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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문화·음악 종합

신간 안내- 김천문화원 향토사료조사 제13집

권숙월 기자 입력 2018.02.11 21:53 수정 2018.02.11 09:53

‘남정선생행적’ ‘김천도역지’ 합본

ⓒ 김천신문
  김천문화원이 향토사료조사 제13집으로 ‘남정선생행적(嵐亭先生行蹟)’과 ‘김천도역지(金泉道驛誌)’국역본을 한 권의 책으로 발간했다.
조선 전기 유학자 남정(嵐亭) 김시창(金始昌) 선생의 생애와 학문을 기록한 ‘남정선생행적’과 교통요충지로서의 이 고장의 위상을 알 수 있는 ‘김천도역지’를 발간한 것. 국역은 권오웅 박사(전 김천여고 교사)가 했다.

‘남정선생행적’
남정 선생은 대항면 대룡리에서 출생해 평생 김천을 떠나지 않았고 점필재 김종직의 문하에서 성리학을 배웠다.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묘 옆에 여막을 짓고 3년간 묘소를 지켰으며 성종과 중종이 승하했을 때 제례를 극진히 해 신하로서의 예를 다했다.

선생의 학문은 사림의 추앙을 받았으나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청렴한 지조로 처신했다. 1518년(중종 13년) 경상도관찰사 김안국이 형량과에 천거했으나 나아가지 않았고 김종직과 조위 등이 이끄는 영남 신진 사류의 중심인물이었으나 조광조가 기묘사화로 세상을 떠나자 두문불출해 명리에 초연함을 보였다.

조정에서 사후에 참봉을 증직하고 효절이란 시호와 정려를 내렸으며 황간의 모현서원과 송계서원, 김산의 경렴서원에 제향됐는데 우암 송시열은 “남정 선생의 충효가 만인의 본이 된다”고 찬양했다.

‘김천도역지’
조선시대 김천의 역참과 교통상황을 이해하는데 좋은 자료가 될 ‘김천도역지’에 의하면 한반도 남부의 중앙에 자리한 김천의 지리적 이점은 역과 도로의 발달과 함께 역촌의 형성과 문물의 집산을 촉진시켜 김천장이 전국 규모의 시장으로 발돋움하는 동력을 제공했다.

김천지방에 역이 처음 등장한 것은 ‘고려사병지역참조’이며 경산부도에 속한 속역으로 김천역(금산현), 작내역(지례현), 추풍역(어모현), 부상역(개령현), 장곡역(지례현) 등 5개 역이었다.

조선시대 세종대에 44역도-538속역 체제로 개편하면서 김천도(金泉道)가 신설되고 관할에 17개 속역을 거느리게 된다. 이때 김천도는 추풍역(금산군), 문산역(금산군), 부상역(개령현), 양천역(개령현), 작내역(지례현), 장곡역(지례현) 등 김천의 6개 역을 비롯해서 대구, 성주, 구미, 고령, 합천 등 17개 속역을 거느린 큰 규모의 역으로 성장했다.

국역‘남정선생행적’과 ‘김천도역지’ 합본은 원문 포함 168쪽에 이르며 양장본으로 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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