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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종합

삶의 향기- 오막살이 우리 집

김천신문 기자 입력 2018.08.07 09:07 수정 2018.08.07 09:07

배영희(수필가·효동어린이집 원장)

ⓒ 김천신문
중학교 3학년인 아들과 2박 3일 캠핑을 다녀왔다. 사춘기이기도 하지만 뭔가 방학을 맞이하여 추억 하나쯤 만들어주고 싶었다. 텐트에 누워 팔베개를 하고 한강의 불빛과 흐르는 구름을 보았고 상상했던 것처럼 매미소리도 밤새 들었다.

시냇물에 발을 담그고 랜턴으로 책을 읽기도 했다. 그러나 2박 3일이 한 일주일 더 지난 것 같아 돌아오는 길은 무겁고 힘이 들었다. 각자의 배낭에 젖은 옷을 넣어서인지 어깨도 아프고 신고 갔던 샌들마저 한쪽 끈이 떨어져 발을 질질 끌고 오는 피난민 같은 형색이 돼버린 것이다.
씻고 싶었다. 무조건 비누로 좀 깨끗이 씻고 싶었다. 집이 그리웠고 한 시간이라도 더 일찍 집으로 오고 싶었다. 머리를 기대고 기차 안에서 아들과 힘없이 얘길 나누었다.

“돌아갈 곳이 있으니 그것이 집이다. 만약 돌아갈 곳이 없다면 그건 방랑자이지, 너는 저 푸른 창공을 날다가 힘이 들거들랑 언제라도 엄마가 있는 곳으로 돌아와라, 그것이 너의 고향이다. 내 뱃속에서 네가 태어났으니 너의 고향은 어미 뱃속이지 않겠냐.”
그리고는 차창을 바라보았다. 생텍쥐페리가 쓴 ‘어린왕자’처럼 인생의 단순한 기쁨들이 감사하게 여겨졌고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 마음으로 보아야해.”라는 글귀가 떠올랐다. 지구를 빙빙 다 돈다 해도 내 몸 하나 편히 쉴 곳은 바로 내 집 밖에 없을 것이다.
그것이 낡고 오래 되었다 해도 내 물건들이 있고 내가 보던 책들과 소지품들과 익숙한 책상과 여하튼 나의 보금자리니 호텔보다 훨씬 더 편하다.

어릴 때 엄마가 보따리를 이고 장에 다녀오시면 항상 “오막살이라도 우리 집이 최고다”라고 하셨던 기억이 난다.
집, 글쎄 좋은 집일수록 좋긴 하겠지만 손바닥만 해도 우리 집이 있어 좋다.

집에 오자마자 아들은 샤워하러 들어가고 배낭 두 개를 풀어 세탁기부터 돌렸다. 잠시 비우는 동안 모기약을 뿌리고 갔기에 물걸레로 엎드려 뽀독뽀독 소리 나도록 구석구석 닦아냈다.
그리고는 거실에 넓은 요를 펴고 그 위에 덜렁 누웠다. 사실 에어컨을 10년 만에 처음 켜는데 이렇게 고마울 수가 있을까. 물론 일평생 가구로만 여기고 올해도 전기세 겁나서 한 번도 켜지 않은 엄마 생각이 잠시 났다. 그러나 비닐하우스 같은 텐트에서 자보지 않았다면 오늘 이 시간이 꿀맛 같이 달고 감사한지 몰랐을 것이다.

항상 있는 집이고 항상 있는 내 방이었건만 새삼 이렇게 고마울 수가…….
이 찜통더위에 서울역 주변 수많은 노숙자들을 보았고 한강 다리 밑에 혼자 돗자리 생활하는 사람들을 보았으니 이 얼마나 호사스러운 일인가. 달랑 삼일 비웠는데 베란다 화분들이 목마르다고 아우성을 친다. 잠시 누워 있다가 꽃들에게 손길을 보낸다.

작고 작은 집, 그러나 유리컵 속에 자라는 허브도 있고 소박한 책상과 세탁기, 키 작은 냉장고까지 있으니 고맙고 또 고마울 뿐이다. 아이는 복숭아 세 개를 먹고 나는 맥주 한 캔을 마셨다. 우리가 본 것들과 느낀 것들, 새로운 경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아이가 먼저 코를 곤다. 이제 엄마보다 한 뼘은 더 자란 아들이 있어 든든하기까지 하다.
여행을 다녀올 수 있는 두 다리와 아직도 배낭을 멜 수 있는 젊음이 있어 내 자신에게도 감사해서 혼자 웃었다.

자세히 들어보니 우리 집에도 매미 소리가 들린다. 산다는 게 뭘까. 아등바등 걸어왔고 겹겹이 포장하며 그런 체하고 살아왔던 건 아닐까. 누군가는 해야 할 일들이라 정치도 하고 명예도 내세우건만 소시민의 달콤함이 어쩜 더 축복이지 아닐까 싶다. 덥다 덥다 해도 곧 가을은 오리라. 가는 여름 붙잡으려 애쓰지 말고 남은 여름 뜨겁게 즐기자.
오늘이 입추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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