투리― “안 그래여”, “머라 캐쌓노”, “니 자꾸 그칼래?”, “아따 머가 그리 비싸노”, “웡캉 멀다 아이가”, “까짓 거 뭐 기양 나또뿌리라 마”……. 이런 투박한 사투리에 아기 우는 소리, 친구와 얘기하며 웃는 처녀 총각의 목소리, 할아버지의 헛기침, 할머니의 해소기침이 보태지면 수시로 오가는 홍익회 판매원이 다른지역 사람이이라면 귀가 따갑게 울릴 것이다. 그 사투리, 그 기차간 풍경, 그 퀴퀴한 냄새가 오늘따라 너무너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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