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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종합 종합일반

“대한독립 만세!”

권숙월 기자 입력 2017.02.28 17:22 수정 2017.02.28 05:22

제98주년 3·1절 김천지역 독립만세운동 재조명 돼야
가혹한 감시 탄압 속에서도 크고 작은 시위운동

ⓒ 김천신문
제국주의 시대, 저 광폭한 일제의 침탈야욕에 나라를 잃은 후 압제의 그늘에서 마침내 독립운동의 기틀을 마련한 3·1만세운동이 일어난 지 올해로 98주년을 맞았다.
1945년 광복의 기쁨도 잠시 국가분단의 참상을 또다시 겪었고 근대화, 산업화 과정을 거쳐 세계 10위권 안팎을 차지하는 세계역사상 유래가 없는 경제성장을 이뤘으니 실로 감격스럽기 그지없다.
3·1운동 98주년을 맞아 김천지역에서 일어났던 우리 선조들의 독립운동의 함성과 활동상에 대한 선양사업을 통해 불의에 굴하지 않은 김천인들의 나라사랑정신을 알려야한다는 각계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1919년 3·1 만세시위가 서울에서 일어나자 그 운동은 요원의 불길처럼 전국에 퍼지기 시작했다.
김천에서는 황금동 장로교회 조수 김충한(金忠漢 김천시 황금동, 계성학교 출신, 당시 36세)이 서울에서 3·1독립운동을 목격하고 김천에 돌아와 김천에서도 거사를 단행할 것을 생각하고 있었다.

3월 8일에 대구에서 크게 벌어진 독립시위운동이 학생 주동이었는데 이에 참가했던 김수길(金壽吉 증산면 금곡리, 계성학교 학생, 18세)이 시위 대열에서 빠져나와 김천에서 거사키로 결심하고 그 길로 김천으로 달려와 그날 밤 황금동교회로 김충한을 찾아갔다. 그곳에는 때마침 장로 최용수와 교회 조수 한명수도 함께 있었다. 김수길은 대구 학생 의거의 소식과 세계정세를 설명한 다음 조선 독립의 좋은 기회임을 강조하면서 김천 거사를 역설했다.

김천에서의 거사를 결심하고 있던 김충한은 두 사람의 의기투합에 모두 찬성하게 됐다.
밤 9시에 다시 황금동교회에 모였는데 이 자리에는 주남태(남산동, 농업, 21세), 김원배(용호동, 23세), 박태언·차경곤(황금동, 재봉업, 21세) 등이 동석했다.
김충한, 김수길은 독립운동에 관한 경고문을 작성하고 최용수, 김수길, 박태언은 인쇄, 인쇄물 배포는 김수길, 박태언이 담당하기로 했다. 또 경고문에 김천 거사의 민족 대표로 김충한과 최용수의 명의로 인쇄한다는 데에 합의했다.

한편 김수길은 베(布)로 태극기를 제작하고 주남태, 김원배는 종이로 많은 태극기를 만들어 두기로 하고 거사일은 3월 11일 오후 3시, 장소는 용두동 감천다리 부근으로 정했다.
거사의 순서는 군중이 모이면 먼저 조선 독립에 관한 연설로 시작해 모인 군중에게 경고문과 종이 태극기를 나눠 주고 베로 만든 태극기를 선두로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면서 시가지를 행진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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