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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종합 미담

네 가족 함께 ‘이어달리기봉사단’

김민성 기자 입력 2019.01.15 08:49 수정 2019.01.16 08:49

2년 넘게 일요일마다 은기리 어르신 한글 교육
“어르신과의 만남이 제일 기다려져요”

ⓒ 김천신문
“민지선생님은 오늘 안 오시나”
하얗게 센 머리에 구부정한 허리의 할머니 여럿이 마을회관에 모여 앉아 꼬마선생님을 찾는다.
“아뇨. 곧 와요. 저희가 오늘 조금 일찍 왔어요.”
ⓒ 김천신문
매주 일요일 저녁 5시가 되면 어모면 은기리 은석마을회관은 한글공부방으로 변한다.
교사는 초·중·고 학생과 어머니이고 제자는 70~80대 할머니들이다.
수업이 시작되자 할머니들은 여느 학생과 다름없이 지난 한주동안의 숙제부터 내보이며 선생님의 채점을 기다렸다.
ⓒ 김천신문
“저희가 할머니들에게 한글을 가르치기 시작한 지가 2년 반이 넘었는데 지금까지 한 번도 숙제를 안 해 오신 적이 없었어요. 오히려 숙제를 더 많이 내달라고 조르세요. 할머니들과 저희가 부직포로 직접 만든 책가방과 필통은 물론이고 교재로 사용하는 책은 또 얼마나 아끼시는지, 처음에 저희가 교재에 줄이라도 그을라치면 노발대발하셨죠. 나중에 요즘 책에는 메모란이 있다는 걸 이해시켜드리고는 풀어지셨어요.(웃음) 당신들의 배움에 대한 열정이 얼마나 대단하신지 옆에서 지켜본 아이들도 본받아서 본인들 공부에 더 열중하게 됐어요.”
네 가족이 함께 모여 만든 ‘이어달리기봉사단’ 리더인 김선주(48세)씨의 말이다.
ⓒ 김천신문
이어달리기봉사단은 김선주씨-정효원(성의여중3)-문준훈(상주공고1) 가족, 이혜미(43세)씨-박슬비(성의여고1) 가족, 정정희(44세)씨-김민지(동신초6) 가족, 신병선(41세)씨-성혜성(부곡초6) 가족, 이렇게 4개 가족 9명으로 구성된 가족단위 봉사단이다.
ⓒ 김천신문
김선주씨는 독도사랑국민연합 리틀독도단 초대단장이자 최근 4기 단장을 다시 맡은 오랜 경력의 봉사자이다. 김선주씨와 이혜미씨, 정정희씨는 각자 생업이 바쁜 가운데에서도 짬을 내 봉사를 해오다 건강가족지원센터 무지개가족봉사단 활동을 통해서 처음 만났다. 이후 우리문화돋움터, 다문화멘토링 등 각종 봉사에서 인연을 이어오다 각 봉사단의 장점을 살려 34개 가족이 참여하는 숲꾸러기가족봉사단을 결성했다. 여기에 신병선씨와 아들이 합류했으며 자주 만나다보니 아이들끼리 가까워져 아이들의 제안으로 의미 있는 가족단위 봉사를 하기로 의기투합해 만들어진게 ‘이어달리기 봉사단’이다.
이어달리기 봉사단은 은기리 할머니들과 인연을 맺고 매주 1회 한글교육을 시작했다.
ⓒ 김천신문
할머니들은 농사로 인한 오랜 노동으로 인해 교육초기엔 연필 잡기조차 힘들어했으며 손아귀에 힘이 없어 글씨가 흔들렸다. 심지어 어깨가 굳어서 팔을 잘 들지도 못했다.
글자를 가르치기에 앞서 어깨를 풀어주는 스트레칭과 치매예방운동부터 시작했다.
운동을 시작한 뒤부터 할머니들의 건강이 날이 갈수록 좋아졌으며 한글실력도 덩달아 늘어갔다.
ⓒ 김천신문
은기리 수제자인 최종임 할머니는 “동생들 공부시키느라 못 배운 게 한이었는데 지금은 텔레비전에 나오는 자막을 읽을 수 있고 자식들에게 편지까지 쓸 수 있게 돼 얼마나 기쁜지…. 어린 선생님들과는 친손자·손녀같이 정이 들어서 일요일만 기다려지는데 언젠가 못 만나는 날이 올까봐 제일 걱정”이라고 말했다.
ⓒ 김천신문
이런 할머니들의 진심이 통했는지 아이들도 용돈을 모아 지난 어버이날엔 카네이션 꽃과 함께 치킨, 떡, 음료 등 음식을 준비해 소박한 잔치도 마련했다고 한다.
또 봉사단에서는 지난 6월 소리마을예술진흥회를 초청해 국악 관현악, 농악놀이 등의 공연을 주최해 동네어르신들과 함께 즐겼다.
이렇게 봉사단과 할머니들이 의미있는 만남을 이어온 데는 은기2리 신주섭 이장의 도움이 컸다.
봉사자들은 “이장님께서 장소도 제공해주시고 마을방송으로 수업시작을 알려주시는 것은 물론 직접 할머니들을 모시고 오기도 하세요. 덕분에 지금까지 수업을 잘 이어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라며 고마워했다.
ⓒ 김천신문
이어달리기봉사단 어머니들은 봉사를 하며 제일 좋은 점으로 “아이들이 예절을 자연스레 몸에 익히게 된 것”을 들고 “가족이 봉사로 추억을 쌓으며 여럿이 아이들을 함께 키우는 기분이 든다”고 했다.
ⓒ 김천신문
“예절이 몸에 배고 인성이 좋아져요. 일요일마다 봉사라 힘들 수도 있는데 안가겠다는 소리 한 번 안하네요. 처음엔 왜 글자를 모르냐며 의아해하던 아이들이 할머니들을 만나고 나서부터 어려웠던 시절을 이해하게 되고 진심으로 안타까워했어요. 자기네들이 수업에 더 도움 되는 방법, 예를 들어 귀에 대고 말하기, 진한 색 연필과 칸 넓은 공책 사용 등을 적극적으로 제안하기도 하구요. 수업시간이 한정돼 있다는 게 늘 아쉽고 어르신들의 건강이 허락하는 한 계속 이 만남을 이어가고 싶습니다.”@IMG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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