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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문화·음악 예술

연재 10 - 내 고향 김천을 노래하다

권숙월 기자 입력 2013.10.20 21:12 수정 2013.10.20 09:12

이승하(중앙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 i김천신문
그 옛날 빗내농악이 지금도


혼차 삭이모 앙금이 되겄지
동아줄이 되어
뱀처럼 칭칭 감기기도 하겄지
머할라꼬 
모여서 춤추며 풀어뿔란다
땀 흠씬 흘리며 춤춘 뒤에
푹 자고 나서 내는 고마
몽땅 다 잊아뿔란다

갈라모 왜 못 가
갈라고 들모 어딘들 못 가랴만
우리는 논가에 농기(農旗)를 꽂아놓고
온 동네 늙은이 아 새끼들
있는 대로 다 불러놓고
또 한 마당 춤을 안 추나

징을 치며 상모를 돌리며
새납을 불며 장고를 두드리며
구르고 뒹굴어도 옛날처럼
흥청층청 시끌시끌 흥이 안 올라
더 구르고 더 뒹굴지러
그 옛날 왜적의 침입을 막았듯이

땅에서 태어나 땅에 묻혀도
농자천하지대본은 아이다
하모
땅 파묵고 사능 기
저이 식구 가슴 파묵고 사능 기다
대처에 사는 사람
대처로 떠난 사람
똥 치우며 사능 기다

그래도 때만 되모 빗내농악 한 마당
이 재미에 이 땅을 못 떠나
삼색 띠 두르고 고깔을 쓰고
치고 논대이 돌면서 논대이
다 놀고 나선 마을로 돌아가
지신밟기를 할 기다
대처사람들아 이리 와서 봐라
우리 모여서 이렇게 춤춘대이

<시작 메모> 빗내농악은 1984년에 경북 무형문화재 제8호로 지정되었다. 김천시 개령면 광천리 빗내마을은 앞쪽으로는 넓은 개령들이 있고 뒤쪽에는 감문산성의 성터와 군사를 동원할 때 올라가 나팔을 불었다는 취적봉(吹笛峰)이 있다. 삼한시대 때 감문국에 속했던 이 지역은 나랏제사와 풍년을 비는 별신제를 지냈는데, 이것이 점차 혼합되어 동제(洞祭) 형태로 전승되었다. 매년 동제(음력 1월 6일) 때는 풍물놀이와 무당의 굿놀이, 줄다리기 등의 행사가 있었는데 이들 행사가 혼합되어 진굿(진풀이)의 농악놀이로 발전하였다. 전국 대부분의 농악놀이가 농사굿의 성격이 짙지만, 빗내농악은 전쟁에서 유래된 진굿이며 내륙인 김천에서 전승되었기 때문에 다른 지역의 가락이 혼합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구별된다. 가락이 강렬하고 12가락의 굿판에서도 차이가 나며 진가락의 종류도 다양하다.
  현재의 상쇠 기능보유자는 한기식 씨다. 빗내농악에 필요한 도구는 꽹과리, 징, 북, 장구, 소고 같은 전통악기는 물론 농기, 영기, 총, 부채, 담뱃대, 두건, 욕종, 배낭 등 생활용구까지 총망라된다. 빗내농악은 1961년부터 마을 무대를 벗어나 전국 민속예술 경연대회에서 대통령상을 비롯한 수많은 상을 수상하여 우수성을 과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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