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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묘지기행

김천묘지기행(18)

권숙월 기자 입력 2013.09.30 18:14 수정 2013.09.30 06:14

삼강행실도에 오른 서즐(徐騭), 윤은보(尹殷保)

 
ⓒ i김천신문
  대덕면 중산리 박바우모티를 돌아 오른편 감천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면 은진송씨와 이천서씨, 김해김씨가 대대로 집성을 이뤄온 다화(다부실)마을이 나온다. 마을 뒷산인 무시밭골과 짜개밭골에는 아들이 없는 스승을 위해 생전에 어버이의 예로서 지극히 봉양했고 사후에는 3년간 시묘살이를 해 삼강행실도에 그 이름을 올린 지례현 출신 남계(南溪) 서즐(徐騭)과 절효(節孝) 윤은보(尹殷保)의 묘소가 산 하나를 사이에 두고 나란히 있다. 

 서즐의 묘소는 무시밭골을 주산으로 하고 짜개밭골을 좌청룡, 음지마 앞산을 우백호로 삼았는데 두 골짜기 사이로 용케 갈라진 마을 진입로 사이로 감천을 넘어 중산마을 뒷산인 고드름산을 안산으로 하고 있다. 이 일대는 예부터 주변 형세가 마음 심(心)자를 닮았다하여 명당터로 널리 알려져 왔다.
 서즐은 이천서씨로 묘소 아랫마을인 다화마을 출신으로 생몰연대는 알려진 바가 없으며 부모와 스승의 상을 당하여 6년간 시묘살이를 한 만고의 효자로 알려진다.
 인근의 짜개밭골 파평윤씨 선산에 자리한 윤은보의 묘소는 지난해 수해로 인해 주변 산세가 많이 변하고 산소로 오르는 길이 급경사로 변하고 말았다. 윤은보는 파평윤씨로 댐 건설로 수몰된 부항면 유촌리 앵서동 출신으로 스승 장지도와 부친상을 당하여 6년간 시묘살이를 했는데 그 행적이 삼강행실도의 ‘은보감오(殷保感烏)’편에 상세히 수록되어있다. 

 윤은보는 벗인 서즐과 함께 아들이 없는 스승 장지도를 지극히 봉양했는데 스승이 졸하자 시묘살이에 들어갔다. 도중 아버지가 병환이 들어 별세하자 두 묘소를 번갈아가며 지켰다. 어느 날 큰 바람이 불어 향로가 날아갔는데 날아가던 까마귀가 그 효행에 감화되어 향로를 물어다 주었다는 것이다.
 또 윤은보는 한 겨울에 눈이 쌓여 제수마련을 못해 통곡을 하고 있으니 큰 호랑이가 노루를 물어다 주었다는 전설과 매일 하루도 빠지지 않고 산소를 오르내리던 고갯길의 이름이 정성고개가 된 사연 등 아름다운 전설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 i김천신문
 세종대왕은 1426년 진주에서 아버지를 살해한 패륜사건이 발생하자 충효열(忠孝烈) 즉 삼강(三綱)을 바로 잡기위해 설순과 안견으로 하여금 중국과 우리나라의 충신, 효자, 열녀의 사례를 연구해 백성교화서를 발간하게 하니 이것이 곧 ‘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이다. 모두 105편의 사례가 실렸는데 이중 우리나라 최고의 효행 사례 4건 중에  윤은보와 서즐의 행적이 실렸던 것이다. 

 윤은보의 묘비(坡平尹公殷保墓碑)에 다음과 같은 시가 기록되어있다.
孔門廬墓載遺篇   공문(孔門)의 여묘(廬墓)살이 남겨진 글에 실렸으나
師道千年癈不傳   스승의 도(道) 천년토록 병들어 전해지지 않았었네
誰料窮鄕初學輩 궁벽(窮僻)한  시골의 처음 배우는 이가 누가 알리                 
種楷腰經企前賢  성인(聖人) 가르침 실천하여 법 심으며 앞 현인(賢人)                   처럼 되길 바랄 줄을
一軆而分性本眞    한 몸에서 나누어졌으나 성품은 본래 진실해
夢驚親癠氣通神   어버이 병환에 꿈에도 놀라니 기운이 신묘(神妙)하                    게 통했네   
慈烏反哺能相感   반포(反哺)하는 까마귀도 능히 감동(感動)되어   
香合啣來慰棘人    향합(香合) 물고 와 상주(喪主)를 위로하네 

 세종대왕은 1432년(세종14년) 두 사람에게 정려와 벼슬을 내렸는데 김천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정려각으로서 지금도 지례면 교리 마을 입구에 자랑스럽게 서있다.
 두 사람의 행적으로 인해 ‘예를 아는 사람들이 사는 고을’이라는 뜻을 가진 지례(知禮)의 명성이 전국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글/김천문화원 사무국장 송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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