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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문화·음악 예술

연재 7- 내 고향 김천을 노래하다

권숙월 기자 입력 2013.09.30 15:50 수정 2013.09.30 03:50

이승하(중앙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 i김천신문
  김천 장 

  아직도 5일장이 서는 내 고향에 가면
  안 그래여 머라 캐쌓노 니 자꾸 그칼래?
  사투리가 그 철모르던 시절로 우리를 데려가겠지
  텁텁한 막걸리가 생각나면
  쌍과부 임자 없이 장사하는 술집으로 가게
  술에 좀 취하더라도 시망스런 사람아
  아저씨 이거 노이소 어델 만지고 그래여
  이런 소릴 들음 곤란한 일이지
  재수 없으면 눈덩이 시커멓게 멍들지도 몰라
  시무룩하게 술 마시던 어떤 홀아비가
  구석에서 시뻘건 얼굴로 달려나와 주먹 날릴지
  이 아저씨 참 얄궂다 대낮에 와 이카노
  시부렁거리더라도 실없는 사람아, 사랑해주라
  그 집 김치는 분명 시굼시굼하겠지
  그만 마시고 시끌시끌한 바깥으로 나가게
  아직도 있을 그 장터 그 바닥
  시설거리는 약장수 패와
  시실거리는 꼬마 녀석들
  새하얗게 머리 센 시어머니 뒤따르는
  저 색시 등에는
  새근새근 잠든 아기가 있고 오늘 사가야 할
  실꾸리가 있고 옷가지가 있다
  내가 버린 고향이 거기에 있다
  다시 찾지 않은 시골장이 고향에 가면 있다
  씨억씨억한 사람들이 시위적시위적 살아가는
  물 맑은 곳, 시퍼런 하늘의 배행기 쳐다보던
  그곳이 지금 어떻게 변했을지 모르지만
  나는 죽는 날까지 그 장터 그 바닥을
  못 잊는다, 못 잊는다, 그 구릿빛 얼굴들을


 
ⓒ i김천신문
 <시작 메모>
  내 어린 날의 추억이 깃들어 있는 장터가 있다. 감호동의 아랫장터(감호시장), 황금동의 황금시장, 김천역 앞 평화시장. 1922년 감천제방이 축조되기 전까지는 시장의 대부분은 백사장이었고, 지금의 철교 부근은 삼각주를 이루어 높은 지대가 형성되어 이곳이 ‘용우머리’라 불리었는데 감호시장의 중심지였다. 이렇듯 백사장에 형성된 감호시장은 1880년대부터 50여년 간 전국 5대 시장의 하나로 대구 다음으로 거래 규모가 많았으나 현재는 침체의 길을 걷고 있어 안타깝다. 반면 황금시장은 볼거리, 즐길거리, 먹거리가 있는 ‘문화관광형 특성화 시장’으로 탈바꿈한다. 황금시장이 중소기업청으로부터 문화관광형 특성화 시장 육성사업에 선정돼 2년 동안 국비와 지방비 20억원을 지원받게 된 것이다.
  명절이 가까워오면 어머니와 함께 제수용품을 사러 시장 순례를 했다. 배가 출출해지면 어머니는 찐빵도 사주셨고 설렁탕도 사주셨다. 아, 어린 날로 돌아가 어머니 손을 잡고 시장바닥을 돌아다니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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